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순간에
수잰 레드펀 지음, 김마림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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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궁금해진다.

우리의 인간성이 양심보다는 상황에 의해 결정되는지,

그리고 만일 우리 중 누구라도 궁지에 몰리면 변하게 될지 말이다.

나는 그날 목격했다.

모두 자신들이 믿었던 것과는 전혀 다르게 행동하는 것을."

수잰 레드펀 <한순간에> p355 / 열린책들


같은 상황 속에서 누군가는 타인을 먼저 생각하는 의인이 되고, 누군가는 자기 또는 자기 가족 밖에 모르는 이기주의자가 된다.

특히 극한의 상황에 몰렸을 때 평소에는 전혀 보이지 않던 한 사람의 본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수잰 레드펀의 소설 <한순간에>는 갑자기 닥쳐온 재난과 재난을 겪으며 보여지는 사람들의 민낯, 그리고 재난 이후 사람들에게 남은 죄책감과 같은 고통에 대해 다루고 있다.

주제는 묵직하지만 이야기는 결코 무겁지만은 않다.

10대 하이틴 드라마를 보는 듯 발랄한 감성과 순수함이 자아내는 감동을 갖추고 있어 단숨에 읽힌다.


소설의 화자는 핀이라는 10대 소녀다.

핀에게는 위로는 곧 결혼을 앞둔 오브리 언니와 남자친구 벤스에 푹 빠졌지만 어딘가 다크한 매력의 클로이 언니, 그리고 아래로는 지적 장애를 가진 남동생 오즈가 있다. 그리고 마음이 통하는 소울메이트 같은 친구 모와 언제나 함께다.


핀의 가족들은 겨울이면 스키를 즐기러 할아버지의 별장으로 여행을 떠나는데, 이날은 이웃사촌인 캐런과 밥 그리고 그들의 자녀이자 핀의 동급생 내털리가 합류한다. 엄마의 과잉보호 탓에 스키를 타보지 못한 핀의 친구 모도 함께다.


즐거운 여행이 될 것이라 기대했던 날, 끔찍한 교통사고로 핀 가족의 캠핑카가 절벽으로 추락하고 만다.

핀은 그 자리에서 즉사하고, 핀의 아빠는 의식을 잃을 정도로 심한 부상을 당했다.


죽은 핀은 이제 남아 있는 사람들을 관찰한다. 살아있었다면 보지 않았을 사람들의 내면들을.

항상 냉정하고 쌀쌀맞기만 하던 엄마의 용기와 깊은 사랑을.

그리고 엄마보다 더 자신을 잘 이해해준다 여겼던 캐런 이모와 밥 삼촌의 이기심을.

그렇다고 엄마 역시 언제나 항상 의로운 것만은 아니다. 

자신의 목숨이 위태로워질때는 자신도 모르게 거의 본능적으로 남을 버리는 선택을 한다.

남겨진 사람들은 저마다 위기의 순간 택한 자신의 선택들로 구출되고 난 후 후회와 죄책감에 시달린다.


작가는 사고가 닥치고 구출되기 전까지의 과정보다 그 이후 회복의 과정을 보다 상세하게 다룬다.

송두리째 바뀌어 버린 삶, 깊고 길었던 우정은 사라지고 부부 간의 신뢰도 서로에 대한 원망으로 변해버린 시간.

소중한 이를 잃어버린 상실감을 누구는 아예 외면하고 누구는 자신의 몸에 난 구멍이라 생각하며 온전히 감내해낸다.

핀은 차라리 자신을 좀 더 가볍게 생각해주기를, 남아있는 사람들에게 바란다.


반면 재난의 순간에 자신의 이기심에 따라 행동했던 사람들은 양심의 가책도 덜 느끼며 살아가는 듯하다.

하지만 그들의 마음에도 시한폭탄을 작동시키는 버튼 같은 게 있어 누군가 건들면 펑 하고 폭발해버릴만큼 그들의 일상은 아슬아슬하다.


핀의 언니 오브리만이 결혼 준비로 이 여행에 동참하지 않아서 사고에 연루되지 않는데 그녀가 주는 무심한 듯한 일상의 에너지가 가족들에게는 절실히 필요하다. 어쩌면 가족들에게 연민과 동정보다도 삶을 계속 살아가게 만드는 일상성이 필요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소설은 간간히 외면하고 싶은 불편한 질문을 던진다.

생명이 좌우되는 극한의 상황에서 도덕적인 선택을 하지 못했다고 해서 비난 받아야 하는가?


"개인적인 희생을 치러야만 진실한 선일까?

풍족할 때는 누구나 관대할 수 있다. 가진 것이 많으면 누구든 이타적일 수 있다. (중략)

하지만 과연 내가 캐런의 비겁함을 탓할 수 있을까?

너무 무서워서 자기 자신 밖에 생각할 수 없었던 것을?

우리는 그런 용기와 힘을 갖고 태어났을까?

만약 그렇다 해도 용기를 갖고 태어나지 않은 사람을 비난할 수 있는 걸까?"

수잰 레드펀 <한순간에> p311 / 열린책들


자기만의 방식으로 공포와 충격을 감당하는 사람들. 그래서 오히려 현실을 자기 편의대로 왜곡해버리기도 하는 사람들.

하지만 상황을 벗어나서 자신의 부도덕함을, 순간의 이기심을 스스로 목도했을 때, 그때는 외면하고 회피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순간의 선택이 잘못이었음을 인정하지 않아서 더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고 기만해왔던 일들이 그동안 얼마나 많았던가.


결국 캐런과 밥의 이기심이 폭로되자 언론과 사람들은 이들을 비난한다.

캐런과 밥의 삶은 순식간에 피폐해지는데 이런 결말이 통쾌하다기보다 씁쓸했다.

코로나 19 팬데믹이 모든 사람들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봄에 확진자를 향했던 비난과 마녀사냥에 가까운 신상털기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비난하는 사람들에게는 무슨 자격이 있을까? 오직 사건의 당사자들만이 이들을 비난하고 용서를 할 자격이 있는 게 아닐까.

핀 역시도 캐런과 밥에 대해, 그들이 보여줬던 일상에서의 온정을 떠올리며 연민과 증오 사이를 오가며 갈등한다. 

그만큼 누군가의 선택에 대해 타인은 쉽게 비난하기 어렵다는 걸 보여주는게 아닐까?


나에게도 절대절명의 순간이 온다면, 얼마나 현명할 수 있을지...

재미있게 페이지를 넘기다가도 책장을 덮는 순간 고통스러운 고민에 빠지게 만드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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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시민들
백민석 지음 / 열린책들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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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여행지든 여행자에게 그곳은, 여행자가 다닌 만큼 새롭게 다시 생성된다.

나는 열차를 타고 시베리아를 횡단하기도 했지만, 도시에 내려서는 걷고 또 걷는 식으로 도시들 또한 횡단했다.

그렇게 해서 나는 다른 누군가가 보여 주고 들려준 러시아가 아니라, 

나만의 또 다른 새로운 러시아를 만들어 갖고 싶었다."

백민석 <러시아의 시민들> p296 / 열린책들


묘하게도 2020년 올해는 뭔가 러시아란 나라가 괜히 친숙해진 해였다.

고골의 <뻬쩨르부르크 이야기>,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리나>, 그리고 소련 체제를 풍자하는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을 읽었고 세계대전을 다룬 역사서를 보며 러시아의 혁명사를 접했다. 

그리고 이 책이 마치 그 정점을 찍는 것 같다.


러시아의 풍경보다 러시아에 사는 사람들의 사진이 훨씬 많은 독특한 여행서 <러시아의 시민들>

그렇다고 작가가 러시아 역사에 엄청나게 해박해서 러시아 시민들의 혁명사를 장황하게 늘어놓는 그런 책은 아니다.

러시아에 편견과 시베리아 횡단 열차에 모종의 낭만을 품고 있던 작가가 직접 자신의 발로 그 땅을 걸으며 느낀 감상이 이 책의 내용이라 할 수 있다.


나도 러시아에 대한 편견이 있다. 심지어 러시아의 수도 모스크바를 한번 다녀와봤는데도 편견은 쉬이 사라지지 않았다.

아마도 2박 3일이란 시간이 편견을 내려놓기에 너무 짧았기 때문이리라. 

모스크바의 2월은 너무 추웠고, 그야말로 황량한, 머릿속 인상 그대로의 살풍경한 도시였다. 

사람들의 얼굴은 굳어 있었고, 나 역시도 낯선 도시가 주는 두려움과 공포로 딱딱하게 굳어 있었기에 그들은 좀체 나에게 미소를 보여주지 않았다.

이 밖에 인상적인 기억은 레스토랑과 카페가 너무나 따뜻하고 포근해 들어가기만 하면 졸음이 쏟아졌고, 바실리 성당과 크렘린 궁은 너무나 비현실적이었다는 것. 러시아 정교회 성당 내부가 살풍경한 겨울의 나라답지 않게 너무 컬러풀해서 놀랐다는 것.


백민석 작가가 느낀 찰나의 인상은 나와 비슷했지만 체류기간이 긴 만큼 훨씬 깊게 러시아와 그 나라 사람들의 삶을 깊숙이 이해하고 온 것 같다.


세계 최초로 사회주의 혁명을 이룬 나라, 20세기 내내 냉전의 한 축이었고 가장 정치적인 나라였던 러시아.

하지만 저자는 러시아 거리에서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는 시구로 친숙한 시인 푸시킨의 동상을 가장 많이 접한다.

혁명의 딱딱하고 독재의 경직된 분위기를 상상했던 것과 달리 러시아에는 예술과 서정성이 풍부한, 시가 더 없이 어울리는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저항을 탄압할 것만 같은 소비에트 체제 속에서도 헤비메탈을 연주하는 버스커들이 존재했고, 러시아의 교회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신실한 마음을 받아내고 있으며, 미술관에는 우리가 잘 몰랐던, 인물의 감정 표현에 주력한 러시아 회화들이 어마어마하게 걸려있다.


저자는 '러시아인들은 제 일터와 생활 공간을, 마트료시카 인형처럼 알록달록 예쁘게 꾸미며 일상의 소소한 즐거움을 찾는' 것 같다며, 그들의 남다른 디자인 감각에 감탄하기도 한다. 러시아라는 나라를 생각하면 자동적으로 떠오르는 무채색의 풍경과는 너무나 대조되는 인상이다.


반면 레닌은 여전히 러시아의 영웅으로, 함부로 할 수 없는 어떤 신성한 영역으로 러시아 시민들에게 취급되고 있으며, 사진을 찍기 위해 다가간 저자에게 밝은 미소를 지어보이던 사람들도 두 세번 촬영이 거듭되면 표정이 굳으며 경계하기 시작한다.

이런 모습은 뭔가 구체제가 남긴 씁쓸한 흔적 같다.


시베리아 횡단 열차에 대한 로망과 현실에 대한 저자의 소회도 재밌었다.

시베리아 횡단 열차가 여행자들이 아닌 광활한 러시아 영토에서 생활하기 위해 만들어진 이동수단이라는 것.

은하철도 999같은 검정 증기열차를 상상했다면, 그냥 빨간색 ktx같은 열차라는 것. 

침대칸이 있는 열차지만 엄청나게 불편하다는 것과 차창 밖으로 설원의 풍경이 펼쳐질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창문이 너무 지저분해 제대로 보이지 않아 침대에 누워있는 것 외에 할 일이 없다는 것 등등. 

하지만 우리는 시베리아에 옛 DNA를 두고 온 사람들처럼 그 풍경을 보고 싶어하며 횡단 열차에 탑승하는 로망을 품는다.

나 역시도 언젠가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는 걸 버킷리스트에 넣어뒀으니까.

저자의 리얼한 경험담에도 이러한 기대는 쉬이 사그라들지 않았다.


또 한가지 부러웠던 경험은 볼쇼이 극장에서 관람한 베르디의 '라트라비아타' 공연 관람이다. 

'1950년대 테발디를 기대했지만 더 나은 무언가를 보고 온 공연'이었다는 저자의 감상에 기대감이 잔뜩 부풀어 오른다.

언젠가 다시 러시아를 방문할 일이 생긴다면 반드시 보고 오리라 버킷리스트에 추가할 목록이 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사진을 찍어도 되느냐는 물음에 늘 미소로 답했던 이들은 러시아의 시민들이었다.

내가 가본 어느 나라 사람들도 이들보다 더 친절하지 않았다."

백민석 <러시아의 시민들> p184 / 열린책들


돌이켜보면 여행지에서 풍경이나 건축물보다 큰 인상을 남긴 건 그 곳의 사람들이었다.

저자도 나와 같은 생각으로 이 여행책을 시민들 중심으로 서술해나간 건 아닐까. 

이따금 저자를 불러 세우고 사진 찍을 만한 곳을 가르쳐 주는 이들, 직접 동행하며 길을 안내해주는 이들, 말이 통하지 않아도 낯선 이에게 계속 말을 걸어주는 이들. 이런 장면을 읽을 때마다 혼자 떠난 여행길에서 만났던 친절했던 이들의 얼굴이 하나둘씩 떠올랐다.


다시 러시아를 여행할 때는 더 이상 굳어 있지 않아야겠다.

내 속의 편견을 내려놓고, 러시아 시민들의 친절한 미소를 마주할 준비를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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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면술사 : 마크 트웨인 단편집 인류 천재들의 지혜 시리즈 3
마크 트웨인 지음, 신혜연 옮김 / 이소노미아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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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기란 두려움에 대한 저항이고, 두려움의 정복이다. 두려움이 없는 게 아니다."

"진실이 신발을 신고있는 동안 거짓은 세상을 반바퀴 돌 수 있다."

"인생에서 성공하는 비결 중 하나는 좋아하는 음식을 먹고 힘내 싸우는 것이다."


무릎을 탁 치는 이 명언을 한 사람, 미국의 대표작가 마크 트웨인이다.

<톰 소여의 모험>, <허클베리 핀의 모험>, <왕자와 거지> 등 동심을 키울 때 한번씩 들어 본 스토리, 하지만 원작으로 만나본 적 없는 작가 '마크 트웨인'을 이소노미아 인류천재들의 지혜시리즈 세번째 책으로 만나보았다.


인생의 묘미를 한 문장으로 깊이 있게 담아낸 글 솜씨가 그의 짧은 산문과 단편들에 스며들어 있었다.


이 책에는 여덟 편의 산문과 두 편의 단편 소설이 담겨 있다.

여덟 편의 산문 중 대다수가 제목이 없는, 마크 트웨인의 자서전에 번호로만 올려진 글이었는데 편집부에서 글의 느낌을 살리기 위해 붙인 제목을 붙였다고 한다.


특히 인상 깊었던 산문은 마크 트웨인의 유년기를 담은 표제적 <최면술사>와 딸을 그리워하며 쓴 <붙일 수 없는 제목>이다.


<최면술사>에서는 동네에 찾아온 최면술사의 피실험자가 되면서 더 극적인 반응을 얻기 위해 최면에 걸린 척 연기하는 어린 시절의 마크 트웨인이 나온다. 사람들의 신기해하는 반응에 우쭐하고 영웅심리가 발동하는 유년시절의 감정과 경험이 생생하게 묻어 있다. 

그는 훗날 자신이 거짓으로 연기했음을 어머니에게 고백하지만 이 사실은 받아 들여지지 않고, 평생 자신 혼자만 간직할 비밀이 되어버린다. 


<붙일 수 없는 제목>은 일기장에 자신의 글을 제대로 평론한 딸 수지에 대한 이야기인데, 스물네 살 때 척수막염으로 사망한 딸의 글을 훗날 회고하는 글이라 마음이 찡해진다. '아빠만큼 다양한 감정을 가진 남자를 본 적이 없다'며 '아빠는 어디에든 유머가 숨어 있지 않은 글은 좀처럼 쓰지 않으신다'는 딸의 평가처럼 사랑스러운, 하지만 먼저 하늘로 보냈기에 사무치게 그리운 딸을 추억하는 이 글에도 마크 트웨인 특유의 익살스러움이 묻어난다.


도저히 산문이라 믿을 수 없는 스토리도 있다. 

<3달러>라는 마치 봉이 김선달이 물을 파는 듯 길 잃은 개를 팔고, 그 개를 다시 주인에게 찾아주며 3달러를 벌어들인 이야기인데,  만약 이 글이 실화라면 그의 삶 자체가 한 편의 시트콤이 아니었을까 생각이 든다.


단편 중 하나인 <뜀뛰는 개구리>는 마크 트웨인의 데뷔작이다.

내기를 좋아하는 남자에 대한 탁월한 묘사와 그에게 벌어지는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슬픈 결말이 6페이지 정도의 짧은 글에 담겨 있는데, 순간적인 흡입력이 엄청났다. 만담꾼의 이야기를 곁에서 듣고 있는 기분이랄까.


<중세 모험담> 역시 기가 막히다. 막장스러운 사건을 잔뜩 벌여놓고 잔뜩 기대하고 읽는 독자에게 '결말은 나도 몰라~'하며 반전을 때린다.

무책임하게 보이면서도 그의 한결같은 짓궂음을 앞선 작품을 통해 접했기에 전혀 밉지가 않다.


이소노미아의 '인류 천재들의 지혜 시리즈'는 역시 그 작가의 매력을 발견하게 하여 새로운 독서로 이끄는 이정표 같은 책인 것 같다.

마크 트웨인, 너무나 널리 알려졌고, 그의 작품들은 고전에 반열에 올랐지만 나에게는 신선한 발견이었다.

시간이 된다면 마크 트웨인의 익살과 재기를 흠뻑 맛볼 수 있는 대표작들을 읽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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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와 사진으로 보는 제2차 세계대전 - 학살과 파괴, 새로운 질서 지도와 사진으로 보는 세계대전 2
A. J. P. 테일러 지음, 유영수 옮김 / 페이퍼로드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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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 수반한 모든 학살과 파괴에도 불구하고 제2차 세계대전은 훌륭한 전쟁이었다."

A.J.P.테일러 <지도와 사진으로 보는 제2차 세계대전> p430 / 페이퍼로드


전쟁은 이해불문 끔찍한 것이라 여겼다. 이 <지도와 사진으로 보는 세계대전> 시리즈를 읽고 난 후에 느낀 바도 전쟁은 무고한 생명들을 앗아가는, 벌어져선 안될 잔혹한 일이라는 생각에 변함이 없다. 

하지만 저자는 왜 제2차 세계대전을 훌륭한 전쟁이었다고 말하는가?


우선 제1차 세계대전과 비교하면 제2차 세계대전은 정말 '세계대전'이라는 말을 붙여도 손색이 없을 만큼 전 세계 곳곳에서 발발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 시기를 특정할 수 있는 것에 반해 제2차 세계대전은 독일, 일본이 각각 유럽과 극동, 태평양까지 범위를 넓혀가며 벌어져서 그 시작을 정하기도 애매하다. 

분명한 것은 전쟁을 벌인 추축국- 독일, 일본, 이탈리아-은 자신들이 점령한 나라에서 착취와 압제를 일삼았고, 명백한 악의 세력이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참전국의 이해관계가 분명해서 어떤 선악도 구별하기 어려웠던, 전쟁을 벌이는 와중에도 목적과 명분을 찾기가 곤란했던 1차 세계대전에 비해 2차 세계대전은 목적 면에서 정당했다고 저자는 평가한다. 

2차 세계대전은 나치와 일본, 두 파시즘 국가의 압제로부터 민족들을 해방하기 위한 목적으로 수행되었고, 그들로부터 완전한 항복을 얻어냄으로써 확실하게 성공했다.


"일본인들은 정치적으로 자신들의 성공을 거의 활용하지 못했다.

그들은 백인들에 대항해 황인종을 이끌기는커녕 자신들이 정복한 영토를 착취했고 곧 영국인과 네덜란드인이 한때 그랬던 것보다 더 큰 증오를 사게 되었다.

공영권은 허울뿐인 표현임이 밝혀졌다."

A.J.P.테일러 <지도와 사진으로 보는 제2차 세계대전> p233 / 페이퍼로드


한국에게도 2차 세계대전의 결과는 염원했던 해방의 순간을 가져왔다. 물론 이후 혼란의 역사는 지속되었지만, 일본 식민 지배 하보다 자주적인 나라가 될 수 있었다. 2차 세계대전의 성과는 극동의 작은 나라에까지 전해진 것이다.


이 책은 영국 역사가가 썼기에 당시 영국의 행동에 대해 비판적이고 반성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됭케르트에서 철수하며 프랑스에게 씻지 못할 배신의 기억을 안긴 것, 북아프리카에서의 고전, 지역 폭격의 성과를 확대 해석하며 민간인들에게 전쟁의 트라우마만 새기며 무의미하게 자원을 낭비한 점, 대영제국의 지위를 포기하지 않으려 독립 보장을 약속해 놓고는 실제 방관자로 머물렀던 점 등 전쟁 내내 무능하고 신뢰할 수 없는 태도를 보인 수뇌부를 신랄하게 비판한다.


만약 미국이 태평양 전쟁에만 몰두해 있었다면, 러시아가 동부전선에서 선전하지 못했더라면, 영국은 강 건너 불구경하듯 손을 놓아버렸을지도 모르겠다. 


반면 유럽을 단숨에 점령해버린 독일은 민첩했고 영민했다. 그들의 군사적 판단은 대체적으로 적중했고 프랑스-영국과 비교해 결코 우세하지 않았던 전력으로 1차 세계대전에서 고전했던 프랑스 지역을 단시간만에 포위했다. 


사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프랑스를 1차 세계대전과 마찬가지로 영국과 함께 협력해서 싸웠던 연합국으로 생각했지, 거의 독일의 식민지 수준으로 점령 당했었는지 몰랐다. 프랑스에게도 독일에 부역했던 친독파가 있어 전후 반역행위자들을 처단했던 역사가 있었다는 것을, 간혹 프랑스 소설에서 레지스탕스에 대한 내용을 읽었지만 사정을 알지는 못했던 것 같다.


그러고보면 제2차 세계대전에 대한 단편적인 지식은 극동과 태평양에 벌어진 전쟁에 치우쳐 있었던 것 같다. 아무래도 우리 민족이 겪었고, 아직도 그 피해에 대한 사과가 이뤄지지 않은 현재 진행형인 사안이다 보니 더욱 그랬다. 유럽에서 벌어진 전쟁에 대한 건 유대인 학살이라는 초유의 사건에 모두 가려져 다른 나라는 어떤 고통과 압제를 겪어야 했는지 잘 알지 못했다. 세계적으로 영향력 있는 자본세력이 많은 유대인이나 국가 경쟁력이 향상한 우리나라와 달리, 폴란드 인들이 러시아로부터 당했던 약탈과 독일의 집시 학살에 대해서는 여전히 침묵하고 있는 것을 보면 사과를 받는데도 힘의 논리가 작용하는 것 같아 씁쓸하다.



2차 세계대전은 승승장구하며 자만할 수 밖에 없는 두 나라- 독일과 일본이 대국을 건드리며 패망의 길로 스스로 들어간다. 


당시 독일이 러시아를 공격한 것은 오판은 아니었다. 절대적으로 군사력이 뒤처져 있었던 러시아를 빠르게 점령할 수 있을거라 생각했던 독일은 엄청난 수로 보충되는 러시아 군인들과 예상치 못한 혹독한 추위 등에 가로 막혀 작전을 성공하지 못한다. 

일본의 진주만 공격은 보기에는 성공적이었으나 잠자는 사자의 콧털을 건드린 격이었다. 

두 나라 모두 장기전이 될 거라 생각하지 못하고 뛰어들었다가 결국 자신들의 발목을 잡아 버렸다.

그나마 한때 막강했고, 실질적으로 세계를 재패했던 두 나라와 달리 이탈리아는 뭐라도 하나 얻어 먹으려고 독일의 꽁무니를 쫓다가 몰래 독자행동 하다 사고 치고, 허약하면서 질도 나쁜 그런 존재 같았다. 


2차 세계대전은 전혀 연합할 수 없을 것 같은 자본주의 진영과 공산주의 진영을 협력하게 만들었다.

전쟁 당시에는 하나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적과의 동침을 하게 된 셈일테다.

전쟁이 끝난 후 이들이 나눴던 화기애애한 분위기는 의심과 경계로 빠르게 식고 물리적 전쟁은 없지만 얼어붙은 냉전 체제가 시작된다.


2차 세계대전은 세월이 지나도, 세대가 바뀌고 전쟁을 겪지 못한 사람들이 대부분인 이 시점에도 여전히 강력한 흔적을 남기고 있다. 

저자의 말처럼 '제2차 세계대전의 결말은 더 깔끔하지 못했'기 때문일까?


책은 시종일관 건조하게 (때때로 시니컬한 농담을 섞은 것 같지만) 전쟁 경과와 전략적 판단 과정 등을 중심으로 서술되고 있다. 전쟁이 전하는 감정적인 부분은 실상을 고스란히 담은 사진이 대신한다.


전쟁이 가져온 비극이 담긴 이 사진들 때문에 우리는 더욱 2차 세계대전을 잊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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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더 저널리스트 1~3 세트 - 전3권 - 어니스트 헤밍웨이 + 조지 오웰 + 카를 마르크스 더 저널리스트
조지 오웰 외 지음, 김영진 엮음 / 한빛비즈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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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예리한 현실감각과 잘 단련된 문장, 가장 정치적인 작가들이었던 그들은 모두 기자출신이었다. 헤밍웨이, 조지오웰, 마르크스, 그들이 쓴 기사문들을 엮은 책이라 더욱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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