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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백자 - 다산의 아들 유산의 개혁과 분노, 그리고 좌절
차벽 지음 / 희고희고 / 2013년 3월
평점 :
품절
참 독특한 소설을 만났다. 책의 형식, 사진을 소설 안에 넣은 것이나 손끝에 착착 감기는 종이의 질감 때문이 아니다. 물론 이 책을 처음 읽기 시작했을 때는 그런 책의 외형적인 것에 호기심이 끌린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소설 내용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부터
~엄엄한 길이라도 찾아야 했다.
~곧 태풍이 밀려올 것처럼 감파란 구름이 먼 바다로부터 북쪽으로 몰려왔다.
처음 내 눈에 띈 문장 중 급히 두 가지를 찾아 적어보았지만. 본문의 지문은 읽고 읽어 보아도 떄로는 어려운 뜻의 단어처럼(실제로 어렵게 이해되는 단어들이 많았지만) 보이지만 마치 종이 위에 굴러다닌다는 것처럼 내 눈에 들어와 박혀 버렸다. 그러니 글의 인물들이 내뱉는 말들이야 얼마나 더 하겠는가.
감파란 구름, 노대바람, 그물그물한 날씨, 참따랗게 이루어지는 감격....
물론 내가 소설을 즐겨 찾아가며 읽는 사람이 아니라 정확한 감정인지, 표현인지 내 느낌을 진단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역사소설 등을 읽은 기억을 떠올려 보면 어떤 책은 마치 한자어를 사명처럼 채워넣어 내게는 저자가 자신의 한자에 대한 지식을 자랑하려는가~라는 불편함을 주는 책, 혹은 너무 상투적인 표현으로 역사소설의 감흥을 제대로 살리지 못하는 책들이 많았다.
이 책을 읽으며 새삼 느낀 것은 글자의 아름다움이다. 정제되고 정제된... 이 글을 쓰며 저자는 얼마나 수없이 많이 자신의 글을 다듬었을지 느껴지는 것 같아서 나는 정말 정성스레 읽을 수밖에 없었다.
전문 소설가가 아님에도 내가 그간 읽어본 그 어떤 유명 작가의 책보다 글자 한자 한자에 공들인 저자의 열정이 마지막 페이지까지 한숨도 돌리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다.
책을 읽고 그 책의 내용에 대한 평이 아닌 이런 글자, 언어에 대해 감동받아 평을 시작한 것도 처음인 것 같다. 그래서 책을 천천히 음미하듯 느리게 읽게 된 부분도 있다. 그리고 또 그런 부분 때문에 책 읽는 진도가 내용과는 상관없이 더뎌져서 바쁜 시간 쪼개에 책을 읽는 내게는 부담이 되기도 했다는 것이 솔직한 마음이다.
다산 정약용의 삶이야 워낙 많이 알려진 바이고, 그의 가족에 대해서도 관심있는 사람들이라면 익히 알려진 바일 것이다. 그래도 그의 아들에 대한 소설이기에 무척 흥미로웠다.
단순히 조선자기에 대한 이야기일 것 같지만 정약용의 꿈을 이어 그 아들이 조선자기를 통해 개혁의 꿈꾼, 좌절 당한 내용은 그저 소설이 아닌 역사의 한 페이지처럼 가슴이 아파왔다.
특히 200년이 넘는 세월동안 일본에 끌려가 그곳에서 터를 일구고 살아간 조선의 백성, 도공들의 삶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외국에 나가 몇 년만 지나면 한국어 발음이 바뀌고, 2대로 넘어가면 모국어를 잊는 것이 당연시 여겨지는 우리나라.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을까 라는 생각마저 들게 했다.
물론 소설이지만 우리가 박물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조선의 자기에 서려있는 한의 역사를 생각해보니 여러 감정이 먹먹하게 만든다. 수없는 개혁의 씨앗이 이렇듯 좌절되었기에 도공들의 절규에도 불구하고 다시 일제침략을 받을 수밖에 없었겠지만 뼈속까지 선비와 사농공상의 넘을 수 없는 벽이 소설에서나마 무너져 새시대를 만들었다면 ... 이라는 한탄까지 만들어낸다.
시공간을 잇고, 인물들간의 생생한 대화들마저 너무 매력적인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