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와 비순수
시도니 가브리엘 콜레트 지음, 권예리 옮김 / 1984Books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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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와비순수/시도니가브리엘콜레트/권예리옮김/1984books

[이 쾌락들]에서 [ 순수와 비순수]로 바뀐 제목... 쾌락은 강한 그 무언가의 자극이지만 과연 그 쾌락이 비순수를 의미하거나 반면 아이같은 순수를 역시 의미하는 것은 아닐 것같다. 어찌보면 무엇이 순수이고 비순수인가 문제는 작가가 오로지 독자에게 떠넘긴 몫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콜레트 자신은 맑은 음색에 대한 애착 등을 이유로 그다지 중요하지 않는 여러 것들을 그 예로 들지만 말이다.

모든 판권을 남편에게 빼앗기고 연극배우로서 생계를 이어가야 했던 콜레트, 그런 그녀가 다시 주목받기까지 얼마나 고단한 시간이 있었을까? 책 앞 날개에 여인의 모습에서는 그런 시간들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콜레트를 통해서 19세기가 다시 보였다. 19세기는 세라 워터스의 소설들에서 그 분위기가 느껴졌지만 직접 19세기에 살았던 콜레트를 통해서 엿보는 그 시대는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오히려 지금 시대보다 성에 대해 자유롭고 호기롭다고나 해야할까? 모든 것이 공유되고 자신의 일상을 쉴새없이 SNS를 통해 보여주는 지금보다 왜 그때의 모습들이 더 자극적이게 기억될까? 아마 그것은 어떤 열망, 금지된 것을 향한 의지 등 모든 것이 복잡적으로 적용되어서 나타나는 모습일 것같다.

사실 조이는 코르셋 속에 숨을 못 쉬어 답답하지만 그래서 후에 코르셋을 벗은 다음에는 더더욱 자유분방하고 활기있게 살아지는 것처럼 말이다. 다시 코르셋으로 답답해 질 것은 아니까 지금 이 순간은 자유를 누리자는 그런 의미... 이건 물론 순전히 나의 상상이지만 말이다.

콜레트의 작품 안에서는 동성애, 아편, 약들, 욕구와 욕망 등에 대해서 대담한 이야기들이 펼쳐져있지만 그것들이 전혀 타락했다고 여겨지지 않았다. 오히려 시적이라고 해야하나.... 콜레트는 그 모든 욕망들을 시적으로 녹여내는 재주를 가진 여인인 듯하다. 그녀가 19세기의 아이콘이었다는 것은 틀린 말이 아니다.

콜레트의 삶이 영화로도 연극으로도 끊임없이 재조명되고 있었다니 앞으로 콜레트의 다른 작품과 그녀의 일생을 다룬 매체들을 찾아 볼 생각이다.

우선 트루먼 커포티가 쓴 하얀 장미를 읽어보고 싶은데... 찾을 수 있을런지 모르겠다.

콜레트의 소설과 일대기들이 앞으로 많이 조명되었으면 하고 바래본다.


출판사 지원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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