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언 매큐언의 찬사로 부터 시작되는 책에 대한 호기심... 결국 맞았다. 시종일관 유쾌하고 밝았다. 보르헤스를 어느 정도 느낄 수 있었으며 (과연 내가 이 대문호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는 것이 진실인가?) 곳곳에 묘사된 아름다운 스코틀랜드의 풍경과 묘사는 여행을 가지 않더라도 어깨끈을 한번 단단하게 부여잡고 길을 나서는 기분을 느끼게 해주었다. 흡사 눈먼 보르헤스를 안내하는 제이 파리니의 옆을 따라서 그 배낭 위에 꼭 끼어서 여행을 가는 것같았다고나 할까? ㅎㅎ 너무 유쾌한 보르헤스와 가만히 있어도 왠지 웃음을 유발하는 제이 파리니... (사진에서 솔직히 너무 웃겼다. 검은 뿔테 안경을 쓰고 배 위에서 바람을 맞으면서 서있는 모습은 순박한 청년의 모습 그 자체였다. 정말 산초같은 느낌이다. )
보르헤스는 시대의 지성인이라고 하지만 난 그를 잘 몰랐다.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지만 너무 어려운 공부?를 시킬 것같은 엄한 선생님같은 느낌이랄까? 하지만 책을 보니 아니었다. 시종일관 유쾌하고 수다스러운, 정말 어디로 튈지 모를 재미있는 분이었다.
시인이자 소설가인 제이 파리니는 어느날 번역가를 소개받게 되고 그때 소개받은 번역가로 인해 일생일대의 모험을 하게된다. 바로 번역가인 알레스테어... 그로부터 보르헤스를 돌봐달라는 부탁을 받은 제이 파리니... 보르헤스는 제이 파리니를 보고 또 그가 1957년 모리스 마이너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하이랜드 여행을 제안한다. 스코틀랜드 횡단 여행을 시작하는 보르헤스와 제이 파리니... 시작부터 웃기고 코믹스럽다.
사실 예전에는 갑작스런 여행이 좋았다. 준비 안된 여행에는 뭔지 모를 스릴이 있다. 하지만 그만큼 불편도 있고, 재정적으로도 뭔가 손해보는 느낌도 든다. 가정이 생기된 후로 급 여행은 정말 꿈도 꾸지 못하게 되었다. 준비해야할 것도 너무 많고, 알아보고, 싸야할 짐도 세배로 늘었다. 정말 아무것도 안가지고 지갑만 가지고 나가도 든든한 시절이 있었는데 말이다.
보르헤스와 제이 파리니는 가는 곳마다 사건을 일으키며 우리에게 재미를 준다. 에피소드들은 너무 코가 빠지게 웃기기도 하고 조금 제이 파리니가 불쌍해지기도 한다. 하지만 보르헤스로 부터 받은 영감은 아마 파리니를 많이 성장하게 했을 것이 분명하다. 책 속에서는 많은 명언들도 나오고 책 속의 책도 나온다. 베오울프 이야기, 로빈슨 크루소, 네루다, 지킬박사와 하이드, 신곡, 리어왕, 맥베스, 아라비안 나이트, 밀턴 등 보르헤스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전혀 지루하지가 않다.
시, 이야기, 에세이를 한데 묶은 것같은 글을 썼던 보르헤스... 나중에 저자가 보르헤스가 아버지냐고 묻는 사람들의 말에 그렇다고 하는 장면은 인상깊었다. 여행 전과 여행 후 파리니는 성장했으며 또 다른 아버지가 한 명 생긴 셈이다.
시간은 지금 밖에 없다는 보르헤스... 지금 밖에 없는 시간...바로 행동해야한다. 정말 돈키호테 같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