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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 이전의 샹그릴라
나기라 유 지음, 김선영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1년 12월
평점 :
멸망 이전의 샹그릴라
나기라 유 지음 | 김선영 옮김 | 한스미디어
나기라 유는 어두운 소재를 맑고 아름답게 그려내는 작가라고 한다. 사람이 약하기 때문에 품는 어두움과 약하기에 다른 사람과 더불어 사는 법을 배운다고... 그러한 과정들을 섬세한 필치로 그려내는 작가... 그의 이력을 보면 무척 독특하다. 2007년에 데뷔 후 10년 동안 BL작가로 활동한 경력부터 10년차가 되던 2017년에 일반 문예소설을 출간하며 새로운 장르에 도전한 작가 나기라 유... 지금은 2020년 서점대상을 <유랑의 달>로 수상하고 요시카와 에이지 문학상 최종 후보에도 오르는 명실상부 일본의 대표 작가로 자리매김했다. 그의 남다른 필치는 과연 어떠한 것일까? 이 책 <멸망 이전의 샹그릴라>를 읽으면서 그의 경력이 괜한 것이 아님을 알게 됐다. 이런 상상력은 과연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소설은 유기적으로 얽혀있다.< 멸망 이전의 샹그릴라>라는 대제목에 묶여있는 샹그릴라, 퍼펙트 월드, 엘도라도, 마지막 순간은 모두 소혹성 충돌로 인한 지구 멸망에 어떻게 사람들이 대응하는 지를 각 인물들을 통해 보여준다. 샹그릴라에 나온 인물들은 그 후 주제에도 등장함으로 주인공들이 모두 상호작용한다.
과연 지구 멸망을 한달 앞둔 시점, 사람들은 어떻게 행동할까? 너그러워질까? 아니면 폭동을 일으키면서 난폭해질까?
샹그릴라에서 주인공 에나 유키는 소위 말하는 학교 폭력의 희생자이다. 그를 괴롭히는 인물은 동급생인 이노우에... 뚱뚱하고 소심한 에나 유키는 이노우에가 시키는 대로 뭐든 하면서 스스로를 비하한다. 하지만 그에게 후지모리는 좀 남다른 대상이다. 언젠가 같이 도쿄에 갈 약속을 우연치않게 하게 된 이후 후지모리는 에나 유키가 지키고 싶은 첫사랑으로 변모한다. 괴로울때 유키는 망상의 세계로 도피한다. 여느때처럼 괴롭힘을 당한 날도 그는 다들 죽어버려라는 저주를 마음속으로 퍼붓는다. 정말 그 저주의 실현인가?
소혹성이 지구 충돌까지 앞으로 남은 시간은 고작 한달... 한달 동안 과연 사람들은 무슨 일을 하며, 어떤 삶을 살아가게 될까? 에나 유키는 어느날 후지모리가 혼자서 도쿄 콘서트장으로 간다는 것을 알게 되고 거기에 이노우에 무리도 합류함을 깨닫고 그녀 뒤를 밟는다. 여기에 든든한 후원자는 바로 에나 유키의 엄마이다. 시원 시원한 성격의 엄마는 아들에게 호신용으로 신문지로 싼 칼을 건넨다. 과연 에나 유키와 후지모리는 무사히 도쿄로 갈 수 있을까? 소설 첫머리 문단은 00를 죽였다고 시작된다.
지구에 소혹성 충돌은 정말 상상하기 싫지만, 만일 그런 상황이 펼쳐지면 지구인들은 과연 어떻게 행동을 할까? 예정된 죽음, 예정된 멸망이 코 앞으로 닥친다면 말이다. 아마 내 생각엔 조용히 먹고 싶은 것 먹고, 가고 싶은 곳도 가보고(아마 모든 것이 멈췄을테니 걸어서 가거나 남은 연료로 가야하겠지) 사랑하는 이들과 시간을 보내고 싶을 것같다. 그 외의 사람들도 있겠다. 소위 샹그릴라에서 등장한 이노우에같은 인물, 때는 지금이다 생각하고 스스로의 욕망을 채우려하고, 남들의 것을 아무렇지않게 뺏고, 어차피 죽을 운명에 남을 죽일 운명을 더하는 사람들 말이다.
멸망 이전에 펼쳐질 세상이 과연 샹그릴라일까? 유토피아? 엘도라도? 페펙트 월드 일까? 과연 그랬으면 좋겠다. 멸망 직전만이라도 온 세상이 평화롭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