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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사람들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지음, 김선영 옮김 / 새움 / 2021년 9월
평점 :

가난한 사람들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 김선영 옮김
소설 <가난한 사람들>은 도스토옙스키의 등단작으로 당시 살던 사람들의 모습을 현실적으로 바라보고, 그들의 삶에 관심을 보였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은 작품이었다.
소설 속 주인공 마카르는 고아인 바르바라를 연신 추켜세운다. 그의 편지글에서는 그 자신이 얼마나 바르바라를 아끼고 있는지 여실히 드러낸다. 나의 아가씨, 경외하는 당신, 변함없는 당신의 친구, 나의 비둘기... 정말로 그에게 바르바라, 바렌카는 그런 존재였다. 47세의 하급관리 마카르 제부시킨은 17세의 고아 아가씨 바르바라 도브로숄로바와 54통의 편지를 주고 받는다.
책 속에는 고골의 단편소설 <외투> 가 등장한다. 바르바라가 빌려준 <외투>를 읽은 마카르 제부시킨은 아카키의 불행을 자신의 것인양 받아들인다. 그에 대해 그는 모욕감을 느끼고 분노한다. 외형적으로 닮아있는 고골 작품 속 <외투>의 아카키와 <가난한 사람들>의 마카르 제부시킨은 제부시킨 스스로 아카키의 가난을 어찌보면 경멸한다는 것에 있어서 아이러니다. 마카르 제부시킨은 절대 아카키를 자신과 비교할 마음은 없다. 오히려 창피하게 여겼다.
마카르는 가난과 특유의 어떤 성격으로 인해 직장에서 무시당하고 놀림 받는 일이 일상이다. 하지만 그를 전혀 다른 존재로 일깨워준 그 무엇이 있었으니 바로 먼 친척인 바르바라를 후원하게 되면서다. 이제 찌질하고 궁상맞은 제부시킨은 더 명백한 소망을 갖게 되었다. 자신에게 누구보다 소중한 존재가 생겼으니 그 존재에게 최선을 다하고 싶다는 선한 의지였다. 하지만 이 의지는 제부시킨의 지독한 가난으로 말미암아 퇴색하고, 가뜩이나 궁상맞은 일상이 더욱 더 궁상맞게 변하게 된다.
그는 그녀를 보살피려는 마음에서 제복도 팔고, 월급도 가불받는다. 저렴한 방, 그것도 방이라고 할수 없는 부엌 옆 칸막이로 막힌 공간에서 어찌 됐든 긍정적인 면을 풀어놓으려고 애쓴다. 제부시킨이 편지글에서 아무리 자신의 가난을 긍정적으로 바르바라에게 설명하려고 한들 오히려 그 명랑함이 더 궁색함과 곤궁한 처지를 부각시킬 뿐이다.
바르바라는 마카르의 진실을 의심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가 자신으로 인해 점 점 더 어려워지는 것을 보고 무척 괴로워한다. 바르바라는 이미 가난한 사람들에게 예견된 미래를 그 스스로의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다. 그렇게 장밋빛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가난의 미래는 곧 후손의 불행이었다. 그녀는 이런 말을 한다.
"불행하고 가난한 사람들은 서로에게 떨어져야 한다" 라고 말이다. 이 말은 마카르 제부시킨에게는 바로 이별 통보였다. 그를 살게 한, 그의 가난을 잊게 했던 유일한 존재 바르바라는 바로 그의 가난을 이유로 그를 떠난 것이다.
가난하지만 미래가 있고, 희망이 있고, 그런 것은 이미 여기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가난해서 미래가 없고, 희망이 없다.
소설은 낙관적인 담론을 허락하지 않는다.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하는 그 무엇도 등장하지 않는다. 오직 가난에서 스스로를 구할 뿐이다. 결국 뻔히 보이는 불행한 선택을 할 수 밖에 없는 바르바라같은 존재를 가난이라는 자궁은 계속 잉태하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