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즈버그의 차별 정의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지음, 이나경 옮김, 코리 브렛슈나이더 해설 / 블랙피쉬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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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차별 금지법'이 또 다시 정치적 쟁점이 되고 있다. 합리적 이유 없이 인종, 성별, 장애, 병력, 나이, 성적지향성,  등을 이유로 고용, 교육기관의 교육 및 직업훈련 등에서 차별을 받지 않도록 하는 내용의 법률인 '차별 금지법'은 이미 여러 차례 입법이 무산된 바 있다. 


사실 나는 '차별 금지법'에 대해 처음 접했을 때 왜 이걸 굳이 법으로 만들어야 하나 생각했다. 너무나 상식적인 얘기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는 이런 최소한의 상식도 통하지 않을 때가 많다. 아직도 많은 사업장에서 여성들은 임신과 출산으로 고용과 처우에서 차별 당한다. 나 역시도 임신을 한 이후 주변의 분위기를 알기에 재취업에 대해 망설였고, 경력단절의 길로 자연스럽게 들어섰다.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여성이란 성별도 그럴지인데 수적으로 더욱 소수인 약자들은 어떻겠는가?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그녀는 27년간 미국 연방대법관으로 지내며 양성평등과 소수자에 대한 차별에 맞섰던 진보의 아이콘이다. 이 책 <긴즈버그의 차별 정의>는 그녀가 여성과 소수자 권리를 위해 개진한 법정 의견서 13편을 담고 있다. 




"법에 자유를 더 깊이 새겨 넣기 위해 긴즈버그만큼 많은 일을 한 사람은 드물다."

<긴즈버그의 차별 정의> p23



미국 헌법의 모든 대명사는 남성형으로 씌여져있다고 한다. 미국이 건국되고 법이 만들어지던 시기, 여성은 남성에게 종속된 2등 시민이었다. 투표권은 물론 재산권에도 제한을 받았고 교육을 받을 기회도 제공받지 못했다. 1920년 수정헌법을 통해 여성의 투표권이 생겼지만 주 법 곳곳에 성평등을 제한하는 요소들이 만연했다.


긴즈버그는 법적으로 성평등이 보장받도록, 여성이 더 넓은 범위에서 자유를 누리고 권리를 보호 받도록 투쟁했다. 그녀가 생전 추구한 자유는 3가지 주제로 나뉜다. 여성에 대한 동등한 보호, 생식의 자유, 시민권. 이 책에는 3부로 나눠 성평등과 여성의 권리, 임신과 출산의 자유, 선거권과 시민권을 침해한 사건들에 대해 그녀가 남긴 의견들을 정리했다. 그녀는 항상 헌법과 평등 보호 조항 근거하여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고, 연방대법관으로 영향력 있는 위치에 있던 그녀의 목소리는 설령 그 의견이 소수의견으로 남았을지라도 미국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재산 집행인으로 여성보다 남성을 더 선호하는 아이다호주의 법을 위헌으로 이끌었고, 주류 판매에 있어 남성보다 여성의 허용 연령이 더 낮았던 오클라호마주 법을 철폐 시켰다. 남자보다 부당하게 적었던 여성의 임금에 대한 임금 평등 재판에서 그녀의 의견은 소수의견이 되었지만 국회에서 평등 임금 법안을 통과시키게 만들었다. 



우리 나라에서도 최근 큰 이슈가 되었던 낙태금지법에 대해서도 그녀는 줄곧 생식의 자유를 옹호하며 위헌 의견을 피력했다. 미국 사회도 기독교를 바탕으로 한 사회인지라 생명존중을 우선으로 하는 분위기에서 그녀의 의견은 급진적인 소수의견에 머물렀다. 하지만 그녀는 임신 중지를 선택했다는 이유로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우선 보호함으로써 생식에 있어 여성의 자결권을 보호할 수 있도록 점진적으로 인식을 확장시켜 나갔다. 



그녀는 여성 뿐만 아니라 인종, 장애 여부 등과 관계 없이 '모든 시민이 법 아래 평등한 지위를 누릴 수' 있도록 의견을 개진했다. 그들도 여성처럼 종속적인 관계로 여겨져 차별과 제한 속에 갇혀있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사회적 약자를 우대하는 정책이 인종 차별을 더욱 부추기고, 그들을 상처주는 방식으로 이뤄지지 않도록 변화를 촉구하고, 장애인의 공적 생활을 보장할 것을 요구했다.  


평등 조항에 맞지 않는 낡은 법의 핵심을 꿰뚫으며 날카롭게 반문하고, 지극히 상식적인 얘기를 던지며 사회의 부조리를 꼬집고 있는 그녀. 그리고 사회가 가진 생각의 틀을 바꾸게 만드는 위대한 의견들. 

그녀의 의견서를 읽으며 가슴이 뜨거워짐을 느꼈다. 



하지만 아무래도 기존 법을 해석하는 의견서다보니 자칫 딱딱해지기 쉬운데  코리 브렛슈나이더 교수의 해설은 감동을 배가 시켜주는 데 정말 적절했다. 이 의견서가 나온 배경 설명과 핵심이 무엇인지 간결하게 정리해주어 몰입을 도왔다. 



때로는 법이 사회 인식 변화를 급진적으로 견인한다. 일례로 낙태금지법이 생겨서 이제 더 이상 낙태를 죄스럽게 여길 분위기는 사라질 수 있다. 차별 금지법도 더딘 사회 인식 변화를 기다리느니 법으로 강제해서 우리 사회를 보다 평등하고 건강하게 만드려는 염원에서 추진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실제 우리의 법감정은 사회의 변화된 인식보다 더 과거에 머물고 있는 듯하다. 예전에 비해 평등을 저해하는 낡은 법들은 폐기되고, 약자를 보호하고 권리를 보장하는 새로운 법들이 입법되고 있지만, 여전히 여성은 남성에게 종속되어 있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한 판결들이 나와 우리를 뜨악하게 만드니까.


우리에게도 만인의 평등과 행복추구권을 보장하는 충분히 멋진 헌법이 있음에도, 법은 여전히 기득권의 편에 있는 듯하다. 그래서 우리에게도 진보적인 변화를 부를 긴즈버그의 목소리가 필요하다.



※ 네이버카페 '리뷰어스 클럽'에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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