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소나주
실비 제르맹 지음, 류재화 옮김 / 1984Books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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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소나주

실비 제르맹 지음 | 류재화 옮김 | 1984books

글이란 무엇일까? 그리고 독서란 무엇일까? 내 생각에 독서란 그리고 글이란 바로 듣고 말하는 행위같다. 독서가 듣는 행위라면 글은 말하는 행위이다. 우리는 책을 읽으면서 그 책의 저자, 혹은 등장인물의 말을 듣고, 책에 대한 내용을 정리하면서 쓰든, 아니면 내 생각을 종이에 옮겨 쓰던 그 행위는 바로 나의 말인 것이다.

음성이 없지만 텍스트로 하는 대화 행위가 바로 쓰기와 읽기가 아닐까 한다. 음성의 대화는 꼭 상대방이 있어야한다. 그리고 그 화자 역시 제한적이다. 내가 솔제니친과 대화하고 싶다고해서 그와 말 한마디 섞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미 세상에 없는 사람들은 말해 무엇하랴... 하지만 독서란 그 모든 행위를 가능하게 한다. 또 요즘은 인터넷망의 발달과 인스타그램, 혹은 트위터 등을 이용해서 작가와의 직접 소통 또한 가능해졌다. 어찌보면 참 놀라운 세상이다. 그리고 메타버스가 활성화되면 이 모든 것을 가상 세계에서 나의 아바타가 직접 그 속에서 내가 원하는 인물과 대화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 그 세상이 언제 올까?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 현재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을 아무런 제약없이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니... 꿈만 같은 일이다.

작가 실비 제르맹에게 글을 쓰는 행위란 빈사 상태에서 이뤄지는 일이라고 한다. 손가락들이 발작하고 요동치며 부딪히는 행위들... 작가에게 텍스트의 부활을 끊임없는 외치는 것... 의식에서 생겨난 등장인물들은 이제 점점 무의식을 점거하고 작가의 손끝에서 부활하려고 애를 쓴다. 급기야 작가는 빈사 상태가 되고 만다. 아마 등장인물 모두는 그것을 원했으리라... 작가는 그냥 존재하고 자신들이 텍스트로 부활하는 것... 작가의 손의 타이핑은 그 등장인물의 요구대로 쓰여지는 한마디로 기계적인 제스처에 불과하다.

글쓰기와 자신과의 관계를 이렇게 해체하고 적나라하게 보여준 책이 있었던가 싶다... 아직 난 이 책말고는 그런 책을 못 만난 듯하다. 어찌보면 소설가나 혹은 글로 먹고 사는 사람들만 알 수 있을 만한 난해함도 있지만 작가로의 고뇌.. 글쓰기 자체를 독립적으로 보는 시선만큼은 독자적이고 새로웠다.

예전에 난 책 속 등장인물을 너무 좋아한 나머지 그 속의 인물에게 장문의 편지를 쓴 적도 있다. 작가는 여성이었고, 등장인물은 매력적인 남성이었다. 물론 나는 작가를 겨냥해서 쓴 것은 아니었다. 작가가 창조한 인물에 매료당해 그에게 편지를 보냈다. 붙이지도 못할 편지를 말이다. 이미 없는 사람, 창조된 세계 속에서 홀로 오롯이 있는 이에게... 그때는 그럴 수 밖에 없었다. 너무 빠져있었기 때문이었다. 한 시점이 흐른 뒤에는 그를 현실에서 못 만나다는 아쉬움이 들기도 했지만 그는 오로지 그 속에 존재해있을테니 영원성으로 박제되어 있다는 안도감 역시 들었다.

그리고 작가는 자신의 등장인물에 대한 저작권을 주장하지도 않는다. 그 작가와 인물은 전혀 다른 존재일테니... 이 책을 읽고 그런 생각이 더욱 강하게 들었다. 그리고 내 안의 페르소나를 깨우고 싶다는 욕망이 샘솟았다. 과연 어떤 페르소나들이 잠자고 있을 터인가? 내보내달라고 아우성치고 있지는 않는가? 나를 빈사상태로까지 만들 그것의 존재는 과연 무엇일까? 이제 옆얼굴이라고 보여줘도 되지 않을까? 나의 나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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