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후 내가 이 세상에 없다면... 제목부터 뭔가가 아련해진다.
벌써 이제 꽃이 지기 시작한다. 봄꽃이... 그토록 찬란한 희망을 품고 피어나던 꽃들이 서서히 지기 시작한다. 그래서 이 제목이 더욱 마음에 와 닿았을 지도 모르겠다.
저자는 죽음에 대한 공포를 처음 극복했던 방식이 바로 그 죽음을 끝이 있는 인생의 종착점이라고 받아들인 순간이라고 했다. 천상병 시인의 시가 생각나는 대목이었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이 세상 소풍 끝나는 날.... 천상병 시인 역시 인생을 소풍이라고 비유했다. 저자가 인생이 종착점이 있는 여행이라고 생각한 순간, 바로 그 시점이 인생을 긍정적으로 인식할 수 있게 된 계기였다고 한다.
나는 인생을 탄생과 비유하고 싶다. 우리가 모두 엄마 뱃 속에 있을 때 그리고 처음 작은 씨앗으로 생겨났을때 우리는 어디서 왔는지 모른다. 어쩌면 정말로 우주에서 왔을 지도 모르겠다. 그 많은 유전자 정보가 축척되어서 한 세대, 한 세대를 거쳐서 이어져 왔으니 말이다. 탄생이 그렇게 위대한 순간이면서도 기억에 없는 것처럼 죽음 역시 그러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탄생과 죽음은 어찌보면 서로 알지 못한다는 의미에서 하나이다.
죽음 후의 세계, 즉 사후 세계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아마 탄생의 비밀부터 풀어야하지않을까싶다. 그 둘은 서로 밀접한 관계에 있을테니까 말이다.
저자의 글 중에서 구강암 선고를 받았음에도 항상 밝게 살고 좋아하는 소설 이야기를 하는 20대 청년 이야기가 나온다. 그 청년은 처음에는 '왜 하필 나에게...' 하는 마음으로 분노하며 울분을 품고 삶을 원망했는데 그의 태도가 바뀐 이유는 아마 삶 전체를 관망하는 자세가 달라졌기 때문일 것이다. 바로 죽음의 존재를 받아들이는 방식에 있어서 어느 정도 긍정했기 가능한 일일 것이다.
나 역시 소망한다. 내가 만일 예기치않게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면 원망과 두려움의 시간은 짧게 보내고 즐거움과 감사의 시간을 많이 보내기로 말이다.
지금부터 좋은 기억들, 좋은 추억들 많이 만들어서 누구나가 닥칠 그날에도 꿋꿋하고 담담하게 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