바다의 선물
앤 머로 린드버그 지음, 김보람 옮김 / 북포레스트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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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선물

앤 모로 린드버그 지음 | 김보람 옮김 | 북포레스트

학창시절 이 책을 읽었을때는 그냥 바다에 관한, 삶에 관한 소박한 에세이처럼 읽혔는데, 그녀의 삶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고 나서 다시 읽은 책은 나에게 남달랐다. 앤 모로 린드버그... 알다시피 그녀는 그 유명한 찰스 린드버그의 부인이다. 그는 최초로 무중력 비행에 성공함으로 미국의 국민적 영웅으로 자리매김했다. 그 유명한 "저것이 파리의 등불이다"는 명언이자 책도 남겼다.

하지만 앤 모로 린드버그를 마음 아프게 한 것은 남편 찰스 린드버그의 바람기도 아니고, (무려 세여자를 더 두고 그들 사이에서 자식을 여럿 낳다고 한다. 거기다 그 중 둘은 자매라니 기가 찰 노릇이다.)그가 히틀러주의자라서도 아니고... 그저 한 아이를 지켜주지 못한 미안함일 거라는 생각이 든다. 한 밤중 모두가 자고 있는 와중에 앤의 첫 아이가 유괴 실종되어 꽤 시간이 흐른 뒤 시체로 발견되는 미스터리한 일이 일어났으니 말이다. 단장이 끊어지는 고통을 겪은 앤은 그 상실을 딛고 일어선다. 물론 그 뒤로 여러 자녀들을 출산하기도 한다.

이 책 <바다의 선물>은 그 모든 일은 겪은 앤 모로 린드버그의 수필이다. 바다 조개를 통해서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를 재조명했다. 거기에는 그녀 특유의 시적 감수성이 돋보인다. 한마디로 정말 선물같은 수필집이다.

서두에서 린드버그는 말한다. 바다는 처음에 와서는 정말 아무것도 못하게 한다고 말이다. 책도 못 읽고, 글도 못 쓰고... 그저 바다를 보는 일 밖에 할 수가 없다. 신이 만들어놓은 현실에 집중하는 것 밖에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없는 것이다. 하지만 2주가 지나면 그제야 마음은 회복된다. 마음이 다시 되살아나는 것이다. 바다가 도회지의 모든 때를 벗기고 새로운 사람으로 살리는 데는 2주의 시간이 소요되는 것이다. 그 후 그녀는 조개를 관찰하고 마음을 관찰하고, 생각을 관찰한다.

바다가 아무리 귀하고 어여쁜 조개를 품고 있다고 한들 그것들을 모두 손에 넣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주머니 가득 조개껍질을 주어도 그것은 아무런 매력을 갖지 못한다. 오직 한 두개의 예쁜 조개 껍질만이 바다를 온전히 나타낸다. 이 얼마나 신비한가... 오직 한 두개면 충분히 아름답고, 그 이상은 오히려 악이라는 것... 그 깨달음...

모든 것은 배경이 있어야 그 몫을 발휘한다. 아무리 고급가구가 많은 집이 좋다고 한들 그 가구를 빛나게 하는 것은 텅 빈 배경이다. 좋다는 것이 줄지어 있다한들 남들이 보기에 그것은 그냥 잡동사니에 불과한 것이다. 침묵 속에 음악이 아름답고, 어두움 가운데 촛불은 제 기능을 발휘하며, 동양화의 여백에 낙엽 한 두개가 계절을 알리듯이 모든 것에는 공간이 필요하다.

앤 모로 린드버그는 바닷가에 와서 거의 무소유로 삶을 살았다. 옷가지도 줄이고, 생필품도 줄이고, 그냥 조가비처럼 휑한 오두막에서 그녀는 충족됨을 얻는다. 그 외의 것은 바다가 자연스럽게 채워줄테니 그녀는 도회지에서처럼 안달하지 않는다. 거기엔 위선도 없고 써야될 가면도 없다. 그냥 바다의 선물을 가만히 기다리는 것이다. 바다는 그렇게 자신을 기다리는 자에게 선물을 주니까 말이다.

개인적으로 아르고노트라는 조개 낙지의 삶이 몹시 흥미롭다. 껍데기에 고정되지 않은 채 살아가며 껍데기는 그저 요람 역할만을 하고, 알에서 부화한 새끼가 바다로 헤엄쳐 나가면, 모체 조개 낙지도 껍데기를 버리고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고 한다. 심지어 그 아르고노트가 버리고 간 껍데기는 너무 아름답기까지 하다. 우리도 언젠가 다 버리고 갈 것이다. 그것이 변치 않음을 약속했던 사랑일 지라도... 또 버리고 떠나고, 다시 기다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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