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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의 정원에서
크리스티앙 보뱅 지음, 김도연 옮김 / 1984Books / 2021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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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의 정원에서
크리스티앙 보뱅 지음 | 김도연 옮김 | 1984BOOKS
이 글은 저자가 평생 사랑했던 여인 지슬렌 마리옹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에의 기록이다. 하지만 이 책은 죽음만을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죽음 너머 삶을, 그 찬란한 순간을 말한다. 잠깐 살다가는 그 순간의 삶, 찰나의 삶을 보뱅은 그만의 언어로 들려준다.
1995년 8월 단순한 두통인 줄 알았던 것... 파열성 뇌동맥류... 알 수 없는 것을 표현하는 것... 그녀는 그렇게 한순간 사라졌다. 충분히 아프고 주변을 정리할 시간조차 그녀에게는 주어지지않았다. 바르바라가 노래한 [검은 독수리]처럼 그렇게 예고 없이 그녀의 머리 위에 내려 앉은 죽음이었다. 바르바라를 좋아한 그녀, 지슬렌...
저자는 말한다. 자신은 육신으로 한번 태어났으며 다시 지슬렌을 만난 후 영혼으로 두번 태어났다고 말이다. 때는 1979년 9월 말의 어느 금요일 밤 10시... 바로 지슬렌의 첫 남편의 집에서 말이다. 때와 시를 정확히 기억하다니... 그리고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다른 사람의 여자를 이렇듯 절절히 사랑할 수가 있다니... 꼭 그의 마음 속에 단테가 들어앉아있는 듯하다. 어느 날 아르노 강가 다리 위에서 베아트리체에게 한 눈에 반한 아홉살의 어린 단테처럼... 그 후 단테의 가슴에 베아트리체가 콕 하고 박힌 것처럼 지슬렌이란 여인이 보뱅의 가슴에 박혔다. 심지어 그녀가 이 세상을 떠난 뒤에도...... .
라그랑주 점... 이 글을 읽다가 떠오른 포인트다. 라그랑주점이란 원심력과 중력이 상쇄되는 지점으로 이 지점에 가 닿으면 물건이 압정에 콕 박히는 것과 같은 상태가 된다. 왠지 지슬렌이 보뱅에게는 그런 지점이 아니었을까? 지슬렌을 중심으로 공전과 자전을 반복하면서 그녀에게서 멀어질 수 없는, 계속 그녀를 쫓아갈 수 없는, 심지어 이렇게 글로라도 남길 수 밖에 없는 존재로서 말이다.
이제 25일에 허블 망원경 저리가라하는 우주 망원경 제임스 웹이 발사된다. (발사가 연기될지도 모르겠다) 바로 라그랑주 점에 말이다. 지구로부터 150만킬로미터 떨어진 곳이라서 만일 고장이 난다해도 고칠 재간이 없다. 그래서 안정적 발사를 위해 연기가 수차례 된 허블보다 100배의 성능을 가진 우주 망원경이다. 그 망원경으로 빅뱅 전 우주를 볼 수 있다고한다. 무려 우주의 시작을 관측할 수 있는 것이다. 거대한 무게와 크기로 인해 그 망원경은 접혀져서 발사되며 우주에서 펴지는 데 무려 한달이 걸린다고 하니 대단한 과학 기술의 쾌거이다.
보뱅과 지슬렌을 보면서, 우주를 생각한다. 인간은 하나의 우주라고하는데 보뱅의 글은 그 자체가 우주에서의 유영처럼 느껴진다. 보뱅은 말한다. 쿠션, 모자, 실내가운, 감초사탕, 모락모락 김이 피어오르는 핫 초콜릿, 초록 식물들의 고요한 빛, 이 모든 사물들은 사라질 터이지만 잊혀지지는 않을 거라고 말이다. 바로 지슬렌을 나타내는 것들.. 단지 장소와 그림자를 바꾸게 될 뿐이라고 말이다.
보라색 실내 가운을 걸친 채 핫 초콜릿을 마시는 지슬렌의 모습이 그려진다. 보뱅의 글 속에 그녀는 살아있다. 워크맨만 사라졌을뿐 하늘의 목소리가 니체나 파스칼의 목소리보다 명료하고 정확하다고 말하는 보뱅처럼, 지슬렌의 실체는 사라졌지만 그녀는 보뱅의 글 속에서 명료해진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우주가, 별이 사라지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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