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공화국
안드레스 바르바 지음, 엄지영 옮김 / 현대문학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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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공화국

안드레스 바르바 소설 | 엄지영 옮김 | 현대문학

21세기판 파리대왕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이 소설은 <파리대왕>만큼 가독성이 좋았다. 소설 속 32명의 아이들에 대해서 매료된 순간부터 내 머릿속은 아이들의 행방을 쫒기에 바빴다. 그들이 흡사 인간의 아이들이 아니라 이 세상 그 무엇에도 속하지 않는 흡사 정령이나 우주 속에서 잉태되어 지구상에 떨어진 존재처럼 느껴졌다. 아이들의 비밀을 알아내면 무언가 세상의 비밀스런 문 하나가, 새로운 차원이 열릴 것같은 예감으로 말이다.

소설 속 화자는 가상의 도시 산크리스토발에 온 사회복지과 소속의 공무원이다. 도시는 밀림이 인접한 곳으로 어느날 아이들, 어디에서 나타났는지도 모를 아이들이 도시 전체를 헤집고 다닌다. 그들은 그들만의 특정 언어를 쓰면서 나이는 9살에서 13살 무렵에 속해있다. 그룹을 지어서 몰려다니고, 구걸을 하거나 (애초에 소유의 개념이 없으므로) 물건을 뺏어 달아나는 것도 능한 존재들이다. 그룹을 지어 다니지만 그들에게 뚜렷한 리더는 존재하지 않는다. 아이들은 모든 것을 놀이로 즐긴다. 길거리를 헤집고다니는 것, 물건을 뺏는 것, 거리를 어지럽히는 것조차 그들에겐 사소한 웃음거리다. 그러던 어느날 다코타 슈퍼마켓에서 살인사건이 벌어진다. 그 아이들에 의해서 말이다. 살인은 그들에게 어떤 놀이처럼 혹은 지령처럼 여겨졌다. 사람을 찌르는 순간 한시의 망설임도 없이 응당 그래야하는 것처럼 말이다. 순식간에 모든 일은 벌어지고 아이들은 숨어버렸다. 이제는 아이들을 찾아야한다. 시에서는 비상이 벌어졌다. 화자도 아이들을 찾기위해 고분분투하지만 아이들은 이미 밀림에 숨은 뒤였고, 경찰 한명이 독사에 물린 후, 급작스레 수색은 중단된다. 그 후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바로 평범한 아이들이 갑자기 사라지는 것이다. 아무런 이유없이 하룻밤 사이에 증발하는 아이들... 흡사 하멜른의 피리부는 사나이가 어디선가 나타나서 데려가는 꼴이다. 그만큼 흔적도 이유도 없었다.

화자는 다시 필사적으로 아이들을 찾기 시작한다. 시장을 설득해서 밀림을 가서 단 한 명의 아이만으로 찾는다면... 그 각오로 밀림을 뒤진다. 그때 화자의 눈에 띈 한 소년이 있다. 바로 헤로니모다. 유일하게 그 날 찾은 단 한명의 소년, 비록 '나'는 그 과정에서 죽을 고비를 넘겼지만 말이다. 헤로니모는 어느날 화자에게 마음을 연다. 비록 교육적인 방법은 아니었지만 강제적인 어떤 강압을 한 결과 헤로니모는 입을 열였고, '나'는 아이들이 숨어있는 장소를 알게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만나는 빛의 향연...... .

처음에는 왜 소설의 제목이 빛의 공화국인지 아리송했는데, 책을 다 덮은 후 알게되었다. 아이들은 새로운 문명을 스스로 개척한 것같았다. 그들만의 언어를 만들고, 그들의 안식처를 만들었다. 그 속에 어른들의 자리는 없었고, 또한 선과 악도 없었다.

과연 세상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애초에 선과 악을 판단할 수 없다면 사람들은 과연 어떻게 움직이는가? 내 생각엔 소설은 그 주제를 32명의 아이들을 통해 말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그들에게는 어떤 규칙도 없고, 소유도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언어도 세상과 통용되지 않는다. 오직 그들 세계에서만 통할 뿐이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은신처와 먹을 것 뿐인 것같았다.

화자는 말한다. 32명의 아이들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음으로써 우리가 상상조차 못 할 일을 해낼 수 있었다고 말이다. 즉, 이 세상 모든 곳에 존재하게 된 것이다. 흡사 숨길 수 없는 빛처럼 말이다.

이 책을 읽은 후 한번 상상해보게되었다. 선과 악이라는 개념이 없어진 세상에서 다시 태어날 인간의 존재는 과연 어떤 문명을 그리고 살아가게될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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