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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스라이팅 - 당신을 심리적으로 지배하고 조종하는 사람에게서 벗어나는 방법
스테파니 몰턴 사키스 지음, 이진 옮김 / 수오서재 / 2021년 10월
평점 :
미국을 대표하는 가장 권위 있는 사전으로 알려진 메리엄-웹스터 사전은 ‘가스라이팅’을 올 한 해 가장 많이 인기를 얻은 단어로 꼽았다. 미국뿐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언제부터인가 ‘가스라이팅’이라는 단어를 일상에서 사용하게 되었다. 연애 프로그램에서도 꼭 한 번씩은 이 단어가 등장하고, 누가 누구를 가스라이팅 했더라, 누가 누구에게 가스라이팅 당했더라는 기사도 끊이지 않는다. 심지어 친구·연인 사이에서 ‘야, 너 가스라이팅 하지 마라’고 장난으로 말하기도 한다. 거기서 궁금해졌다. 나는 가스라이팅의 의미를 잘 알고 있나? 가스라이팅이란 무엇인가?
저자 스테파니 몰턴 사키스는 임상 심리 전문가이자 미국 정신건강협회 공인 상담사이다. 심리 치료사로 일하면서 타인의 심리를 지배하고 조종하며 괴롭히는 가해자와 그 피해자들을 만났다. 이를 바탕으로 심리학 전문지에 가스라이팅에 관한 글을 기고했고, 많은 지지를 받으며 《가스라이팅》을 집필했다.
…실제로 그 용어가 만들어진 것은 영국 극작가 패트릭 해밀턴이 1938년에 제작한 연극 〈가스등〉에서였으며, 1944년 조지 쿠커가 감독하고 잉그리드 버그먼과 샤를 부아예가 주연한 영화 〈가스등〉을 통해 대중에게 처음 알려졌다. 영화 속에서 폴라의 남편 그레고리는 폴라 자신이 미쳐가고 있다고 믿게 만든다. 폴라는 중요한 물건들을 잃어버리고 환청을 듣고 환상을 본다. 그레고리가 깜빡이지 않는다고 말하는 가스등이 폴라에게는 깜빡거리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폴라를 가스라이팅하기 위한 그레고리의 설정이었음이 밝혀진다. (P.11)
유래에서 알 수 있듯 문제를 상대방에게 떠넘기며 그 사람을 심리적으로 지배하려는 행동을 가스라이팅이라고 한다. 가스라이팅은 연인 사이에서만 아니라 가족, 친구, 직장 어디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 이 책에서는 그 외에 종교와 정치에서 보이는 가스라이팅도 다루며, 혹시 내가 가스라이터(gaslighter)는 아닐까? 하는 질문도 던진다. 내 주변 누군가가 가스라이팅을 하지는 않는지 아니면 오히려 내가 누군가를 가스라이팅을 하지는 않는지 의심이 든다면, 이 책으로 해답을 얻을 수 있으리라 본다.
주변에 있는 사람이 가스라이터인지 아닌지 알았는가? 그렇다면 그 사람에게서 벗어나거나 그럴 수 없다면 가스라이팅에 무너지지 않도록 자기 자신을 지켜야 한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이상적인 해결책만 늘어놓을 뿐 만족스러운 방법을 제시하지는 못한다. 연애할 때는 가슴보다 머리를 믿고 상대방에게서 벗어나라는 둥 악착같이 구한 직장인데 새 직장을 구하라는 둥 회식 자리에서 술을 먹지 말라는 둥 누군들 몰라서 못 하겠는가 하는 생각만 들 뿐이다. 특히 ‘자신의 판단을 믿어라’는 말이 많이 나오는데, 이미 가스라이팅이 진행된 상태라면 피해자는 객관적인 판단이 안 되는 상태이리라. 과연 이 말이 피해자에게 도움이 될지 의문이다.
또 저자는 가스라이팅의 다양한 사례를 제시하는데, 그중에 직장 내 성희롱과 협박도 있다. 설령 그것이 가스라이팅 범주에 들어간다고 하더라도 가스라이팅의 정의를 알고자 책을 펼친 독자에게는 내용이 복잡하게 느껴질 듯하다.
가스라이팅이라는 단어가 널리 사용되는데도 불구하고 국내에 발간된 가스라이팅 관련 서적은 극히 드물다. 인터넷 서점 알라딘에 가스라이팅을 검색해보면 국내서 단 9권이 나올 뿐이다. 일상에서 자주 사용되는 만큼 단어의 무게는 가벼워지는 듯하다. 더 다양한 도서가 나와 사람들이 단어의 정확한 의미를 알고 ‘무거운’ 단어를 ‘가볍게’ 사용하지 않기를 바란다.
가스라이터 중 상당수는 ‘자기애 손상’을 보인다. 자기애 손상은 자존심 혹은 자기 가치감에 대한 위협을 느끼는 것이다. 그들은 그 위협에 자기애적 분노로 반응한다. 그 분노는 항상 요란하게 표출되는 것은 아니다. - P48
인지부조화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바람직한 방법은 당신의 믿음과 가치관에 맞는 본래 당신의 모습을 되찾기 위한 행동을 취하는 것이다. 그것은 대체로 가스라이터의 곁을 떠나거나 거리를 두는 것을 뜻한다. - P49
자기 자신이 가스라이터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은 대체로 가스라이터가 아니라는 것이다. 진짜 가스라이터는 자신에게는 문제가 없고 다른 모든 사람에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는 것을… - P275
가스라이터가 자주 사용하는 기술 중 하나가 ‘투사’다. 가스라이터는 실제로는 그 자신이 통제하고 조종하면서, 다른 사람이 자신을 조종한다고 비난한다. 어쩌면 당신도 그런 상황에 처한 것일 수도 있다. 누군가가 당신이 사람을 조종하려 한다고, 당신이 가스라이터라고 비난했는가? 처음에는 한심한 헛소리라는 생각이 들었는가? … 당신이 가스라이팅 행동을 한다는 비난을 받는다면, 현재 펼쳐지는 상황의 역학관계를 찬찬히 살펴보고 정말 당신의 잘못인지 생각해보라. - P2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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