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리 아파트먼트 - 팬데믹을 추억하며
마시모 그라멜리니 지음, 이현경 옮김 / 시월이일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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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리 아파트먼트

팬데믹을 추억하며

마시모 그라멜리니 지음 | 이현경 옮김 | 시월이일

주인공은 그 문이 곧 닫힐 테고 익숙했던 것들에게 작별인사를 할 시간은 순간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또한 지금 그 문으로 나갈 용기를 내지 못한다면 낡은 습관처럼 영원히 벗어나지 못하리라는 점도 잘 알았다.

302 페이지

2080년 12월 미래에서 편지가 왔다. 우리가 겪은 팬데믹 상황에 대하여 조근조근 말하고 있는 다소 황당스러운 글... 아니 ,세상에 모든 사람들이 마스크를 쓰고 다녔다고요? 아니, 셧 다운이라니... 그렇게 일찍 모든 가게가 문을닫고, 모든 사람들이 자기 방 안에서 꼼짝도 못하게 갇혀 지내야했다고요? 세상에 맙소사! 학교를 안가고 컴퓨터로 비대면 수업이 이뤄졌다고요? 졸업식, 입학식도 없었고요?

그래, 그렇다. 지금 전세계 상황은 그러하다. 마티아 할아버지가 손자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 손자들은 시시한 상상 속 이야기라고 한다. 하지만 그 시절은 실재했고, 먼 훗날은 추억이 될것이다. 그리고 그 시절을 어떻게 헤쳐가는냐에 따라 먼 훗날의 이야기의 장르가 달라질 것이다. 누구는 성장 소설의 한 페이지로 기억하고, 누구는 공포 소설로 기억하게 될지도...

마티아네 가족은 밀라노 5층 아파트에서 산다. 사실 코로나 초기 이탈리아의 상황은 나도 뉴스를 보아서 잘 알고 있다. 곳곳에 넘치는 환자들, 그리고 집 안에서 꼼짝 못하게 갇혀있고, 심지어 어떤 사람은 시체와 같이 밤을 보내기도 하는 장면을 자신의 유튜브에 생중계하기도 했다. 화장터는 이미 포화직전 상태, 곳곳에서 시체들이 몰려드는 그야말로 패닉 상황.... 바로 이 상황에서 마티아네 가족은 서있다. 테아네는 2층, 줄리오 마우는 3층, 젬마할아버지와 도나티 할머니는 4층, 측량사 고티는 5층, 그리고 관리사무실의 카를로 할아버지까지 모여사는 이탈리아 북부의 밀라노 5층 아파트...

여의치않게 팬데믹이 닥치면서 그들 이웃들은 서로의 속사정들을 알게 되고 가까워져간다. 발코니의 고티씨의 노래, 사람들의 박수소리... 이런 저런 정을 나누고 주인공 마티아도 소원해진 아버지와 관계를 발전시킨다.

이 소설은 어쩌면 관계의 소설이다. 코로나 시대가 누군가에게는 순례의 시간이 될 것이라고 저자가 말한 것처럼 그 시간에 마티아는 아버지와의 관계를 재정립해나간다.

마티아의 아버지는 고치고 지우는 것을 못한다고 고백한다. 잘못 쓰면 지우는 대신 얼른 노트를 찢어버리고 다시 시작한다고 말이다. 그리고 아들에게 고백한다. 마티아에게 상처줬음을 사과한다. 마티아는 말한다. 어딘가 찢어버린 노트가 휴지통에 있을 거라고...ㅎㅎ 그래, 다시 시작할 수 있다. 마티아의 명랑한 말 속에서 보이는 긍정의 힘... 그것은 용기의 또 한 이름이다. 아버지의 쓰다듬을 거부하지 않는 아들, 이제 아버지가 주는 생크림이 든 아이스크림을 먹어봐도 좋겠다는 마티아... 모든 것은 용기의 마음이다. 우리 스스로의 마음 속에 사실상 자리잡아 있음에도 꺼내기를 주저했을 그 마음들...

2080년은 언젠가 올 것이다. 그 날이 되어 다시 이 책을 펼쳐볼 날이 올까? 훌쩍 나이듦이 무섭기도 하다. 하지만 모든 것이 추억이 될거라는... 암울한 현실도 내일이면 다른 날이 될 거라는 희망이 그날을 기다리게 한다.


모두 아무 일 없이 지나갈 팬데믹을 추억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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