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와 사진으로 보는 제2차 세계대전 - 학살과 파괴, 새로운 질서 지도와 사진으로 보는 세계대전 2
A. J. P. 테일러 지음, 유영수 옮김 / 페이퍼로드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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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 수반한 모든 학살과 파괴에도 불구하고 제2차 세계대전은 훌륭한 전쟁이었다."

A.J.P.테일러 <지도와 사진으로 보는 제2차 세계대전> p430 / 페이퍼로드


전쟁은 이해불문 끔찍한 것이라 여겼다. 이 <지도와 사진으로 보는 세계대전> 시리즈를 읽고 난 후에 느낀 바도 전쟁은 무고한 생명들을 앗아가는, 벌어져선 안될 잔혹한 일이라는 생각에 변함이 없다. 

하지만 저자는 왜 제2차 세계대전을 훌륭한 전쟁이었다고 말하는가?


우선 제1차 세계대전과 비교하면 제2차 세계대전은 정말 '세계대전'이라는 말을 붙여도 손색이 없을 만큼 전 세계 곳곳에서 발발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 시기를 특정할 수 있는 것에 반해 제2차 세계대전은 독일, 일본이 각각 유럽과 극동, 태평양까지 범위를 넓혀가며 벌어져서 그 시작을 정하기도 애매하다. 

분명한 것은 전쟁을 벌인 추축국- 독일, 일본, 이탈리아-은 자신들이 점령한 나라에서 착취와 압제를 일삼았고, 명백한 악의 세력이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참전국의 이해관계가 분명해서 어떤 선악도 구별하기 어려웠던, 전쟁을 벌이는 와중에도 목적과 명분을 찾기가 곤란했던 1차 세계대전에 비해 2차 세계대전은 목적 면에서 정당했다고 저자는 평가한다. 

2차 세계대전은 나치와 일본, 두 파시즘 국가의 압제로부터 민족들을 해방하기 위한 목적으로 수행되었고, 그들로부터 완전한 항복을 얻어냄으로써 확실하게 성공했다.


"일본인들은 정치적으로 자신들의 성공을 거의 활용하지 못했다.

그들은 백인들에 대항해 황인종을 이끌기는커녕 자신들이 정복한 영토를 착취했고 곧 영국인과 네덜란드인이 한때 그랬던 것보다 더 큰 증오를 사게 되었다.

공영권은 허울뿐인 표현임이 밝혀졌다."

A.J.P.테일러 <지도와 사진으로 보는 제2차 세계대전> p233 / 페이퍼로드


한국에게도 2차 세계대전의 결과는 염원했던 해방의 순간을 가져왔다. 물론 이후 혼란의 역사는 지속되었지만, 일본 식민 지배 하보다 자주적인 나라가 될 수 있었다. 2차 세계대전의 성과는 극동의 작은 나라에까지 전해진 것이다.


이 책은 영국 역사가가 썼기에 당시 영국의 행동에 대해 비판적이고 반성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됭케르트에서 철수하며 프랑스에게 씻지 못할 배신의 기억을 안긴 것, 북아프리카에서의 고전, 지역 폭격의 성과를 확대 해석하며 민간인들에게 전쟁의 트라우마만 새기며 무의미하게 자원을 낭비한 점, 대영제국의 지위를 포기하지 않으려 독립 보장을 약속해 놓고는 실제 방관자로 머물렀던 점 등 전쟁 내내 무능하고 신뢰할 수 없는 태도를 보인 수뇌부를 신랄하게 비판한다.


만약 미국이 태평양 전쟁에만 몰두해 있었다면, 러시아가 동부전선에서 선전하지 못했더라면, 영국은 강 건너 불구경하듯 손을 놓아버렸을지도 모르겠다. 


반면 유럽을 단숨에 점령해버린 독일은 민첩했고 영민했다. 그들의 군사적 판단은 대체적으로 적중했고 프랑스-영국과 비교해 결코 우세하지 않았던 전력으로 1차 세계대전에서 고전했던 프랑스 지역을 단시간만에 포위했다. 


사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프랑스를 1차 세계대전과 마찬가지로 영국과 함께 협력해서 싸웠던 연합국으로 생각했지, 거의 독일의 식민지 수준으로 점령 당했었는지 몰랐다. 프랑스에게도 독일에 부역했던 친독파가 있어 전후 반역행위자들을 처단했던 역사가 있었다는 것을, 간혹 프랑스 소설에서 레지스탕스에 대한 내용을 읽었지만 사정을 알지는 못했던 것 같다.


그러고보면 제2차 세계대전에 대한 단편적인 지식은 극동과 태평양에 벌어진 전쟁에 치우쳐 있었던 것 같다. 아무래도 우리 민족이 겪었고, 아직도 그 피해에 대한 사과가 이뤄지지 않은 현재 진행형인 사안이다 보니 더욱 그랬다. 유럽에서 벌어진 전쟁에 대한 건 유대인 학살이라는 초유의 사건에 모두 가려져 다른 나라는 어떤 고통과 압제를 겪어야 했는지 잘 알지 못했다. 세계적으로 영향력 있는 자본세력이 많은 유대인이나 국가 경쟁력이 향상한 우리나라와 달리, 폴란드 인들이 러시아로부터 당했던 약탈과 독일의 집시 학살에 대해서는 여전히 침묵하고 있는 것을 보면 사과를 받는데도 힘의 논리가 작용하는 것 같아 씁쓸하다.



2차 세계대전은 승승장구하며 자만할 수 밖에 없는 두 나라- 독일과 일본이 대국을 건드리며 패망의 길로 스스로 들어간다. 


당시 독일이 러시아를 공격한 것은 오판은 아니었다. 절대적으로 군사력이 뒤처져 있었던 러시아를 빠르게 점령할 수 있을거라 생각했던 독일은 엄청난 수로 보충되는 러시아 군인들과 예상치 못한 혹독한 추위 등에 가로 막혀 작전을 성공하지 못한다. 

일본의 진주만 공격은 보기에는 성공적이었으나 잠자는 사자의 콧털을 건드린 격이었다. 

두 나라 모두 장기전이 될 거라 생각하지 못하고 뛰어들었다가 결국 자신들의 발목을 잡아 버렸다.

그나마 한때 막강했고, 실질적으로 세계를 재패했던 두 나라와 달리 이탈리아는 뭐라도 하나 얻어 먹으려고 독일의 꽁무니를 쫓다가 몰래 독자행동 하다 사고 치고, 허약하면서 질도 나쁜 그런 존재 같았다. 


2차 세계대전은 전혀 연합할 수 없을 것 같은 자본주의 진영과 공산주의 진영을 협력하게 만들었다.

전쟁 당시에는 하나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적과의 동침을 하게 된 셈일테다.

전쟁이 끝난 후 이들이 나눴던 화기애애한 분위기는 의심과 경계로 빠르게 식고 물리적 전쟁은 없지만 얼어붙은 냉전 체제가 시작된다.


2차 세계대전은 세월이 지나도, 세대가 바뀌고 전쟁을 겪지 못한 사람들이 대부분인 이 시점에도 여전히 강력한 흔적을 남기고 있다. 

저자의 말처럼 '제2차 세계대전의 결말은 더 깔끔하지 못했'기 때문일까?


책은 시종일관 건조하게 (때때로 시니컬한 농담을 섞은 것 같지만) 전쟁 경과와 전략적 판단 과정 등을 중심으로 서술되고 있다. 전쟁이 전하는 감정적인 부분은 실상을 고스란히 담은 사진이 대신한다.


전쟁이 가져온 비극이 담긴 이 사진들 때문에 우리는 더욱 2차 세계대전을 잊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 네이버독서카페 '리딩투데이'에서 출판사 지원으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솔직한 리뷰를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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