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50개주에 대한 이야기, 그 각각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그 전에 잘 알지 못했던 땅의 가치에 대해 새삼 생각하게 되었다.
미국의 역사는 알고보면 지배와 피지배의 역사 그리고 거기에 깃들인 폭력과 굴복의 역사였다. 수많은 열광이 신대륙 발견이라는 명목 하에 땅을 넓히고 자원을 갖고 노동력을 통치하길 원했다. 그 결과 북아메리카라는 곳에 스페인, 프랑스, 영국의 청교도인까지 합세해서 식민지를 건설했다. 플로리다에 상륙한 스페인은 서북쪽으로, 캐나다 동부의 프랑스인들은 미시시피강을 따라 미국 중부에, 동부 해안 지방의 영국인들은 서부로 나아갔다.
이런 상황에 그 땅에 본래부터 살고 있었던 원주민들은 회유당하고, 억압 당하고, 굴림 당했다. 사실상 총으로 무장한 열강의 군대 앞에 가진 무기라고는 활과 도끼 뿐인 그들은 게임이 되지않았다. 결국 그들은 이제 인디언 보호구역이라는 곳에 사실상 가두어 둔 꼴이 되었다.
지금 그 미국은 막강하다. 열강이 앞다퉈 세운 나라지만 공통어 영어를 필두로 다 지역의 인류가 모여사는 곳이다. 사실상 여러 민족이 섞여서 사는 이 곳에 피부색과 출신을 이유로 차별과 폭력이 일어난 다는 것은 참 그 자체가 아이러니하다. 어차피 모두가 다른 곳에서 와서 모여든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얼마전 인종차별에 대한 기사를 봤다. 동양인이라는 이유는 또는 흑인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받는다. 여기에 차별당한 민족이 또 다른 민족을 차별한다는 것은 비극적이다. 한인 가게에 불을 지르고 물건을 약탈하는 쪽의 흑인의 비율을 보면 말이다.
얼마전 미나리라는 영화가 오스카 여우주연상을 타고 각종 상 후보로 오르내렸다는 반가운 소식이 있었다. 그 속에 들어있는 신 아메리카 드림, 그리고 낯선 곳에 정착하는 사람들의 심정을 미국인들이 공감해서 그런 상을 받을 수 있었다고 추측한다. 많은 미국인들이 이민자들이다. 그들은 정착해서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공감한다. 척박한 토지를 일구고 낯선 이웃들을 만나고 새 직장을 구해야한다.
그러니 이제는 공감과 이해의 정서를 널리 퍼뜨려야하지 않을까? 대립과 반목보다는 미국이라는 나라가 여러 민족과 여러 국가가 어우러져 무지개 빛으로 만들어져있듯이 비빔밥처럼 섞여져야하지 않을까 싶다.
공감의 매력이 없었으면 한반도의 작은 나라의 영화를 그렇게 많은 세계인들이 좋아해주지 않았으리라... 생각해본다.
출판사 지원도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