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잊어도 좋겠다 - 나태주 인생 이야기
나태주 지음 / &(앤드)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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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잊어도 좋겠다.

나태주 인생 이야기

저자 나태주 | &앤드

나태주 시인의 어린 시절의 기억 창고를 열었다. 그는 자신의 이야기가 잘 정리되지 않아서 시간이 오래 걸렸다고 했다.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 이도 저도 안된 이야기들이 생성된다고... 하지만 이렇게 오롯이 정리된 시인의 옛 이야기를 조근조근 듣고 나니 나도 왠지 내 이야기를 기록하고 싶어지는 마음이다. 시인이 조심스레 자신의 기억 창고를 열었던 것처럼 나도 언젠가 나의 기억 창고를 더듬어 봐야겠다.

나태주 시인은 풀꽃 시인으로 알려져있다. 그의 시도 아름답고, 무엇보다 그의 삶이 바로 풀꽃과 같았기 때문이 아닐까? 남 앞에 애써 자신을 보이려하지않고, 그저 자연에 속해 있는 하나의 풍경으로 삶을 인내하고 버티는 것... 오랜동안 교직생활을 해온 시인이지만 그의 시는 전혀 정형화되있거나 소위 말하는 가르치려드는 것도 없다. 그저 눈 앞에 있는 것들을 담담하게, 한편으로는 약간 오그라들게 노래하는 것뿐이다. (그의 사랑 노래같은 시를 읽으면 난 왜 약간 오그라드는 지 모르겠다. ㅎㅎ 한때 얼굴과 나이를 몰랐을땐 엄청 젊은 사람일 거라 생각했었다. )

197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문단에 데뷔한 그는 등단 이후 50년 동안 끊임없이 창작활동을 해왔다. 별안간 느닷없이 풀꽃 시인이 된 것이 아니다. 생각보다 내공이 깊은 작가였다.

예전에 작가님을 유키즈라는 프로그램에서 본 적이 있었다. 자신의 첫사랑 이야기부터 (그 사랑을 못이겨 며칠째 끙끙대면서 쓴 시가 덜컥 당선이 됐다고 하는 이야기를 그때 들었다.) 아무도 묻지도 않은 집의 부동산 시세부터 ㅎㅎ 시종일관 유쾌하게 말씀을 해주셔서 그의 시를 제대로 알기도 전에 시인에게 호감이 들었다.

나태주 시인의 어린 날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그가 왜 시를 쓰고 문학을 하는 사람이 됐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저자는 자신의 DNA에 글 쓰는 재능은 없었다고 말하며, 느닷없이 정말 어떻게 이렇게 글 쓰는 사람으로 살아왔는지 모르겠다고 하지만 말이다. 아마 그의 시를 좋아하고 그의 글을 읽은 사람들은 다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시는 투명한 마음으로 써야한다. 난 시인이 세상에서 가장 투명한 사람이라고 생각된다. 그 안에 어떤 숨길 것도 없고, 내세울 것도 없고, 그저 겸손한 마음으로 세상의 것들을, 자신이 보는 모든 것들을 담담히 노래하는 것... 물론 시대 정신을 내세우면서 참여를 유도하는 시도 있겠지만, 어쨌던 시는 자기검열의 가장 끝에 있는 자신의 심장을 쥐어짜는 스스로에 대한 노래인 것이다. 나쁜 사람은 시를 쓸 수없다. 그 시는 언젠가는 바닥을 드러내기 마련이다.

사람을 보면 그의 글이 느껴지고, 그의 글을 읽으면 그 사람이 느껴진다. 내가 한때 젊은이로 착각?했던 나태주 시인은 실제로 마음이 너무 순수하고 맑은 분임이 글에서 느껴진다. 그것이 바로 시의 아우라이다. 이렇게 시인의 인생이야기를 에세이로 읽을 수 있게 되어서 너무 좋았다. 덩달아 나의 어린 시절도 소환되어 같이 뛰어논 기분이 든다.

책을 덮을 때는 이제 집에 가야할 시간 같은 아쉬움이 느껴졌다. 골목길에서 한창 놀다보면 밥 먹어라~~ 하는 소리에 모든 아이들이 어느순간 사라진 골목... 그같은 풍경이 마음 속에 어린다. 이제 우리 모두 밥을 먹으로 가야하고, 밥을 하러 가야하고, 밥값을 하기 위해 살아가야한다. 하지만 그 시절 아름다운 풍경은 여전히 박제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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