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의심을 고백한다는 것... 그것 자체가 그 스스로에게 정직한 것이다. 레빈은 고해사제에게 자신의 가장 약점을 말함으로써 스스로를 극복했다. 거짓을 말하고자하는 마음을 극복했다. 자신의 결혼에 대한 기본적인 의심, 미래의 배우자가 자신의 사랑하지 않을 것이라는 걱정, 그저 결혼하기 위해 자신을 선택한 건 아닐까하는 의심들... 레빈의 마음 속에는 그 모든 것이 들어있었다. 사실 그는 그만큼 섬세한 사람이었다. 스쳐가는 연인의 눈에서 걱정과 근심을 바로 읽어낼 만큼....
반면 브론스키는 어떤가? 그와 안나와의 관계는... 그는 안나를 잃을까봐 더 그녀를 사랑하게 되었다. 아니 그녀를 사랑한다고 믿었다. 과연 그것이 옳은 것일까? 영영 잃어버릴 것같은 마음에 유부녀인 안나를 사랑하고 그녀를 품고 심지어 그녀의 남편에게 그런 죄까지 저지르게 되고 말이다. 이 사랑에 승자는 없다. 레빈의 사랑의 승자는 그 주위의 모든 것이지만 브론스키의 사랑의 승자는 이미 존재하지 않는다.
과연 사랑이란 무엇일까? 전부일까? 아니면 부분일까? 그리고 사랑 중 남녀간의 사랑이란 무엇일까? 열정일까? 아니면 모든 것을 바칠 만큼 끔찍하도록 중요한 그 무엇일까? 내 생각엔 사랑을 사랑하는 것 그 자체가 바로 사랑을 모르는 것같다. 그것이 모든 것이라고... 너와 나의 열정 그것만으로 모든 것이 다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그 자체가 말이다. 사랑에는 다양한 감정이 있다. 불같은 사랑도 있는 반면 서서히 뜨거워지는 뭉근한 사랑, 그리고 한편으로는 차가운 사랑 역시 존재한다. 그 모든 것을 인정하는 것... 그리고 나의 감정보다는 상대의 감정을 배려하는 것...
가까운 사람들마저 결혼으로 멀리하게 된 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 그에겐 아무도 남아있지 않다. 그저 리디야를 대상으로 자신의 괴로움을 토로할 뿐이다. 아들 세료자의 눈을 볼때마다 그는 두려움에 떤다. 이 모든 일이 자신에게 일어났다는 그 사실 그 자체가 너무 비극이라서, 그 일을 아들의 궁금해하는 눈을 보면서 설명할 수 조차 없기에 말이다. 이 상황에서 그가 해야할 선택이란 무엇인가? 절망에 빠진 남자를 누가 구원해 줄 것인가?
안나는 브론스키에 대한 사랑을 끊임없이 확인하려한다. 그가 지겨워질때까지, 그의 입에서 어떤 말이 나올때까지.. 굴욕적인 사랑의 말... 아니면 안나가 두려워하는 그 말이 나올때까지인가? 사랑의 확인?? 그것만큼 남녀 사이에 위험한 것이 또 있을까? 사랑의 확인은 그 사랑이 불확실할때 요구하는 것이다. 사랑에 빠진 남녀는 굳이 그 사랑을 확인하려 하지 않는 법이다.
사랑을 확인하려하는 사람과 스스로 의심을 고백하는 자... 둘 중 어떤 사람이 사랑을 아는 사람일지는 아마 다들 느낄 것이다. 아... 안나의 사랑이 그녀 자신 마저 불태우지 않기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