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작은 방 박노해 사진에세이 4
박노해 지음 / 느린걸음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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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작은 방

세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은 내 작은 방에서 비롯된다.

내 작은 방은 내가 창조하는 하나의 세계,

여기가 나의 시작 나의 출발이다.

박노해 사진에세이 04 | 느린걸음

나에게 방의 의미는 나만의 공간, 그 이상이었다. 어릴 적에는 내 방을 몹시도 갖고 싶었다. 넉넉하지 못한 형편이었던 우리 집에서는 그 공간이란 사치의 다른 이름이었다.

어릴 적 빨간머리 앤이란 만화를 보고 무척 앤이 부러웠던 적이 있었다. 바로 앤이 녹색지붕으로 들어가 자신의 방을 보던 그 순간이었다. 소박한 다락방이었지만 그곳은 오롯이 앤만의 공간이었고, 아무도 방해못할 안식처였다.

앤을 보고 난 그때 나만의 공간을 내가 짓기로 결심했다. 하도 어릴 적 일이라 초등학교 몇학년인지는 기억이 가물 가물하지만 ㅎㅎ

우선 연탄으로 벽을 쌓아올렸다. 그 시절 연탄으로 난방을 하던 때라 난 온 몸에 검댕이를 묻혀가면서 식구들 몰래 마당 한쪽 구석에 내 키 높이 만큼 연탄을 쌓았다. 그리고 침대는 커다란 종이 상자를 구해서 그 위에 담요를 둘러서 완성했다. 벽돌 몇개를 구해 와서 나름 책장도 꾸몄다. 그리고 난 한밤중에 몰래 나와서 마당 한쪽 아지트에서 숙면?을 취하려고 했다. ㅎㅎ

결국 엄마가 마당 한쪽 구석 종이상자에 몸을 구겨가면서 누워있는 나를 발견하고 호되게 야단을 치는 바람에 결국 애써 만든 방에서 하룻밤도 못 채우고 식구들 다 같이 자는 방으로 쫓겨나기는 했지만 말이다.

박노해 시인의 사진을 보면 그 공간이란 비단 방에 국한 된 것이 아니란 생각이 든다. 길 위에서, 흙바닥에서, 개울가에서, 난민 가족의 단칸방에서, 혹은 엄마의 등에서 공간을 발견한다. 그 곳은 누구도 함부로 범접치 못할 공간, 사유의 장소였다.

그토록 내 방이 갖고 싶었던 어린 시절의 나는 지금은 스스로의 공간에서 꼼지락 거리며 이 글을 쓴다. 지금 이 곳은 온전히 나만의 공간이다. 주변에 책이 널렸고, 깍다 만 연필이 뒹굴고, 아이들이 한바탕 갖고 놓았던 장난감 들이 방 안 곳곳에 돌아다니지만 이 곳에 존재함이 감사할 뿐이다.

박노해 시인의 삶을 돌이켜 볼때 시인은 감옥 한칸 방에서의 공간을 세계로 확장시켜 놓은 느낌이다. 그의 발걸음이 닿은 곳마다 그의 세계로 다가왔다. 더 이상 공간은 방 안이 아니다. 이제 방 밖에서 그 공간을 찾아야한다. 스스로의 세계... 이 시작을 딛고 더 넓은 세계로 나아가는 공간의 의미... 공간은 다시 쓰여져야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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