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 수 없는 것을 실로 우리를 공포스럽게 한다. 하지만 저자는 말하고 있는 듯하다. 그게 어때서인가? 보이지않는 공포, 유령은 항상 존재해왔던 것 아닌가? 왜 미지의 것, 생경한 것에 유독 인간은 두려움에 떨어야하는가...
저자 버넛 리의 원래 이름은 바이얼릿 패릿이다. 열네살에 프랑스어로 첫단편을 낸 어린 작가, 또한 여러 외국어에 능통한 수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녀는 부록 <마법의 숲>이란 에세이에서 언급한 것처럼 마술의 주문과 끝없는 모험으로 가득한 세계로 우리를 이끈다. 그 마술적인 것은 유령, 혐오, 두려움, 금지의 표현으로 possession (빙의), 혹은 haunting(출몰)로 표현된다. haunting이란 통제권을 잃어간다는 섬뜩한 인식이 공포로 표현되는 것으로 저자의 이 책 <사악한 목소리>에 실린 단편들을 아우리는 주제의식이다.
총 세편의 단편 중 첫 작품이었던 <유령 연인>이 내겐 인상적이있다. 버넌 리 본인이 작품 속에 등장하여 극을 이끌어가는 이 소설은 시종일관 컬트적이고 묘한 몽환적인 느낌을 풍긴다. 모든 것이 광기에 사로잡힌 듯하나 막상 그 광기 안으로 들어가 있는 사람은 평안한 것처럼, 특히나 화가이자 책 전반의 서술가인 버넌 리가 묘사하는 켄트 소지주 오크부부의 모습은 그러했다. 17세기 니컬러스 오크 부인과 1880년의 앨리스 오크... 앨리스는 어쩐 일인지 17세기의 니컬러스 오크 부인에게 집착한다. 오래된 옷장을 뒤져서 그녀의 옷을 입고, 그녀가 한때 사랑했다던 연인 러브록의 시들을 잔뜩 꺼내고 무언가 나올법한 기묘한 방(오크는 들어가지도 않는) 노란 응접실에서 하루 종일을 보낸다.
극 중 오크가 하는 말은 인상적이다. 아내를 몹시도 사랑하고 아내가 현실에 살기를 바라지만 그녀는 다른 것을 보고 다른 말을 한다. 오크는 그녀의 보이지않는 연인에 대해서는 참을 수 없어한다. 설마 그 연인이 이미 생을 달리한 자라도 말이다.
화가는 앨리스 오크의 미모에 대해서 처음 보는 우아함과 아름다움이라고 칭송한다. 특히 연속적이고도 환상적인 선, 즉 대나무 같은 뻣뻣해 보이지만 나긋나긋한 몸매에 대해 알수 없는 경이를 표한다. 그녀는 극도의 친절과 철저한 무관심의 양면을 갖추었다. 자신의 관심분야에는 열렬히 몰두하면서 남편에 대해서는 마음씀이 없이 그를 그냥 지나쳐버리는 사람으로 취급한다. 아... 단 한 순간만이라도 앨리스 오크가 현실의 남편을 바라봤다면... 그 속에서 현실을 보고 삶을 직시했더라면... 비극적인 결말은 없었을텐데...
가끔 사람이 맹목적으로 몰두하는 순간이 있다. 어느 한 순간은 그 몰두가 힘이 되고 뭔가를 성취하게 하지만 기괴한 곳에 몰두, 지속적인 관심은 주변을 의식하지 못하게 하고, 소외시킨다. 그 몰두가 만일 유령이나 심령적인 것이라면 또 어찌할 것인가? 지나치게 예언을 믿는 오크 씨도 그렇지만 그것에 대해 빠져있고, 남편의 심약함을 이해못하는 아내 앨리스 역시 비극적인 캐릭터이다.
<끈길진 사랑>, <사악한 목소리> 에서 나오는 주인공들 또한 마찬가지이다. 섬뜩하게 기이한 것을 '언캐니'하다고 한다. 헨리 제임스가 버넌 리에 대해 총평한 단어이다. 그녀는 '언캐니'에서 소설의 가독성을, 예술성을, 심미성을 끌어내었다. 한평생 규정받지 않는 삶을 살고자 했던 버넌 리... 그녀의 삶이 작품 속에 그대로 투영되어 있음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