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 중 모자수의 아들 솔로몬은 일본에서 태어났지만 미국에서 공부하고 돌아와서 영국 은행에 취업한다. 조선어는 못했지만 일본어는 모국어로 뛰어났고 영어 실력 역시 그러했다. 그는 조선사람일까? 일본사람일까? 솔로몬에게 일본은 자신이 태어난 고향이지만 그는 아직도 등록증을 갱신해야하며 그 혼자서는 도쿄에 방 하나 얻기도 힘들다. 부자임에도 일본 사람이 아니라면 모두가 다 이방인이다. 이렇게 이방인으로 평생을 산다면 그는 완성된 사람이 될 수 있나? 완성된 사람이 못된다면 노아와 같은 선택을 할 수도 있겠다.
이 책은 저자가 2007년 남편을 따라 도쿄로 들어오면서 많은 조선계 일본일들을 인터뷰하며 그들의 인생사를 참고해서 거의 30년에 걸쳐서 쓴 책이다. 재일동포의 삶... 남들이 무시하는 파친코 사업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사연, 같은 일본인이지만 차별 당하는 일본사람들, 여기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국적에 상관없이 버려지고 상처받은 사람들이다. 이들 모두는 같은 존재로 나온다. 어디에 발붙일 데 없는 신세, 서로가 서로를 의지해야만 하는 집 없는 사람들처럼 말이다.
경희야말로 완성된 이방인이 아닐까 생각된다. 평양을 떠나와서 요셉을 만나 목회자의 사모로 봉사하는 삶을 선택한 여인, 하지만 자신의 태는 수태하지않는다. 경희는 그토록 원하는 아이를 얻지 못하고 선자의 아이들을 자신의 아이 삼아 키우고 사랑을 준다. 요셉은 병을 얻어 가장의 구실을 못하고 마음을 줬던 남자는 떠나버린다. 경희는 과연 누구였을까? 그녀는 여자로 완성됐을까? 어머니로, 아니면 아내로 완성된 존재였을까? 경희야말로 이방인으로 완성된 존재라는 생각이 든다.
노아는 또 어떠한가? 그는 동화되길 원했다. 아버지, 어머니와 달리 노아는 일본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수많은 차별을 겪었지만 시간이 지나면 달라질 거라 기대했다. 하지만 문학을 좋아하는 여린 감성의 소유자가 일본에서 이방인으로 살기에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마지막 기대마저 무너지고 일본인으로 살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그 맘 저편으로는 무언가 다른 결심도 한다. 결코 일어나서는 안될 결심...... .
소설로 접한 재일동포들의 전쟁 이후의 삶은 처참했다. 현실은 아마 더했을 것같다. 조선계라는 이유로 졸업앨범을 훼손당한 중학생 남자이야기의 사연을 저자가 잊지 못하고 소설의 모티브 삼은 것은 아마 그런 현실의 일부 였을 것이다.
일본에서 일본인이 아니란 이유로 차별, 일본인임에도 가난과 불명스럽다는 이유로 당하는 차별, 이 모든 차별은 이름만 바꿨을 뿐 지금 여기서도 여전히 존재한다. 인간세계에서 아마 차별은 없어지지않을 것같다. 그 차별과 동등하게 사는 법을 배우려면 완성된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잠시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