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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물다 ㅣ 에프 그래픽 컬렉션
루이스 트론헤임 지음, 위베르 슈비야르 그림, 이지수 옮김 / F(에프) / 2021년 7월
평점 :
『머물다』는 만화책이다.
프랑스에서 만화 출판사 ‘라소시아시옹’를 공동 설립하여 다양한 만화가들과 함께 일하고 있는 루이스 트론헤임의 작품이다.
책장을 넘기면서 제목 ‘머물다’의 의미를 생각한다.
휴가를 떠나는 남녀가 새로운 곳으로 이주를 한다는 의미일까?
아님 휴가라 오랫동안 다른 곳에 머문다는 의미일까?
롤랑과 약혼자 파비엔느는 막 휴가지에 도착했다. 완벽주의자 롤랑은 약혼자 를 위해 완벽한 휴가를 준비했다. 치밀한 성격이기에 사전에 준비하고, 예약하고 심지어 비용을 지불하기까지 했다. 둘은 행복한 시간이 될 것이라 믿었을 것이다.
그러나 짐을 풀기도 전에 롤랑이 끔직한 사고를 당한다. 바람이 불고 건물의 간판이 떨어지면서 갑자기 롤랑의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 롤랑의 목이 잘린 것이다. 그 장면을 보면서 믿기지 않아 페이지를 넘기며 되돌아가기를 2번이나 했다. 파비엔느의 얼굴 표정 때문이다. 너무나 무덤덤해 보인다. 조금전까지 웃으며 행복했던 얼굴이 슬픔이 가득하지만 눈물이 보이지 않는다. 옆에서 손을 잡고 이야기 하던 약혼자의 달라진 끔찍한 모습을 본 표정으로는 담담해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야기를 읽어나가며 파비엔느의 생각을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조금전 비극적인 상황을 마주한 사람이 아닌 것처럼 약혼자의 휴가 계획대로 계속 머물기로 결심한다.
![](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1/0711/pimg_7726151173016684.jpg)
약혼자 롤랑의 수첩을 펼쳐 예약된 숙소로 향한다. 차 안에 있던 트렁크 두 개를 꺼냈다가 약혼자의 트렁크는 다시 차에 올려 놓는다. 파비엔느는 알고 있는 것이다. 옆에 더 이상 약혼자가 없다는 것을. ‘그 마음이 어떠했을까?’ 짐작해 본다. 계획대로 리프트도 타고 예약된 식당에서 저녁을 먹는다. 그리고 지역민 한 사람을 만난다. 어릴 적 사고로 고통을 안고 생활해야 하는 사람이다. 그렇지만 삶을 비난하거나 불평하지 않는다. 자신의 삶을 행복하게 꾸려나가는 사람이다. 수시로 약혼자의 수첩이 등장한다. 그 스케쥴대로 따라 움직이는 파비엔느의 마음을 나도 따라가본다. 곳곳을 여행하지만 표정에 변화가 없다. 즐거움이 없는 것이다. “마음이 이끄는 대로 해요.” 이 말을 통해 파비엔느의 마음을 짐작하라 수 있다. 약혼자가 불의의 사고를 당했지만 함께 하기로 한 시간을, 약혼자가 계획한 시간을 망치고 싶지는 않았을 것이다. 약혼자의 동생이 시신을 수습하러 오면서 함께 할 것을 부탁하지만 거절한다. 약혼자가 마지막날 특별한 계획은 갓난아이 조각이 올려진 케이크를 함께 즐기는 거였다. 바다가 보이는 멋진 장소에서 미래의 행복한 가정을 함께 할 것을 약속하는 시간을 계획한 것이었다. 이제 파비엔느는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다. 다만 약혼자의 마음을 다 알게 되었을 뿐이다.
여행지를 떠나면서 트렁크에 실려있던 약혼자의 가방과 수첩을 길가에 내려놓는다. 삶과 죽음의 경계를 구분짓는 것이다. 더 이상 함께 할 수 없는 사람과의 연결 고리를 끊는 것이다. 불가능한 일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다. 만화책의 제목 ‘머물다’의 의미는 바로 그녀가 모든 것을 정리하는 데 필요했던 것을 의미한다.
몇 페이지를 넘기기도 전에 매우 당혹스러운 장면을 맞닥뜨리게 파비엔느의 표정을 따라가다 보면 삶과 죽음을 대처하는 서로 다른 방식들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그리고 각각의 다른 대처 방법을 보면서 나를 연결짓는다. 조금 불편하다고 생각했던 만화책이지만 어려움, 불편함, 고통스러움 등 좋지 않다고 생각하는 감정들이 우리를 성장시킬 수 있음을 알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