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부류의 마지막 존재
시그리드 누네즈 지음, 민승남 옮김 / 엘리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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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부류의 마지막 존재

시그리드 누네즈 장편소설 | 민승남 옮김 | 엘리

처음 시그리드 누네즈를 접했을때는 평소 관심있게 보는 저자인 문학평론가 신형철님을 통해서 였다. 그 분이 별로 추천사를 쓰지 않는 것으로 아는데(아닌가? ㅎㅎ) 그 분의 열렬한 추천사를 보고 시그리드 누네즈가 궁금해졌다. 그리고 읽은 첫 책이 [ 어떻게 지내요? ]였다.

내가 평소 궁금해하던 주제들과 죽음에 대한 것들이 섞여서 소용돌이치는 기분이었다. 그래, 삶이란 이런 거지...죽음이란 이런 거지... 바퀴를 세게 구르지않아도 그 탄성으로 저절로 굴러가는 그 무엇처럼 우리네 인생도 그렇게 살아가는 거지... 그런 류의 위로의 감각을 느꼈다고 할까? 그래서일까? 이 소설도 왠지 어떤 시그리드의 감각이 있을 것같았다. 물론 전혀 다른 종류의 감각이었다.

소설가는 여성들의 연대에 대해 말한다. 전작에서도 두 여성의 삶과 우정, 죽음에의 여정이 나타나있다면 이 책에서는 앤과 조지, 솔랜지를 통한 연대의 의미를 말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 사회에서 폄하되는 그 무엇에 관해 말하고 있다. 흔히들 잘살고, 부유하면 노동운동을 해서는 안되는 것으로 안다. 그 자신의 신념으로 그 길에 섰어도 사람들의 편견어린 시선은 그 너머를 향하기 힘들다.

앤은 거기에 대항했다. 자연스럽게 부모를 멀리하고, 또 머리를 자르고, 자신이 가진것을 모두 팔아서 나눠주었다. 하지만 그녀의 선은 그녀의 배경, 즉 자본주의의 부로 인해 가려진다. 끊임없이 그녀는 나는 나라고 말하는데, 세상은 그녀가 버린 성을 다시 주워다 주고, 부유한 응석받이, 철부지, 혁명놀이를 한다고 그녀의 신념을 깍아내린다. 판사와 변호사가 말한 그 부류의 마지막 존재란 어떤 의미일까?

조지는 생각한다. 유일하게 학창시절부터 앤을 가까이서 알고 그녀를 어떤 면에서는 존경하는 조지는 앤이 꼭 위대한 개츠비를 닮았다고 생각한다. 혁명을 원하지만 대중의 외면을 받는...하지만 홀로 고고한 자... 조지에게 앤은 개츠비같은 존재였다. 세상에서 인정받지 못하더라도 끊임없이 머리를 디밀고, 투쟁하고, 스스로가 다 사그라들때까지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는 자... 앤은 그런 존재였다. 그 부류의 마지막 존재...... .

이 책은 우리를 1960년대 미국으로 데려다 놓는다. 그때의 감성, 히피문화, 마약, 전쟁거부... 과연 이 시대에서 우리는 왜 그 부류가 되지 못하는가? 아니, 왜 그 부류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하는가? 그 시절에 모두가 그 부류가 되어야하지않았나? 모두가 투쟁할 수 밖에 없는 상황... 투쟁이 정당한데도 왜 손을 놓고 있어야하지?

앤은 마지막까지 앤이었다. 그녀가 만일 조지같은 형편에서 자랐다면 그녀는 아마 자신의 신념을 더 멀리 펼쳤을 것이다. 세상이 그녀를 믿어줬을 것이다. 하지만 아마 그런 사람은 오직 그렇다는 이유로 그 부류에 속하지 못했으리라...

우리는 삶에서 모두 그 부류의 마지막 존재가 되어야한다. 내 삶에서는 모두 주인공으로 살아야한다. 배경이나 지식..그런 것들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문제는 삶에 대한 태도이다.

앤이 조지에게 위대해 보인 이유는 그녀의 삶에 대한 태도가 그녀의 삶과 일치하기 때문이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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