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아로 산다는 것 - 워킹푸어의 시대, 우리가 짓고 싶은 세계
박노자 지음 / 한겨레출판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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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과, 자본을 위한 국가가 수면 시간 이외에 우리의 모든 시간을 차지하고 우리의 모든 것을 아는 이 디스토피아 같은 세계에서 '혁명'이란 결국 나와 우리의 회복에서 시작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각자가 스스로에게 '나의 생각이 무엇이냐'라고 물어보는 것은, 아마도 현재로서 가장 혁명적인 질문일 것입니다."

박노자 <미아로 산다는 것> p12 / 한겨레출판


러시아 태생으로 한국으로 귀화를 선택한 박노자는 대표적인 진보 논객이다. 그의 글은 가끔 신문에 올려진 칼럼을 통해 접했다. 한국인이면서 이방인의 시각을 함께 갖춘 그가 날리는 팩트폭력은 언제나 뼈아픈 지적이었다. 


이 책 <미아로 산다는 것>은 최근 한국에서 이슈가 되었던, 그리고 여전히 고질적으로 남아있는 여러 갈등과 문제에 대해 저자 나름의 분석과 생각을 펼쳐놓은 사회비평 에세이다.


저자는 서문에서 본인을 '미아'라고 규정한다. '길을 잃어 집에 돌아갈 수 없는 아이'. 그것은 태어난 국가도, 귀화해 국적을 얻은 국가도 아닌 노르웨이에 머물고 있는 자신의 물리적 위치를 얘기하기도 하지만, 급속도로 스며든 SNS 문화에 적응할 수 없는 문화적 미아를 뜻하기도 한다.


그리고 자신 뿐만 아니라 신자유주의 체제를 살아가는 모든 이가 새로운 가난과 고독, 착취와 소외가 일상이 된 삶을 살아가는 미아라고 말한다.


안타까운 것은 이런 미아 상태를 벗어나기 위해 서로 연대와 협조를 하는 것이 아니라 '타자 혐오'로 똘똘 뭉친다는 것이다. 이런 시대에 그래서 가장 필요한 것은 나와 우리의 회복, 스스로에게 나의 생각을 묻는 행위라고 저자는 말한다.


"저는 이 시대에 과거와 같은 외부로부터의 '계몽'은 무의미하다고 봅니다.

지식을 제공하면서 '나은 미래'의 청사진을 제시한다고 해서 소외된 채 착취에 노출된 외로운 개인에게 변화가 절로 찾아오지는 않습니다. 

변화는 안으로부터, 각자의 동심으로부터 옵니다.

자신의 동심으로 돌아온 사람이야말로 경쟁이 아닌 연대의 길을 택할 수 있습니다."

박노자 <미아로 산다는 것> p13 / 한겨레출판


책은 총 5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 '편안함의 대가'에서는 한국이 지금 빠져있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다루고 있다.

'인간에게 꼭 필요한 어떤 도취의 체험'이 한국사회에서는 부정적이게도 권력, 알코올, 그리고 소비에 빠져있음을 개탄한다.


2장 '남아 있는 상처'에서는 치열한 입시 경쟁과 전 세계에서 유례가 없을 정도로 낮아진 출산율, 연애나 성적 욕구도 거세 당한 채 살아가는 청년들 등 신자유주의가 할퀴고 간 우리 일상의 상처를 더듬어간다.


3장 '한국, 급의 사회'는 신분제는 사라졌지만 자본에 의해 어느새 급이라는 것이 생겨버린 사회, 그래서 죽음 마저도 급이 나눠져버린 세상을 다룬다. 모든 것이 서울과 수도권에 집중된 지역 불균형, 학벌로 모든 신분이 결정되는 기이한 구조, 그리고 능력주의로 가장한 공정 담론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치열한 경쟁에 뛰어드는 학생들. 겉모습이 다르다는 이유로 혐오와 차별의 대상이 되는 이들.


이 장에서 다루는 문제들은 해결되지 않으면 우리 사회의 통합을 저해할 수 있는 암적 요소들이다. 

하지만 모두가 고통 받으면서 그러한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하고 있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4장 '과거의 유령들'에서는 한국의 오래된 문제, 일본 식민지배 트라우마와 남북갈등, 통일에 대한 담론을 다룬다. 

과거 청산이 제대로 되지 않았기에 더욱 오랫동안 일본 식민지배의 트라우마를 앓고 있는 것이라 진단하는 저자.

비단 일제 강점기 시절만이 아니다. 현대사에서도 우리는 청산하지 못한 과거가 수두룩하고, 그 과거는 마치 파멸을 약속하며 나타난 악당처럼 현재로 다시 소환되어 우리를 괴롭힌다. 


명백한 적처럼 보이는 일제에 대한 청산과 그에 대한 합의도 힘겹게 하고 있는 우리가 현대사에 드러난 잘못된 과거를 어떻게 바로 잡을 수 있을까를 생각하면 아득해진다. 여전히 박정희와 전두환 시대를 미화하는 이들이 남아있고, 진실이 밝혀진다한들 이들이 가진 왜곡된 사고가 쉽게 바뀔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5장 '전쟁이자 어머니인 세계'에서는 누구에게는 전쟁같은 참사가 누구에게는 필요하고 이익이 될 수 있는 상황에 대한 이야기다.

이 장에서 다루는 주제가 꽤 다양한데 먼저 공정에 대한 청년들의 분노를 보여준 '인천국제공항공사 정규직 전환' 논쟁. 열악한 노동환경을 개선할 수 있는 문제를 질시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이를 부추긴 언론들의 행태를 비판하고 있다. 코로나 19가 취약계층에 더 혹독했던 '진실의 순간'에 대한 분석도 인상 깊었다.

그리고 이 장에서는 신자유주의 체제로 인해 자국의 이익에만 몰두해 다른 나라를 향한 폭력을 서슴치 않는 강대국들의 횡포에 대해서도 폭로하고 있다.  


사실 새롭다 싶은 시각은 없었다. 우리에게 여전히 현재 진행형인 문제에 대해 진보매체에서 내놓는 얘기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모든 것이 신자유주의의 병폐이고, 우리는 이제 자본주의 이후를 준비해야 한다는 것.

그런데 그 이후라는 것이 너무나 불분명해서 아직 그들의 주장이 와닿지 않는 그 느낌을 이 책도 여전히 가지고 있다.


그리고 내가 가진 '책'이라는 물질에 대한 견해가 보수적인 건가. 

이 책이 다룬 소재들이 너무나 시의적이라 1년만 지나도 낡은 담론이 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몇 개 챕터는 출판이 되는 시점에 좀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가 진행되고 있어서, 마치 여전히 2000년대 초반의 낡은 인권 의식을 가진 사람들을 계몽하려는 것처럼 들렸다. 안타깝다.

그는 SNS 문화에 깊은 사유가 사라져가는 것을 아쉬워했지만, 그가 남긴 글은 책이라는 매체보다는 SNS의 빠르고 즉각적인 소통에 더 적합해보였다.


하지만 매일 쏟아지는 정치적 갈등과 사건사고에 대한 뉴스를 보며 그저 인상만 찌푸리고 넘어갔던 나에게, 짧지만 해당 이슈에 대해 한번쯤 생각하게 해준 건 귀한 경험이었다.


★ 네이버독서카페 '리딩투데이'에서 출판사 지원으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솔직한 리뷰를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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