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희의 인간
크리스티앙 보뱅 지음, 이주현 옮김 / 1984Books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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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희의 인간

글쓰기란 넘을 수 없는 벽에 문을 그린 후, 그 문을 여는 것이다.

크리스티앙 보뱅 지음 | 이주현 옮김 1984BOOKS

저자의 전작 <작은 파티 드레스>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그의 두번째 책을 만났다. 보뱅은 프랑스의 시인이자 에세이스트로 독특하고 맑은 문체가 특징인 작가이다. 어쩐지 그의 글은 유독 시적이다. 매번 밑줄 긋고 낭독케 하는 힘이 있는 글이다.

환희란 무엇일까? <환희의 인간>에서 저자는 환희를 이렇게 정의한다. 오늘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는데 하늘이 손 안으로 들어올때, 그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 바로 환희이다. 전쟁같은 세상에서 만나는 고요의 시간, 우리 모두의 마음 속에는 절대 권력자가 앉아있다. 저자의 말대로하면 그 권력자는 태양왕이다. 그리고 그 태양왕이 잠시 자신의 왕좌에서 내려와 길 위에 서서 몇 걸음 내디디면 환희의 인간이 되는 것이다. 일상의 찰나의 아름다움, 그 포착, 하늘을 보는 행위, 연못 위의 수초를 보고 감탄하는 일들... 이 작은 일상이 환희의 순간이다. 멈추지 않고서는 볼 수가 없는 순간, 그 왕좌를 고집하고 있다가는 절대 만날 수 없는 순간들이다.

저자는 페이지마다 하늘의 푸르름이 스며든 책만을 좋아한다고 한다. 그 환희의 기록이 바로 이 책 <환희의 순간>이 아닐까 한다.

보뱅은 말한다. 나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후에도 읽을 수 있는 책을 쓰고 싶다고 말이다. 아내를 잃고 실의에 빠진 한 남자는 책을 멀리한다. 책에 속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저자에게는 그 말은 소중한 것들이 허무의 입에 삼켜지고 단단한 이에 찢어 발겨지는 것을 바라보는 걸 방해받고 싶지 않다고 들린다. 보뱅은 협죽도를 본다. 하얀 협죽도를 통해 항상 사랑하고 항상 고통받으며 항상 죽어가는 .... 그 영감을 생각한다.

글을 읽으면서 저자가 글을 쓰는 것에 얼마나 진심인지 그 마음이 느껴진다. 지슬렌 앞에서조차 그는 글을 쓴다. 자신이 글을 쓸때 방해가 된 적이 하나도 없었다면서... 그리고 그 글은 오직 너만을 위해서 써온 거라는 것, 만나기 전 부터 말이다. 그의 한 마디 한 마디에서 단어가 빛이 된다. 그는 빛보다 단단한 단어를 고르고 골라 글을 써 내려간다. 그 글들이 사라지지않기를...윤회에도 길을 잃지 않는 빛을 얻기 위해 빛보다 환한 단어를 고른다.

보뱅은 말한다. 그리스도의 한 마디가 그를 천사보다 나은 존재로 만들었다고 말이다. 그 말이란 바로 "나의 하느님, 나의 하느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이다. 흔희 성경학자들은 그리스도의 이 말이 인간적인 나약함의 표현이라고 주석을 달지만 그에게는 이 말이 사랑의 말로 들린다. 이 외침으로 인해 그리스도는 우리의 친구가 된다. 우리를 죽이는 것들에게 계속해서 애정 어린 말을 건낼 수 있게 된다. 사랑이 된다.

마리아예요를 시작으로 한 열쇠 꾸러미, 환희의 꽃, 환희의 설거지까지... 이 글에서 저자는 처음에 말한 환희를 획득했다. 그 푸르름의 페이지를 가졌다. 계속해서 글을 써내가는 시인 보뱅, 그리고 사교계와는 동떨어진 생활을 하는 고독한 작가지만 그의 글에서는 전혀 그런 느낌이 없다. 저자의 환한 웃음이 담긴 인물사진에서 그가 얼마나 선량하고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인지 느낄 수 있었다. 그 사람이 그 글과 닮아있음을 보뱅을 통해 다시금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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