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에게 갔었어
신경숙 지음 / 창비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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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소설 중 아버지의 마지막 말이 맴돈다. "살아냈어야... 용케도 너희들 덕분에 살아냈어야...."

화자는 딸을 잃은 슬픔에 한동안 부모님 집을 찾지 않는다. 어느날 아버지가 자꾸 우시고, 어머니도 비운 J시의 집을 아버지를 돌봐드리려 찾게 된다. 거기에서 다시 아버지와 만나는 나... 아버지는 이제 예전같지 않으시다. 자꾸 우시고, 또 무언가를 사시고, 밤에 뜬금없이 일어나 집 안을 돌아다니기도 한다. 나는 아버지의 창고에서 예전 편지글을 발견하곤 지금껏 알지 못했던 아버지의 인생에 대해 한 발 들어가게 된다. 서울에서 아버지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리고 아버지가 왜 그렇게 농사꾼같지 않았는지... 사실 아버지는 어린 시절부터 소를 먹여 키워 온 뼛 속까지 농사꾼이었지만 화자는 아버지에게서 다른 모습을 보았다. 여느 아버지와는 다른...

화자의 슬픔도 이해가 된다. 어린 딸을 잃고 또 그것이 순전히 자신의 잘못이었다면 얼마나 괴로울지... 하지만 살아내야한다. 모진 목숨 줄을 끊을 수 없다면 살아내야한다. 아버지가 어린 시절 온갖 고초를 겪으면서 지금까지 살아오셨던 것처럼 말이다. 소설 속 아버지의 자식들 중 아버지를 가장 많이 닮은 것은 내 생각엔 헌이 바로 작중 화자다. 아버지도 아마 학교를 다니고 글을 배웠더라면 글쓴이처럼 소설가가 되지 않았을까? 그토록 여린 감수성을 가지고 소를 키우고 자식들 대학교 보내고 거기다 가장으로의 책임감까지 짊어져야했던 아버지...

비뚤비뚤 맞춤법도 엉망인 아버지의 글씨가 점차 오롯한 글자로 변해가고 스스로 글을 깨우친 아버지가 남도 가르치고 또 앵무새에게까지 말하는 법을 가르친다. 아버지는 무얼 그리 배우고 싶으셨을까... 젊은 날을 다시 산다면 서울에서 만난 대학생처럼 그렇게 자유롭게 배우고 말하고 다방같은 곳에서 커피도 마시면서... 멍에를 벗는 삶을 꿈꾸신 건 아닐지... 아니다. 아버지는 자식들 때문에 사셨다고 하니 그것도 아닐 것이다. 아버지는 죽을 고비를 몇번 넘기고 여기 이 자리에 꿋꿋히 서 계시다. 누구 누구도 죽고, 누구 누구도 죽고...결국 아버지도 죽을 테지만 지금은 살아있다. 아니, 살아내셨다. 우리의 아버지는 그 시절을 모두 버티고 살아내셨다. 그것만으로도 박수 받을 일이다. 아버지에게 갔었어... 화자는 온전히 아버지에게 다다른 것이리라...


출판사 지원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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