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형 남자친구
노희준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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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이 이야기는 삼류정도라고 해 두자. 그렇지만 분명히 해둘게 있다. 삼류라는 게 보잘것없다는 말과 동일어는 아니다. 단지 사회의 주류를 이야기 속에 담지 않았단 얘기고, 그걸 풀어내는 방식이 삼류스럽다는거, 그 뿐이다. 요컨대 예의바른 사람들이 격식맞는 언어를 사용하는 무대가 아니란거다. 어딘가 좀 모자라 보이는 등장인물이 욕지거리 해가면서 찌질한 얘기 풀어놓는다는거다. 그게 바로 <X형 남자친구>(문학동네.2009) 속 세계다.

 

일단 제목부터 뭔가 비주류스럽다. A, B, AB, O형 다 놔두고 왠 X형? 지가 외계인이라도 되나. 게다가 표지 봐라. 깔끔치 않은 턱수염에 신경쓴 듯, 대충 걸쳐입은 옷의 남자와 배꼽 다 드러낸 뚱한 표정의 여자. 눈 씻고 찾아봐도 주류의 ㅈ도 안 보인다.

 

총 8편의 단편이 독자를 기다린다. '살'에서 사람들은 통과병에 걸린다. 더 이상 타인과의 신체적 접촉이 불가한 상황. 그럼에도 여전히 돈에 목말라가며 살아가는 사람들 속에서 주인공은 외로움에 사무쳐 말한다. 다 필요없다고, 부대낄 수 있는 살만 있다면... 이라며. 어떻게든 타인을 몸으로 느끼고 싶어하는 처절한 외침이 변하지 않은 물질만능주의 앞에서 공허하게 울린다. 어쩌면 지금 우리의 모습일지 모른다. 타인과의 접촉점이 없는 세상, 상상이 가지 않는다. 우리는 살아있되 살아있지 않은, 기계가 되어가고 있는 건 아닐까.

 

어느 곳에선 폭력이 말을 대체하기도 한다. 말로서의 소통이 끝난 지점에는 어김없이 칼이 있고, 몸에서 흘러나온 피가 흥건하다. ('다람쥐 죽이기', '사랑의 역사') 사람 사이에 폭력은 공포를 불러오고 이내 사람을 체념하게 만든다. 결국 폭력의 반복. 세계는 점차 광폭해진다.

 

너와 나 사이의 직접적인 소통이 사라진 자리에는 물건이 등장한다. 핸드폰, 카메라...... 직접 얼굴을 맞대지 않고도 나의 존재를 각인시키고, 상대를 옥죈다. 현실에선 한 마디 하지도 못하는 사람이 물건 뒤에 숨어 다른 이들을 농락한다. 아니 그렇다고 믿으며 살아간다. 그러나 그 순간 자신도 또 다른 자의 희생자로 살아갈 뿐이다. ('살아 있음에 감사하라', '외눈박이') 조지 오웰이 예견했던 빅브라더 세계는 더 이상 공상이 아니다.

 

이야기가 너무 거대해졌다 싶은 순간, 작가의 시선은 땅끝으로 곤두박질친다. 이어지는 찌질한 삶, 찌질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하찮군,날다', 'X형 남자친구', '물실로폰') 아등바등거리지만 주류의 눈에도 들어오지 않는 미련한 인물들. 그러나 그들을 보는 작가의 시선은 매섭지 않다. 그래도 이들은 살아갑니다, 식일까.

 

여기까지 오니 삼류가 더 이상 삼류만은 아니다. 사실 그게 우리 평범한 사람들 이야기지 뭐. 하루는 기분 들뜨게. 또 하루는 울컥하게. 또 다른 날은 볼품없기도 할거다. 그렇지만 그게 삶이다. 때론 욕지거리도 하고, 폭력도 오가고, 물건 뒤에 숨어 비겁하게도 살고. 그래도 이거 하나만은 잊지 말아야겠다. 사람과 사람 '사이'. 타인과 어떻게든 접촉하며 살 수 있다면 조금은 방황하고 어리석어도 괜찮을거 같단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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