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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의 마음 ㅣ 책고래마을 48
유하정 지음, 안효림 그림 / 책고래 / 2024년 3월
평점 :
보통 벽이라 하면 집이나 방 따위의 둘레를 막은 수직 건조물을 말하거나 관계나 교류의 단절을 비유적으로 표현할 때 사용하는 단어다. 결국 ‘차단’, ‘단절’의 의미가 강하다.
이 그림책의 제목을 보면서 ‘벽’을 수동적인 이미지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벽’의 입장에서 바라보면 또 다른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이 그림책을 더 관심을 가지고 읽게 되었다. 요즘 사람들을 만나면서
‘상대가 아닌 자신의 관점 만을 너무 생각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할 때가 많아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도 아마 그럴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관계에서 가장 중립적인 벽의 입장을 생각하면 관계 맺기에 있어 더 편해지지 않을까’ 기대하면서 책장을 넘겼다.
앞 면지를 만나며 어두운 면 회색이 답답함? 막막함? 그 가운데 빛나는 몇 개의 별들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지 또 한참을 생각해 본다. 단지 벽인지, 아니면 다른 의미가 있는 것인지.
이 그림책의 공간적 배경은 고속도로다. 고속도로 가장자리의 소음 차단 벽이 고속도로에서 일어나는 로드 킬을 보면서 죽어가는 생물들을 끝까지 함께 해 준다. 벽이 바라보던 동물들과 차들의 사이에서 벌어진 일, 그리고 동물들이 어떻게 죽어가는지 과정을 담고 있다. 그냥 그 자리에서 객관적으로 바라보던 모습을.
고속도로이기에 차들의 속도는 무척 빠르다.
산을 잘라 만든 도로에 동물들은 또 다른 장소로 이동하기 위해 모험을 해야 한다.
빠른 차들을 피해 다른 장소로 옮기려 하지만 차의 속도를 못 이기고 넘어지고 만다.
다행히 차를 벗어나도 너무 높은 차단 벽으로 인해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예전의 삶의 터전과 달라진 환경 속에서 결국 동물들이 피해를 보게 된다.
차에 부딪힌 동물들이 도로 가장자리 즉 벽 밑에 쓰러지게 되고 벽은 자신에게 기대어 온몸을 떠는 동물들을 마주하게 되고 단단했던 벽의 마음도 무너지고 만다.
시꺼먼 연기를 내뿜는 자동차들 사이에서 여린 털을 파고드는 바람에도 떨지 않도록 벽은 최선을 다해 막아주려 한다.
동물들이 편안한 마음으로 하늘나라로 갈 수 있도록.
누군가 옆에 있어 주는 것 만으로도 힘듦을 이겨낼 수 있다는 말을 많이 한다. 그런데 내가 정말 누구의 벽이 되어주었나 생각해 보면 쉽게 대답하지 못하겠다. 작지만 함께 하는 그 마음이 벽의 마음이 아닐까? 어렵지 않을 수 있는데 쉽게 마음을 내놓지 못하는 것은 다름을, 차이를 인정하려는 마음이 부족한 것일까? 그냥 벽처럼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받아들이고, 자신의 관점이 아닌 중립적인 관점에서 이해를 해주려는 자세가 부족함일까? 이 그림책은 환경 관련 그림책으로 바라볼 수도 있겠지만 지금 우리 사회의 당면한 문제들을 직관적으로 바라보게 하기도 한다. 무겁지만 모두가 함께 고민해보아야 할 문제를 중립적인 입장에서 다루고 있다.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