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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하버드에서도 책을 읽습니다 - 독서 인생 12년차 윤 지의 공부, 법, 세상 이야기
윤지 지음 / 나무의철학 / 2019년 6월
평점 :
하버드와 책이라니! 제목만 보면 해리포터가 다니는 마법 학교 ‘호그와트’가 마구마구 연상되며 평화롭고 밝은 하루하루로 가득할 듯하다. 그런데 글을 읽다 보면 ‘그래, 해리포터도 호그와트에서 갖은 고난과 역경을 맞닥뜨렸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책의 내용은 깊고도 진지했다.
《나는 하버드에서도 책을 읽습니다》에서는 민족사관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듀크 대학교에서 하버드 로스쿨까지 진학한, 우리가 흔히 말하는 ‘엘리트 코스’를 밟은 작가가 자신이 겪은 아픔을 오롯이 보여준다. 저자는 어려움 속에서 책을 읽으며 자신을 위로하고 용기를 얻었다. 그리고 그 마음을 독자에게 건넨다.
저자는 변호사가 되기로 한 이유와 책을 쓰기로 한 이유가 누군가를 돕기 위해서, 자신과 비슷한 감정을 겪는 사람이 위로받았으면 해서, 라고 말한다. 저자는 나보다는 남을 위하는 마음이 더 큰 사람인 듯하다. 이렇게나 따뜻한 사람이니 찬바람이 남들보다 좀 더 시렸겠구나 싶었다.
책을 덮고 나서는 작가가 이 찬바람을 더 이상 두려워만 하지는 않는다는 점에 안심이 되었다. 그러니 다른 사람을 위로할 힘을 갖출 수 있던 게 아닐까.
이제는 인생이 산이 아닌 들판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나침반도 안내문도 없이 그저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걷고 뛰고 구를 수 있는, 움직이기 싫을 때는 드러누워 구름도 보고 바람도 맞고 햇살도 쬐며 재충전할 수 있는 그런 곳 말이다. 비가 오면 비를 맞고 눈이 오면 눈을 맞으며 그 순간을 즐기고 싶다.
또 인상 깊었던 점은 책을 대하는 작가의 마음가짐과 깊은 공감 능력이다. ‘나’로 주인공에게 감정을 이입하고, ‘우리’의 관점에서 주인공의 생각을 어떻게 삶에 녹아낼지 고민한다. 책을 한 권 한 권 찬찬히 읽는 모습에서 책을 ‘얼마나’ 읽느냐가 아닌 ‘어떻게’ 읽느냐를 명확히 알고 있다는 사실이 느껴졌다. 책을 읽다 보면 누가 많이 읽는지 시합하는 것도 아닌데, 읽는 ‘행위’ 자체에 치중되어 독서의 의미가 퇴색되곤 한다. 저자가 이런 태도에 직접 경종을 울리지는 않지만, 나긋나긋하면서 힘 있는 저자의 글에 나도 모르게 자신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책 속으로 도망친 경험이 한 번씩은 있으리라. 경쟁, 비교, 타인의 기대, 외부의 압력. 이 모든 것이 자신을 짓누르고 머리끝까지 덮은 이불조차도 답답하기 그지없을 때 우리는 책 속에 몸을 끼워 넣고 페이지를 덮는다. 그리고 페이지라는 문을 열고 나왔을 때 한층 성장해있음을 느낀다. 이 책을 쓴 저자가 그렇듯 말이다.
해리포터는 ‘악당을 물리치고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 하는 동화 같은 이야기가 아니다. 소중한 사람을 잃고 자신을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질타와 비난을 받고, 친구의 질투로 마음고생도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버텼습니다, 하는 인생 이야기다. 그러나 우리는 그 안에서 희망을 찾았고 해리포터의 천진난만한 웃음을 떠올리며 또다시 해리포터를 찾아본다. 작가의 인생에도, 독자의 인생에도 비바람이 몰아치겠지만 뒤돌아봤을 때 가장 먼저 보이는 모습이 맑디맑은 웃음이기를 바란다.
하버드에 입학하기 위한 공부 방법이나 하버드에서의 행복한 대학 생활을 맛볼 수 있으리라 기대하며 이 책을 펼쳤다면 실망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책에 위로받아본 적이 있고, 책으로 누군가를 위로해본 적이 있다면 충분히 공감하며 읽을 수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