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맨 브라운
나다니엘 호손 | 내로라
구킨 장로는 혼자 예배를 드리는 중이었다. (중략)
저 마법사 자식은 도대체 어느 신에게 기도하는 거야?
당신, 지금 어느 신에게 기도하고 계십니까? 한손으로 악을 저지르면서 다른 한 손으로는 그것을 위해 빌고 있나요?
인간이 악에 대해서 얼마나 담대해 질 수 있는가? 저자는 선의 대표자로 굿맨 브라운을 설정해 놓았다. 그리고 절대적인 선의 존재에게 그 이유를 묻는다. 그가 과연 선을 끝까지 지킬 수 있는지... 그의 신념은 얼마나 단단한지 말이다.
어두운 숲길을 헤치고 지나갈때 굿맨 브라운은 울부짖는다. 악에 귀 기울이기도 하고 거의 넘어도 갔지만 그가 가장 당혹한 순간은 그 스스로 믿었던 사람들이 악의 손의 기꺼이 잡는 모습을 보았을 때다. 위선자들, 법범자들... 겉으로는 하얀 수의를 입고 있어도 속은 너무나 썩어서 그 썩은 물이 흰 옷 밖으로 다 베이있는 사람들이다. 성직자들, 젊은 어여쁜 처녀아이들, 그리고 그의 신실하다고 믿었던 이웃들까지... 그들은 모두 한 발은 악에 걸쳐 있는 사람들이었다.
세상이 악에 가득 차 있다면 선과 악의 싸움은 이미 무의미한 것이다. 악마는 인간의 자유의지를 더 이상 시험할 흥미를 느끼지 않을 것이다. 온 세상이 자기 것인데 왜 굳이 인간을 가지고 시험하겠는가... 그에게는 아직 굿맨 브라운처럼, 시험에 빠지지않는 사람이 있었기에 그들마저 다 악으로 물들이기 위해 시시탐탐 노리고 있다. 백퍼센트 중 십퍼센트 만이라도 선한 의지의 사람들이 남아있다면 세상은 변할 가치가 충분하고 가능성이 있다.
가끔 세상에는 이해가 안가는 일들이 너무 많이 생긴다. 각종 뉴스에서 쏟아지는 사건 사고들... 인간의 능력, 인간의 생각으로 어떻게 그런 일들이 일어나는지 상상하기 조차 힘들다. 그럴때는 이렇게 치부하는 것이 차라리 속 편하다. 그래, 세상은 이미 악에 가득 차 있어. 거기에 인간은 우두머리지... 악의 꼭두각시...
하지만 이럴때 일수록 누군가는 말한다. 깨어있으라고 말이다. 사소한 증거와 사소한 일들을 유심히 지켜보라고 말이다.
그것이 나중에 어떻게 변할 지 알 수 없다. 조그만 구멍이 나중에는 아파트 마저 삼킬 거대한 싱크홀로 변할 지는 그 누구도 모르는 일이다.
얼마전 영화 랑종에 대한 인상깊은 코멘트를 봤다. 세상은 이미 악에 가득차 있고, 거기에서 인간들은 고통받는다. 하지만 인간이 신에게 빌어도 신은 아무런 말도 하지않는다. 그럴때 인간은 어떻게 행동해야하는가... 아무런 말도 없는 신에게 계속 빌어야하는가..아니면 악을 따라서 영원히 고통받을 것인가?
이 소설도 그와 마찬가지인 세계관으로 읽힌다. 굿맨 브라운이 끝까지 행복하지 못하고 너무나 침울하게 살다 간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최소한 그는 그의 신념만이라도 지켜야했다.
출판사지원도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