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류의 씨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3
이디스 워튼 지음, 송은주 옮김 / 휴머니스트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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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류의 씨

이디스 워튼 | 송은주 옮김 |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003

그녀는 이제 지금 모습 그대로,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그 모습 그대로, 남편의 새로운 이미지에 서서히 적응했음을 깨달았다. 그는 그녀의 꿈의 주인공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그녀가 사랑했고, 그녀를 사랑한 남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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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디스 워튼의 소설을 휴머니스트를 통해 처음 읽게되었다. <기쁨의 집>, <이선 프롬>, <여름>, <순수의 시대> 등 다양한 작품들이 있지만 그녀를 입문하기로 이만한 소설집은 없는 것같다. 총 네 개의 단편들이 모여있는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이디스 워튼편...

그녀의 4편의 단편을 읽으면서 작가의 삶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그녀는 유복한 집안에서 성장했고, 관습적이고 억압적인 방식의 교육에 대한 거부감으로 학교를 안가고 가정교사를 고용해서 배웠다고 한다. 이때의 경험으로 유한계급에 대한 생생한 묘사를 할 수 있었다한다. 또한 그녀는 남편에게 전혀 공감받지 못하는 결혼생활로 인해 결혼한지 이듬해부터 우울증에 빠진다. 신경쇠약과 우울증을 오가면서 그녀는 결혼과 여성의 삶에 대한 공포를 단편소설에 녹였다. 남편과는 오랜 별거끝에 이혼했고, 그 이후 그녀의 삶은 우울증과는 거리가 멀게 다채로워졌다.

결혼이란 무엇일까? 그리고 관계란 무엇일까? 이디스의 네편의 단편은 각각 결혼과 관계들을 다루고있다. 결혼에 대한 이디스 워튼의 관점이 단편들에서 보인다.

<편지>에서 2년동안 가정교사 노릇을 하면서 빈센트의 딸인 줄리엣을 가르쳤던 리지 웨스트... 그녀에게 어떤 변화가 온다. 바로 주인남자 빈센트와의 관계가 어떤 일을 계기로 발전했기 때문이다. 결혼 생활의 진실이란 과연 무엇일까? 경제적 안정을 모두 포기하고 그저 한 사람의 모습을 파헤쳐 그 진실을 공포로 바꿀 것인가? 리지 웨스트의 마지막 선택은 무엇일까? <빗장지른 문>에서는 남자 주인공이 나온다. 바로 그래니스... 그는 모든 것을 소극적으로 해오다가 마지막 자신의 의지를 담은 살인을 저지른다. 그 결과 부유해지지만 뭔가 의식적으로 불안하다. 뭔가가 쫓기는 듯, 스스로가 텅 비어버린 듯 불우한 삶... 그가 저지른 살인은 과연 그에게 빗장이었을까? 아니면 그 스스로의 의식의 탈출구였을까? <석류의 씨> 에서는 아무도 모를 공포가 스멀스멀 기어나온다. 그 누구도 말하지 않지만 으례 그것이라고 짐작하는 것들 말이다. 실체없는 공포이다. 흐릿한 글씨체, 절대 알아 볼 수 없는... 하지만 왠지 짐작은 가는 것들... 회색 봉투는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젊은 신부 샬럿을 금새 불행으로 몰아넣는다. 구체적인 실체가 있다면 미워하거나 적극적 행위를 보였을텐데 회색 봉투는 어떤 단서가 없다. 그저 왠지 죽은 전 부인 엘시와 관계된 것이리라 짐작가는 것뿐이다. 마지막 작품 <하녀의 종>에서는 불행하게 살아온 한 여성의 미스터리한 죽음을 말하고 있다.

<빗장지른 문>을 제외하면 여성과 결혼에 대한 공포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공포는 적극적인 위협이 아니다. 소극적으로 일상 전반에 깔려있다. 흡사 영화 배경음악처럼 말이다. 사람들이 흔히 결혼생활 속에서 은근하게 겪고 있는 공포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이 사람이 진정 남일 수도 있다는 생각... 내가 잘 모르는 사람이었다는 생각... 언제든 헤어질 수 있는 존재라는 생각...


한없이 가까운 것같지만 사소한 일들로 틈이 생길때 그 틈은 균열을 만들고 균열은 결국 파편만을 남긴 채 주변을 폭파한다. 뚝배기가 끓어넘치기 전에 자유자재로 불을 조절해서 넘치는 것을 막는 행위... 결혼 생활이란 바로 그런 것 아닐까? 서로의 마지노선을 지키는 일... 아슬아슬한 생활이다. 그 생활이 즐기는 것도 하나의 삶의 여유일 것이고, 넘치기 전에 꺼버리는 것도 하나의 지혜일 것이다. 당신의 뚝배기의 상태는 지금 어떠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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