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게 뭐라고
장강명 지음 / arte(아르테)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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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독서는 호흡이다.

나는 이미 읽고 쓰는 세계에서 살고 있다.

소크라테스가 경고한 그 세계다.

나는 물을 벗어난 물고기처럼 몇몇 용감한 선조들이 2,400년 전에 그 땅으로 올라왔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깨달음을 얻은 어류가 되기 보다 서툴게 걸으며 공기를 직접 들이마시는 양서류가 되기를 택했다.

언젠가 우리는 보다 우아하고 빠르게 달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나는 상상한다."

장강명 <책, 이게 뭐라고> p309~310 / 아르테


저 옛날 김영하 작가가 진행하던 숙면 최적화 팟캐스트부터 이동진의 <빨간 책방>, 나의 최애 황정은 작가가 잠시 진행했던 <창비 문학다방>, 교보의 <낭만서점>, 요즘 가장 잘 듣고 있는 <YG와 JYP의 책걸상> <직장인의 책읽기>까지.


독서 팟캐스트를 정말 즐겨 듣는 편이다. 설거지를 할 때나 어디 이동할 때 등 딱히 머리를 쓰지 않아도 되는 일을 할 때 책을 통한 수다를 들으면 마치 내가 좋아하는 독서모임에 참석한 기분이 든다.


장강명과 요조가 진행하는 <책, 이게 뭐라고>는 그렇게 자주 듣지는 않았지만 가끔 게스트가 흥미가 있을 때마다 들었던 독서 팟캐스트였다. 장강명 작가의 (에세이를 포함) 논픽션물을 소설보다 더 애정하는 나는 동명의 책이 나왔을 때 얼른 읽고 싶었지만 시간 내 읽어야 할 책들이 쌓여서 미루고 미뤄지다 이제야 읽게 되었다. 이 책이 뭐라고!


이 책은 읽고 쓰는 인간 장강명이 말하고 듣는 인간 장강명으로 지내며 느낀 독서와 책에 대한 상념들을 담고 있다. '대화에 서툰 인간'이었던 그가 독서 팟캐스트를 하게 되며 만나게 된 다양한 작가들과 그들을 통해 본 한국 출판계에 대한 애정 어린 마음들도 녹아 들어 있다.


1만 권을 읽었다는 것을 마치 훈장처럼 자랑하는 양적 지표에 매몰된 자기 과시적 독서 문화와 굿즈나 리커버 등 물성을 강조하는 요즘 책들, 책을 읽지 않고도 책 소개를 하는 무수한 책 프로그램과 점점 얇아져가는 책들.

한국 출판계의 불편한 면도 서슴없이 지적한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작가가 지적하는 태세에 젖어 한번씩 저질러 봤을 법한 일들에 뜨끔해지기도 한다.

나도 최근 점점 독서의 즐거움보다 한 달에 몇 권을 읽었는지에 집착하고, 새로 리커버로 출판된 시리즈의 매끈한 물성에 매료되어 소장각을 외쳐댔으니까.

그래도 책에 대한 관심이 아예 없는 것보다는 과시를 위한 독서라도 하는 게 낫지 않을까 생각한다.


르포 장르가 너무나 빈약한 한국 출판계에 대한 지적도 공감했다.

소설이 세상의 단면을 은근히 깨닫게 만들어준다면, 현실을 직시하고 실질적인 변화를 이끄는 건 르포의 힘이다. 

미국에는 재미있는 논픽션들이 엄청 많은데, 우리나라는 심지어 분량도 그보다 한참 짧은 탐사 보도도 그다지 많지 않다.


은유 작가의 글을 좋아하고, 작가의 글을 보며 사회적 약자에 대한 시선과 마음의 변화를 경험했던 나로써는 뛰어난 스토리텔링과 가슴을 치는 문장을 담은 르포들이 많이 나와줬으면 좋겠다.

책에는 나오지 않고 은유 작가가 출연한 회차 팟캐스트에서 나온 아이디어- 문예지들이 소설과 비평 부문만 시상할 것이 아니라 르포 부문도 상을 주자는-가 실현되면 얼마나 좋을까.


책을 다 읽고 난 후 팟캐스트를 진행하며 느꼈던 다양한 에피소드와 생각들 - 르포 장르가 너무나 빈약한 한국 출판계에 대한 지적, 김미경 강사와 같은 말의 달인에 대한 소회, 채사장이 팟캐스트 출연을 너무 만족해 해서 함께 회식을 했다는 이야기 등등 - 대체 어떤 분위기였기에라는 생각에 해당 회차를 부러 찾아 들었다.

팟캐스트의 후일담처럼 책을 보는 기분도 즐거운 경험인 것 같다.


고전 읽기를 하며 느꼈던 '과연 이 책은 왜 고전일까?'라는 생각에 대한 장강명식 답변도 내겐 너무 명쾌했다.

그리고 지금 읽고 있는 책이 어떤 가치를 가질까에 대한 의문에도 어떤 기준점을 준 것 같았다.


"여기서 산뜻한 교훈을 하나 얻을 수 있다.

'세계문학전집'에 뽑힌 책이라고 해서 꼭 좋아하고 존경해야 할 필요는 없다.

그 명단은 주기율표처럼 확정된 것이 전혀 아니다.

수많은 문학적 견해가 논쟁을 벌이는 와중에 최근 어디서 타협했는지를 보여주는 목록에 지나지 않는다.

그 목록에 대해 '이 작품이 여기 왜 있는 거야'라고 의문을 품고 

때로 분개하는 것이 독자의 권리이자 의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작품들을 지금의 관점에서 재평가해야 한다.

다만 그것이 무분별한 깎아내리기와 딱지 붙이기가 아니라 깊이 읽어낸 결과이기를 바란다."

장강명 <책, 이게 뭐라고> p266~267 / 아르테


"고전은 독자에게 얌전하게 교훈을 주지 던져주지 않는다.

그들은 독자들이 피할 수 없는 방식으로 시비를 건다.

자신을 감당할 수 있겠느냐고, 이 존재가 무슨 의미인지 알아맞혀보라고 묻는다.

그것이 고전의 힘이다.

오이디푸스는 뭘 잘못한 걸까? 햄릿은 미친 걸까?

덴비는 '고전은 사람을 기죽게 하는 점령군이 아니라 서로 싸우고, 다시 또 독자와 싸우는, 

길들지 않는 야수들의 왕국'이라고 평했다. (중략)

악평을 받는 작품이 모두 길이 남는 것은 아니지만, 

누구의 심기도 거스르지 않는 소설은 절대로 오래 버티지 못한다.

소설가는 읽고 쓰는 세계에서 미래를 만나려면 마음 속에 야수를 품어야 한다."

장강명 <책, 이게 뭐라고> p240 / 아르테


그리고 <당선, 합격, 계급>에서도 언급했듯 작가와 독자가 서평을 통해 건강한 영향력을 주고 받는 독서 공동체를 꿈꾸는 작가의 간절한 소망도 읽혔다. 그래서 나는 그의 책이라면 무조건 서평을 써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되는 독자가 된다.


항상 '정직한 작가'이기를 꿈꾸며, 자신의 소설적 주제가 '시스템'으로 기억되길 바라는 읽고 쓰는 인간을 보다 깊게 이해하게 되는 에세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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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와 함께 시네마 천국 - 유아동 자녀와 함께 볼 만한 좋은 영화 50편
김용익 지음 / 스타북스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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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여름 갑작스럽게 찾아온 임신, 스스로의 인생도 돌보기 버거워서 요리조리 도망다니기 일쑤이던 내가 부모가 되다니. 인생의 엄청난 전환점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여전히 나는 내 몸의 변화에만 집중하지, 앞으로 내 인생이 아이로 인해 어떻게 바뀔 지 상상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최소한의 마음 준비라는 생각으로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아빠와 함께 시네마 천국>은 자녀와 함께 볼 만한 영화 50편을 추천하며 영화가 주는 이야기에 저자가 아빠로서 느낀 생각과 육아 관련 이론들을 덧붙인 책이다.

저자는 유아동 영상물과 서적을 담당하는 바이어로 일한 것을 계기로 유아교육학 석사 과정을 밟으며 아빠의 육아 에 대한 이론적인 전문성까지 확보하고자 노력했다.

현재는 아버지 교육 연구소 소장으로 일하고 계시다는데 이 책은 여전히 육아 참여에 대해 보조적 역할에 머물러 있는 아빠들에게 생각을 전환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것 같다.


내가 워낙 초보 엄마여서 '아버지 교육 입문서'라 얘기하는 이 책의 내용이 나에게도 온전히 흡수되었다.

마치 타이밍 좋게 읽게 된 자기계발서 같다고 할까.


저자가 추천하는 50편의 영화들은 모두 전체연령가로 언젠가 아이와 함께 보면 좋을 다양한 소재와 생각할거리를 주는 영화들이었다. 하지만 이 책에서 영화는 부차적일 뿐, 중요한 것은 저자가 직접 아이를 양육하며 겪은 일들과 경험에서 나온 양육에 대한 태도와 생각이었다.


책은 아버지의 역할, 에릭슨의 8단계 발달 이론, 뇌 발달과 자녀 이해하기, 소통과 놀이, 꿈과 재능 그리고 경험, 부부 공동육아라는 총 6개의 챕터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각 아이의 발달 과정에 맞춘 자신과 주변 사람들의 실제 양육 경험들을 곁들이며 소중한 팁을 전하고 있다.


요즘 아빠들은 마냥 친구같은 아빠를 지향하는 것 같다. 과거 권위적인 아버지 상에서 탈피하는 게 주 목적이 되어 아이와 잘 놀아주고, 아이가 스스럼 없이 다가오는데만 주안점이 되어 있는 양육 태도를 보인다.


하지만 저자는 아빠의 역할에서 자녀가 진정으로 존경하고 거울로 삼을 수 있는 아빠의 모습도 강조하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이와 언제나 소통하고, 민주적인 태도를 가지고 자녀를 대해야 한다고 말한다. 


또한 아이의 정서와 뇌 발달에 자극이 될 수 있는 다양한 외부활동과 놀이도 아빠의 몫으로 적극 권장하고 있다.

세세한 리스트까지 만들어 육아에 서툰 아빠들을 독려하려 신경쓰는 따뜻한 마음이 엿보인다.


저자는 처음부터 자신이 육아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아빠는 아니었다고 고백한다. 일 때문에 바쁘다는 핑계로 첫해는 오롯이 엄마 혼자 육아를 전담하게 만들었다는 그는 자라나는 아이를 보며 아빠의 역할을 고민하고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에 적극적으로 임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아이도 성장하지만 아빠도 성장했다. 


자신의 입장을 내세우며 아이를 통제하려고 하다가 아이의 마음에 상처를 주고, 아이의 발달 과정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해 과한 요구를 하는 등 서툴었던 시간이 켜켜이 쌓이고, 더 나은 어른이 되고자 하는 고민과 성찰이 훨씬 좋은 아빠가 되게 만들어 주었다. 

아이 역시 엄마와 아빠가 주는 충분한 관심 속에서 친밀감과 올바른 사회성을 키워나갔다.


책을 읽기 전까지는 육아라는 것이 굉장히 막연했는데, 책을 읽으며 아이를 어떻게 키워갈지 고민하는 스스로를 발견했다. 

아이가 어떤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는지, 그래서 나는 어떤 태도로 아이를 대해야할지 구체적인 상을 그려가는 시간은 참으로 소중했다. 

그리고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 이 책을 무조건 남편에게 읽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네이버독서카페 '리딩투데이'에서 출판사 지원으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솔직한 리뷰를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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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트 세습 - 중산층 해체와 엘리트 파멸을 가속하는 능력 위주 사회의 함정
대니얼 마코비츠 지음, 서정아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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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주의가 내뿜은 밝은 빛 때문에 사람들은 그 안에 존재하는 이념적 덫을 제대로 보지 못한다.

능력주의의 밝은 빛은 부유층에게 가짜 자부심을,

나머지 사람들에게 거짓 분노를 심어줌으로써 그에 따른 불평등이 두 집단에 끼치는 해악을 드러나지 않게 한다."

대니얼 마코비츠 <엘리트 세습> p477 / 세종서적



지난해 어디서나 회자되던 초인기 드라마 <SKY 캐슬>은 명문대 진학을 위해 벌이는 부유층들의 교육열과 입시 경쟁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그 드라마를 통해 엘리트들은 어떻게 자식들에게 자신의 지위와 부를 세습하는지를 엿볼 수 있었다.

숨막힐만큼 과도한 경쟁과 압박, 그리고 이를 견뎌냈기에 절대적으로 공고해지는 그들만의 리그...

이제 개천에서 용난다는 말은 옛 말이 되어버린, 사회적 이동이 불가능해진 세습 사회.

한국만 그런줄 알았더니 왠걸... 미국은 더 심했다.



그 자신도 엘리트 코스를 걸어온 대니얼 마코비츠가 거의 내부자처럼 폭로하는 책 <엘리트 세습>은 능력주의의 허상을 비판한 책이다.

능력주의는 마치 공정한 룰처럼 여겨져왔다. 

기존 귀족들이 태생부터 지대 자본을 상속받아 누가 부여했는지도 모를 특권을 누린 것에 반해, 현대의 엘리트들은 본인들의 노력과 실력으로 자신의 자리까지 왔다. 

게다가 그들은 자신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개인의 삶은 사실상 포기해가며 끊임없이 일한다. 

그래서 그들이 얻는 고액의 연봉은 능력에 대한 정당한 대가라고 생각하기 쉽다.


이 때문에 능력주의로 인한 불평등은 건드려선 안될 성역처럼 여겨진다. 

지금의 엘리트가 이룬 부는 그들의 근로 소득이기 때문에 진보주의자들도 부의 재분배를 주장하기 어렵다.

하지만 저자는 고숙련자들의 노동과 미숙련자로 양분되어 가는 근로 시스템 자체가 능력주의적인 논리가 경영 전반에 적용되어 나타난 폐해라고 지적한다. 


"능력에 따른 불평등은 새로운 초점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만든다.

중산층의 삶은 고되다. 게다가 중산층의 침체가 엘리트 계층의 과도한 성장이며 유별난 부유함과 대비되면서 삶은 한층 더 어려워진다.

그러나 중산층은 해링턴 시대의 저소득층과 달리 깊고 본능적인 연민을 이끌어내지 못한다.

그 시대의 하위 불평등은 인도주의 측면에서 대참사였다.

오늘날 상위 불평등은 정치적인 불공평함의 산물이다.

능력주의로의 전환으로 말미암아 평등 신봉자들의 입장은 한층 더 약화되고 있다.

(중략)

소득이 태생이 아니라 근면성에 따라 정해져야 한다는 능력주의 이념은 귀족적인 불평등에 맞서 싸우던 20세기 중반의 진보주의자들에게 막강한 도구였으나, 이제는 그 자체가 새로운 질병의 근원일 뿐 아니라 부의 재분배로 침해하지 말아야 할 도덕적 인질이 되었다."

대니얼 마코비츠 <엘리트 세습> p207 / 세종서적


과거 유한계급이 토지와 생산 자본을 물려받던 시절에는 중간 관리자들이 많이 필요했다. 

20세기 중반까지 기업은 미숙련 근로자들을 고용해 적절한 교육과 승진을 통해 중간 관리자들을 양성해냈고, 이들이 곧 미국 사회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였다. 미국이 중산층 사회로 탄탄하게 성장하는 기반이 되어 주었다.

당시 미국사회는 경제적으로 통합된 사회였다. 부유층과 중산층 간에 실질적인 차이가 크지 않았다.

그들은 한 지역에서 어울려 살았으며 소비하는 재화의 차이도 크지 않았고, 때문에 유사한 환경에서 성장하며 사회적 공감대를 나눌 수 있었다.


하지만 기술 혁신과 복잡한 금융 시스템, 자동화된 경영 기법 등의 도입으로 중간 관리자들의 필요성이 감소되었다.

(저자는 이를 엘리트 스스로가 능력주의적으로 시스템을 왜곡시켜 중산층이 설 자리를 빼앗았다는 식으로 표현한다) 

회사는 종신 고용을 폐지하고, 숙련을 위한 교육 제공을 멈췄다. 게다가 제조업의 불황은 중산층의 위기를 초래했다.

반면 그들의 일자리는 고숙련 근로자에게 집중되었다. 기업은 이제 고숙련 근로자와 언제든 대체될 수 있는 미숙련 근로자로 양분되었다.


엘리트들이 맡은 업무의 전문성은 결코 중간 관리자가 범접할 수 없는 영역이고, 이들 간의 임금 격차는 생활 수준부터 사는 지역, 받을 수 있는 교육까지 모든 것에서 구분짓게 만들었다. 

능력주의가 엘리트와 중산층을, 그리고 미국 사회를 분열시키고 있는 것이다.



책에서 가장 놀라우면서도 우려된 점은 미국의 교육 격차였다.

우리나라도 크게 다르지 않지만 미국의 엘리트들은 자녀들에게 자신의 인적 자본을 세습하기 위해 어린 시절부터 엘리트 교육을 위해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문제는 공교육에서도 이러한 차이가 난다는 것이다.

사는 지역에 따라 공교육에 투입되는 예산이 달라지는데, 엘리트들이 주로 거주하는 지역에는 공교육의 예산이 풍부하여 더욱 질 좋은 교육 환경을 제공할 수 있는 반면, 중산층이 사는 지역에는 공공 도서관 마저 예산이 부족한 형편이다.

무엇보다 평등해야할 공교육에서 이런 차이를 보이니 성인이 되었을 때의 차이는 얼마나 극명할 것인가?


기존에 귀족들이 대물림하듯 들어가던 명문대학교들은 이제 가장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만을 선발한다. 

이 때문에 입시 경쟁이 더 없이 치열해졌다. 

그리고 명문대 학벌이 보장되면 저자가 말하는 고액 연봉이 보장된 '번지르르한' 직업- 주로 금융, 법률, 경영 컨설팅 업종- 으로 이어지는 카르텔이 탄탄하게 형성된다.


이런 시스템 속에서 중산층이 해체 되는 것은 물론 엘리트 역시 파멸하고 있다.

엘리트들은 생애 전반을 정해진 엘리트 코스를 밟아 나가며 자아를 찾는 시도조차 하지 못한다.

항상 과로에 시달리며 가정과 자신의 사생활 등을 돌보지 못하게 된다.

부유한 삶이 댓가로 따르지만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일을 하고 있는 지 알 수 없는 불행한 삶일 수도 있다.

또한 엘리트 교육을 받는 자녀들이 받는 압박은 불안과 우울을 야기한다. 

미국에서 부유층이 밀집해 있는 지역인 팔로알토의 청소년 자살율이 점차 늘고 있는 것이 그 반증이라고 한다.

미국은 꽤나 자율적이고 학구적인 교육 분위기일 줄 알았는데, 소름 돋도록 한국과 닮아 있었다.


그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 능력주의.

하지만 이 신화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너무나 공고해서 깨기가 쉽지 않다.

저자는 20세기 중반의 중산층 시대를 연 기반이 되었던 1920년대 뉴딜 정책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어쨌든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으로 공교육을 살리고, 지나친 경쟁을 완화해야한다는 것이다.

또한 부유층과 중산층이 서로 협력해야만 능력주의의 덫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제안한다.


사실 이 책은 내내 능력주의의 허상을 꼬집고, 엘리트와 중산층 간의 격차와 분열을 폭로하는데 할애한다.

그러다 보니 비슷한 내용과 주장이 계속 반복되는 인상을 주었다.

또한 다른 계층과 비교할 때는 안정적이고 행복도가 높은 집단처럼 묘사된 엘리트가 능력주의의 덫에 걸려 불행한 삶을 산다는 주장은 세대가 달라졌다는 것을 감안해도 모순되게 느껴졌다.


그리고 종신 고용 폐지, 비정규직 증대 등 고용 유연성 정책이나 복잡한 금융 시스템, 무리한 대출로 인한 중산층의 붕괴 등 신자유주의와 자본주의의 폐해로 볼 수 있는 부분도 모두 능력주의의 문제로 환원하고 있어 억지스럽다는 느낌도 지울 수 없었다.

능력주의가 상대적으로 덜한 유럽 사회에서도 신자유주의가 빚은 유사한 폐해가 드러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가 가장 공정하다 여기고 있는 '능력주의'를 불평등의 원인으로 지적한 점은 새로운 관점을 제시했다.

특히 한국 사회는 다양한 계층을 수용하기 위해 마련된 수시 제도보다 성적 순으로 줄 세우는 수능을 가장 공정하다고 여길만큼 능력을 신봉하는 사회가 아니인가? 

이 책이 제시하는 능력주의의 허상, 알고보면 엘리트들은 새로운 귀족에 다름없고, 그들이 더욱 유리할 수 있도록 구축해놓은 판에서 불평등은 점점 심해진 채로 살아가야할지도 모른다는 끔찍한 비극을 반드시 곰곰히 생각해봐야할 필요가 있다.


공정함이란 약육강식의 논리 속이 아니라, 약자에게도 배려 있는 세상에서 나올테니까.


★ 네이버독서카페 '리딩투데이'에서 출판사 지원으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솔직한 리뷰를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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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모든 것을 바꾼다
나오미 클라인 지음, 이순희 옮김 / 열린책들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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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위기에 대해 관심을 갖고는 있었지만 그에 대한 생각을 확장하고 나름의 결론을 내릴만큼 잘 알지는 못한다.

막연한 불안과 공포였다. 생활 속에서 가급적 제로웨이스트나 친환경적인 방향의 선택하고 적당한 불편을 즐기고자 노력했지만, 역시 익숙해진 편안함을 쉽게 내려놓을 수 없었다. 


내 삶도 이렇게 혁신적으로 변화시키지 못했는데, 이 책은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해서 다른 체제는 생각할 수도 없는 '자본주의'를 기후위기의 근본적인 문제로 상정하고 탈자본주의(정부의 강력한 개입과 공공영역 강화)를 주장한다. 엄청나게 급진적이다!


위기는 언제나 위험과 기회가 한꺼번에 오는 것처럼 저자는 기후 위기가 우리 사회를 긍정적으로 전환시키는 데 기폭제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기후 변화는 취약해진 농업 시스템을 복구하고 지역 경제를 재건하며, 기업의 영향에 의해 축소되고 있는 민주주의를 되살리고, 막대한 피해를 낳은 자유 무역 협상을 봉쇄해  각 나라 간에 존재하는 불평등을 없애며, 공공부문에 대한 투자를 이끌어내 보다 기본권이 보장된 사회를 만들어 낼 수 있다. 그 어떤 사회운동보다 더 강력한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낙관은, 자본주의 지배 이데올로기에서부터 벗어나는 것에서 시작된다.


저자는 기후 변화를 '자본주의와 지구의 전쟁'이라고 말한다. 언제나 사람들의 인식 속에서 기후 변화는 뒷전이었다. 

모든 담론에서 자본주의는 (막대한 자본가들의 로비도 있지만) 눈 앞에 닥친 현실이란 이유로, 승리해왔다. 


1988년 리우 협정을 통해 기후 변화의 심각성에 대해 공유한 각 나라는 끊임없는 성장과 이윤확보를 위한 정책과 병행하는 애매한 절충안을 통해 기후 변화를 사실상 방치해왔다.


"우리는 우리 시대의 산물이며 지배 이데올로기의 산물이다.

지배 이데올로기는 기회가 닿을 때마다 인간은 자신의 협소한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존재라고,

우리는 자기만족을 추구하는 개인들일 뿐이라고 가르친다.

또한 크고 작은 문제들을 해결할 기술이 축적된 공동체로부터 사람들을 갈라놓는다.

지배 이데올로기의 활동은 20년이 넘는 세월동안 우리 정부들의 발목을 붙잡아,

기후 위기를 '손자 손녀들'의 문제에서 '당장 내 집 문을 두드리는' 문제로 만들어 버렸다."

나오미 클라인 <이것이 모든 것을 바꾼다> p645 / 열린책들


탄소 배출량을 줄이기로 합의한 이후에도 채취 산업이 주는 막대한 이익을 포기할 수 없어 채취 가능한 곳을 찾아 생산량을 늘려왔고, 그에 따른 결과는 상대적으로 가난한 나라에 떠넘겨졌다.

지속 가능한 재생에너지와 탈물질화된 산업이 가져올 새로운 기회- 일자리, 신성장동력 확보 등-은 기존 채취 산업에 이미 투자된 막대한 자본 탓에 쉽게 확장되지 못한다. 


기후 위기에 대해 정부는 산업 전반의 구조적 변화가 아니라 소비절제와 같은 개개인의 일상생활 변화를 요구한다.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려면 현재의 경제 시스템을 전면적으로 바꾸어야 하는데, 개인의 희생만 강조하는 것이다.

신자유주의 체제를 유지해야하는 보수파에서는 지구 온난화에 대한 과학적 사실을 음모론으로 치부하며 부정한다.

세상 모든 이들이 알고 있는 사실을 트럼프가 뻔뻔하게 부정할 때마다 어떻게 저럴 수 있나 황당해했는데, 미국 우파들이 일관된 기조였다.

기후 위기를 심각하지 않게 취급하면서 결과적으로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려는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저자가 이 책을 집필하던 시절, 비교적 개혁적이었던 오바마 정부 역시 기후 변화에 있어서는 제대로 된 정책을 내놓지 못했다.)


저자는 블로카디아 운동을 소개하며 자본주의와 기후 간의 전쟁에서 승리하려면 저항운동이 필요함을 강조한다.

블로카디아는 노천 채광, 프래킹가스 채취, 타르 샌드 오일 송유관 매립 등 자원 채취와 운송으로 인해 국경을 초월해 충돌의 빈도와 강도가 갈수록 심해지는 지대를 일컫는말로, 채취산업에 저항하는 운동으로 확산되었다. 

이 밖에도 화석연료반대 투쟁은 중국과 호주, 북미에 이르기까지 엄청난 파급효과를 일으켰고, 투자회수 캠페인 역시 환경적 측면에서 보다 윤리적으로 운영하는 기업을 가려내는 데 주효했다. 

이들이 추구하는 것은 단순한 환경 운동이 아니다. 공동체 생존에 필수적인 자원들에 대한 실질적인 통제권을 보장하는 '민주주의'다. 

저자는 이런 저항운동을 통해 획득한 자원에 대한 통제권으로 지속가능한 에너지를 만들고, 이를 통해 지역 기반 경제를 활성화시키는 청사진을 제시한다.


그동안 온건함으로 포장돼 기업의 이윤만 불려주었던 느리고 애매했던 환경 정책들 탓에 기후 위기는 더욱 가까이 다가왔다.

때문에 앞서 말한 기후 변화를 기회로 삼아 '모든 것을 바꾸는' 획기적인 혁신이 시급한 시점이다.

그리고 이러한 혁신에는 모든 인류의 강력한 연대와 투쟁이 필요하다고 저자는 호소한다.


이 책을 읽기 전에 기후위기와 자원고갈에 대한 낙관론을 펼치는 앤드루 맥아피의 <포스트피크>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다.

보다 효율적인 방식을 추구하는 거대자본들이 기술 혁신을 통해 탈물질화를 가져왔기에, 궁극적으로 기후위기는 자본주의와 기술혁신, 대중의 인식과 반응하는 정부를 통해 극복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모든 자원과 산업을 국유화하고 석유를 국민들에게 배분했던 이상적인 이념과 시스템(어쩌면 <이것이 모든 것을 바꾼다>가 추구하고 있는 공공시스템을 구축한)을 가졌던 베네수엘라의 실패 사례를 들면서 사회주의가 기후위기를 막는데 대안이 될 수 없음을, 오히려 (<이것이 모든 것을 바꾼다>에서는 어설픈 중도주의라고 생각하고 있는) 기업들을 제도적으로 친환경적으로 생산하고 사업을 영위할 수 있도록 규제와 제도를 고도화하는 방향이 필요함을 이 책은 주장하고 있다.


<포스트피크>를 읽을 당시만해도 굉장히 설득력있는 주장이라 여겼다.

하지만 나오미 클라인의 책을 읽고 이 역시 자신들의 소비로 만들어진 탄소배출량을 개발 도상국으로 떠넘기며, 자신들은 탈산업화를 이뤘다고 자위하는 비열한 선진국들의 정당화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리고 결론에서 저자가 던지는 '역사가 문을 두드렸을 때 대답을 했느냐'는 질문에 기꺼이 'Yes'라고 대답할 수 있는, 좀 더 실천하는 사람이 되어야 겠다고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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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아로 산다는 것 - 워킹푸어의 시대, 우리가 짓고 싶은 세계
박노자 지음 / 한겨레출판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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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과, 자본을 위한 국가가 수면 시간 이외에 우리의 모든 시간을 차지하고 우리의 모든 것을 아는 이 디스토피아 같은 세계에서 '혁명'이란 결국 나와 우리의 회복에서 시작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각자가 스스로에게 '나의 생각이 무엇이냐'라고 물어보는 것은, 아마도 현재로서 가장 혁명적인 질문일 것입니다."

박노자 <미아로 산다는 것> p12 / 한겨레출판


러시아 태생으로 한국으로 귀화를 선택한 박노자는 대표적인 진보 논객이다. 그의 글은 가끔 신문에 올려진 칼럼을 통해 접했다. 한국인이면서 이방인의 시각을 함께 갖춘 그가 날리는 팩트폭력은 언제나 뼈아픈 지적이었다. 


이 책 <미아로 산다는 것>은 최근 한국에서 이슈가 되었던, 그리고 여전히 고질적으로 남아있는 여러 갈등과 문제에 대해 저자 나름의 분석과 생각을 펼쳐놓은 사회비평 에세이다.


저자는 서문에서 본인을 '미아'라고 규정한다. '길을 잃어 집에 돌아갈 수 없는 아이'. 그것은 태어난 국가도, 귀화해 국적을 얻은 국가도 아닌 노르웨이에 머물고 있는 자신의 물리적 위치를 얘기하기도 하지만, 급속도로 스며든 SNS 문화에 적응할 수 없는 문화적 미아를 뜻하기도 한다.


그리고 자신 뿐만 아니라 신자유주의 체제를 살아가는 모든 이가 새로운 가난과 고독, 착취와 소외가 일상이 된 삶을 살아가는 미아라고 말한다.


안타까운 것은 이런 미아 상태를 벗어나기 위해 서로 연대와 협조를 하는 것이 아니라 '타자 혐오'로 똘똘 뭉친다는 것이다. 이런 시대에 그래서 가장 필요한 것은 나와 우리의 회복, 스스로에게 나의 생각을 묻는 행위라고 저자는 말한다.


"저는 이 시대에 과거와 같은 외부로부터의 '계몽'은 무의미하다고 봅니다.

지식을 제공하면서 '나은 미래'의 청사진을 제시한다고 해서 소외된 채 착취에 노출된 외로운 개인에게 변화가 절로 찾아오지는 않습니다. 

변화는 안으로부터, 각자의 동심으로부터 옵니다.

자신의 동심으로 돌아온 사람이야말로 경쟁이 아닌 연대의 길을 택할 수 있습니다."

박노자 <미아로 산다는 것> p13 / 한겨레출판


책은 총 5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 '편안함의 대가'에서는 한국이 지금 빠져있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다루고 있다.

'인간에게 꼭 필요한 어떤 도취의 체험'이 한국사회에서는 부정적이게도 권력, 알코올, 그리고 소비에 빠져있음을 개탄한다.


2장 '남아 있는 상처'에서는 치열한 입시 경쟁과 전 세계에서 유례가 없을 정도로 낮아진 출산율, 연애나 성적 욕구도 거세 당한 채 살아가는 청년들 등 신자유주의가 할퀴고 간 우리 일상의 상처를 더듬어간다.


3장 '한국, 급의 사회'는 신분제는 사라졌지만 자본에 의해 어느새 급이라는 것이 생겨버린 사회, 그래서 죽음 마저도 급이 나눠져버린 세상을 다룬다. 모든 것이 서울과 수도권에 집중된 지역 불균형, 학벌로 모든 신분이 결정되는 기이한 구조, 그리고 능력주의로 가장한 공정 담론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치열한 경쟁에 뛰어드는 학생들. 겉모습이 다르다는 이유로 혐오와 차별의 대상이 되는 이들.


이 장에서 다루는 문제들은 해결되지 않으면 우리 사회의 통합을 저해할 수 있는 암적 요소들이다. 

하지만 모두가 고통 받으면서 그러한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하고 있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4장 '과거의 유령들'에서는 한국의 오래된 문제, 일본 식민지배 트라우마와 남북갈등, 통일에 대한 담론을 다룬다. 

과거 청산이 제대로 되지 않았기에 더욱 오랫동안 일본 식민지배의 트라우마를 앓고 있는 것이라 진단하는 저자.

비단 일제 강점기 시절만이 아니다. 현대사에서도 우리는 청산하지 못한 과거가 수두룩하고, 그 과거는 마치 파멸을 약속하며 나타난 악당처럼 현재로 다시 소환되어 우리를 괴롭힌다. 


명백한 적처럼 보이는 일제에 대한 청산과 그에 대한 합의도 힘겹게 하고 있는 우리가 현대사에 드러난 잘못된 과거를 어떻게 바로 잡을 수 있을까를 생각하면 아득해진다. 여전히 박정희와 전두환 시대를 미화하는 이들이 남아있고, 진실이 밝혀진다한들 이들이 가진 왜곡된 사고가 쉽게 바뀔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5장 '전쟁이자 어머니인 세계'에서는 누구에게는 전쟁같은 참사가 누구에게는 필요하고 이익이 될 수 있는 상황에 대한 이야기다.

이 장에서 다루는 주제가 꽤 다양한데 먼저 공정에 대한 청년들의 분노를 보여준 '인천국제공항공사 정규직 전환' 논쟁. 열악한 노동환경을 개선할 수 있는 문제를 질시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이를 부추긴 언론들의 행태를 비판하고 있다. 코로나 19가 취약계층에 더 혹독했던 '진실의 순간'에 대한 분석도 인상 깊었다.

그리고 이 장에서는 신자유주의 체제로 인해 자국의 이익에만 몰두해 다른 나라를 향한 폭력을 서슴치 않는 강대국들의 횡포에 대해서도 폭로하고 있다.  


사실 새롭다 싶은 시각은 없었다. 우리에게 여전히 현재 진행형인 문제에 대해 진보매체에서 내놓는 얘기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모든 것이 신자유주의의 병폐이고, 우리는 이제 자본주의 이후를 준비해야 한다는 것.

그런데 그 이후라는 것이 너무나 불분명해서 아직 그들의 주장이 와닿지 않는 그 느낌을 이 책도 여전히 가지고 있다.


그리고 내가 가진 '책'이라는 물질에 대한 견해가 보수적인 건가. 

이 책이 다룬 소재들이 너무나 시의적이라 1년만 지나도 낡은 담론이 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몇 개 챕터는 출판이 되는 시점에 좀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가 진행되고 있어서, 마치 여전히 2000년대 초반의 낡은 인권 의식을 가진 사람들을 계몽하려는 것처럼 들렸다. 안타깝다.

그는 SNS 문화에 깊은 사유가 사라져가는 것을 아쉬워했지만, 그가 남긴 글은 책이라는 매체보다는 SNS의 빠르고 즉각적인 소통에 더 적합해보였다.


하지만 매일 쏟아지는 정치적 갈등과 사건사고에 대한 뉴스를 보며 그저 인상만 찌푸리고 넘어갔던 나에게, 짧지만 해당 이슈에 대해 한번쯤 생각하게 해준 건 귀한 경험이었다.


★ 네이버독서카페 '리딩투데이'에서 출판사 지원으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솔직한 리뷰를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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