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웨이 위고 - Away we go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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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연인 버트와 베로나. 버트의 부모님이 계신 곳에서 아기를 낳으려 했던 그들의 계획은 부모님이 갑작스레 해외로 나가면서 틀어진다. 몇 개월 후 당장 아기를 맞이해야 하는 그들은 자신들이 삶을 꾸려나갈 곳을 물색하기 위해서 지인들이 살고 있는 곳으로 떠난다. 아직 결혼을 하지 않은 두 사람은 여러 곳을 여행 다니면서, 그리고 결혼해 가정을 이루고 사는 여러 커플들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부모가 된다는 것, 가정을 이룬다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이들이 여행중 지켜보는 가족의 풍경은 어딘가 불완전하고 어긋나 있다. 철없는 부모와 색다른 가치관으로 아이를 교육하는 부모, 그리고 자신의 아이를 가지고 싶어하지만 결국 가질 수 없는 부모 등. 결국 중요한 것은,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맺어진 어떤 형식이 아니라, 함께 살면서 서로를 아껴주는 마음, 사랑이라는 이름의 행동들이라는 것을 영화는 말해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들이 오랜 시간 여러 곳을 둘러보고 느끼는 것도 바로 그와 같은 것들이 아니었을까.

영화는 샘 멘데스 감독 영화치곤 다소 상투적인 결말로 끝나지만, 한 집에서 같이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 여행의 형식을 통해 생각하게 한다. <레볼루셔너리 로드>에서 새로운 곳에 대한 끝없는 갈망이 불러 일으키는 파국을 묘사했다면, 이번 영화는 그와는 다른 감성으로 새로운 곳에 대한 갈망을 이야기한다. 배우들도 처음 보는 배우들이지만 무척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주었다. 마음 편하게 이들의 연기를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저절로 마음이 푸근해졌다.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샘 멘데스 감독의 따뜻한 소품 정도로 여겨도 괜찮을 것 같다.

사랑하는 사람과 손을 꼭 잡고 오래도록 여행을 함께 떠나고 싶다면 꼭 보면 좋을 영화다. 어디로 가야 할지, 함께 고민하고 생각할 수 있게 만드는 영화니까. 그리고 두 사람이 함께라면, 어디라도 괜찮다고 생각하도록 만들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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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을 때 후회하는 스물다섯 가지 - 1000명의 죽음을 지켜본 호스피스 전문의가 말하는
오츠 슈이치 지음, 황소연 옮김 / 21세기북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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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죽을 때 후회하는 스물다섯 가지>라는 이 책의 제목을 처음 접했을 때, 예전에 보았던 <버킷 리스트-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것들>이라는 영화가 생각났다. 죽음을 앞둔 두 사람이 죽기 전에 꼭 해보고 싶었던 것들을 하나씩 해보는 이야기다. 영화를 보고 나서 내가 만약 죽음을 얼마 남겨두지 않았다면, 어떤 일들을 가장 해보고 싶을까 하는 생각을 했더랬다. 그때 나는 리스트를 적어본 것 같기도 한데, 어떤 일들을 적었는지 지금 생각해보니 또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주위 사람들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하기 같은 사소한 것들과 세계여행 같은 거대한 일도 적었던 것 같고.


  그 영화를 보았을 때만 해도 죽음이 바로 앞에 다가온 것처럼 하루하루를 절실하게 살아야지 생각했었다. 하지만 일상의 삶은 늘 죽음과 너무 멀리 있다. 그래서 늘 잊고 살아간다. 내가 해보고 싶었던 것들과 너무 멀리 떨어져 늘 후회라는 발자국을 남기며 살아간다. 그래서 나는 언젠가 죽음이 바로 눈앞에 닥치게 된다면, 왜 이런 것들을 하지 못했을까 하는 깊은 후회로 가슴을 칠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조금은 뻔한 이야기들이 펼쳐질 것 같은 이 책을 펼쳤던 것도, 그리고 예상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 전개될 것 같은 예감에도 계속 읽을 수밖에 없었던 것도 일종의 자극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죽음이라는 자극. 죽음 앞에서 절실해지는 삶. 그런 자극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나른하게 하루하루를 흘려보내다 보면, 잊기 쉬운 것들을 다시 한 번 살펴보고 싶어서였다. 예상대로 이 책은 나의 그런 기대치를 충족시켜주었다. 비슷한 주제를 다룬 영화와는 또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이 책은 호스피스 전문의가 죽음을 바로 앞에 둔 환자들을 보며 그들의 이야기와 함께 죽을 때 후회하는 스물다섯 가지 것을 정리한 책이다. 스물다섯 가지 후회는 결국 지금 이것들을 하라는 충고와도 같다. 죽을 때 후회하지 말고, 지금 사랑하는 사람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고, 진짜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조금만 더 겸손하고, 친절을 베풀고, 나쁜 짓을 하지 말고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라 등등. 다 알고 있는 것들이고 해야지 마음먹은 것들이지만 평소 생활에서는 잘 하지 못하는 일들이다. 죽음이 바로 앞에 와야 절실해지는 것들이기도 하다.


  책을 읽으면서, 내내 죽음에 대해 생각했고 지금의 내 삶에 대해 생각했다. 결국 나는 내가 지금 너무 많은 것들을 미루면서 살아가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 이르렀다. 언젠가는 할 거야, 지금은 여유가 없으니 다음에 꼭 해야지 하면서 자꾸만 미루고 있는 것들이 생각났다. 후회할 시간조차 주어지지 않고, 삶이 끝날 수도 있는데. 지금 해보지 않는다면 영원히 해보지 못할 수도 있는데. 그런 생각이 들자 조금 두려워지기도 했다.


  나는 후회하는 것을 정말 싫어한다. 죽는 순간, 내 삶에 대한 후회가 밀려온다면 얼마나 끔찍할까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이 책이 지금 내 삶에 있어서 강력한 각성제가 되었던 것은 확실하다. 중요한 것들을 자꾸만 미루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사람에게, 자신의 삶에 너무 인색한 사람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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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 니콜라 - Little Nicholas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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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 재미난 영화가 없을까 하고 영화 정보를 뒤적거리고 있다면, 아무 생각 없이 깔깔깔 웃음을 터뜨리고 볼 수 있는 영화를 찾고 있다면 <꼬마 니콜라>를 강력하게 추천하고 싶다. <꼬마 니콜라>는 어떤 대단한 사건이 일어나는 영화는 아니지만, 상큼한 웃음을 선사해주는 영화다. 더구나 어린 시절의 해맑은 시간으로 되돌아가는 듯한 즐거움까지 보너스로 안겨다줄지도 모른다.

이미 르네 고시니의 글과 장 자크 쌍뻬의 그림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꼬마 니콜라를 감독은 아주 재치있게 스크린에 옮겨 놓았다. 니콜라를 비롯하여 니콜라와 함께 작전을 벌이는 악동들의 캐릭터가 모두 인상적이다. 각각의 매력을 충분히 발휘하고 있는 아역 배우들은 보는 것만으로도 저절로 웃음을 짓게 만든다. 모든 아역 배우들이 나름대로 다 매력이 있어서 깨물어주고 싶을 만큼 귀엽다. 영화를 통해 다시 만나는 꼬마 니콜라는 충분히 사랑스럽고 매력적이다. 그래서 영화를 보는 내내 책과는 또 다른 즐거움을 충분히 누릴 수 있었다.

니콜라와 니콜라 친구들이 벌이는 유쾌한 소동은 동생 없애기 대작전이라고 해도 될 것이다. 어느 날, 갑자기 아빠와 엄마가 다정한 표정을 교환하자, 니콜라는 자신에게도 동생이 생길 것이라는 착각을 하게 된다. 동생이 생긴 반 친구가 알려진 이상 징후가 니콜라 엄마 아빠에게도 똑같이 나타난 것이다. 니콜라는 동생이 생기면 자신은 숲에 버려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친구들을 모아 동생 없애기 대작전에 들어간다.

동생 없애기 대작전이 진행되는 사이, 사이 학교에서 일어나는 에피소드들도 참 재미있다. 신체검사라든가, 장학사가 오는 날 벌어지는 에피소드 등 어린 시절의 즐거웠던 일상을 훔쳐보는 재미랄까. 어린이의 해맑은 눈으로 들여다보는 것의 즐거움이랄까. 그런 즐거움이 영화 곳곳에 있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자연스럽게 짓게 되는 웃음들. 마치 어린 아이가 되어 깔깔깔 즐겁게 웃는 웃음들. 영화를 보면 그런 웃음이 터진다. 터져 나온다. 이 영화를 보고 나니, 프랑스 코미디 영화를 더 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긴다.

영화는 더 나아가 삶이 조금 어긋나고, 구질구질 버리고 싶은 일상이 늘어나도 웃음을 버리면 안 되는 이유를 느끼게 한다. 우리의 삶에서 '웃음'이 주는 마력이랄까. 나이가 들어서도 잊어버려서는 안 되는 게 한 가지 있다면, 그건 바로 '웃음'이라고, 꼬마 니콜라가 속삭이는 듯 하다. <꼬마 니콜라>는 그런 속삭임을 즐겁게 받아들일 수 있는 영화다. 상큼하게 웃음을 전염시킬 수 있는 영화, <꼬마 니콜라>를 보고 나면, 삶은 좀 더 상큼해지고 발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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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오랫동안 사랑했어요 - I’ve Loved You So Long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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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만 보면 애절한 사랑 영화인 것 같다.(하지만 연인 사이의 애절한 사랑 이야기는 아니다. 어쨌든 제목이 주는 여운이 있다.) 그리고 포스터를 보면 지극히 슬픈 눈빛으로 바라보는 여자의 얼굴에 압도당한다. 한 꺼풀 더 들어가, 이 영화의 감독이 누군지 알고 나면, 영화를 꼭 보아야 할 것 같은 의무감이 생긴다. 소설가 필립 클로델의 데뷔작이란다. 많이 들어본 것 같은데 잘 기억이 안 나 검색해 보았더니, 언젠가 한없이 슬픈 여운을 남겼던 작품으로 기억되는 <무슈 린의 아기>의 작가다. <회색 영혼>이라는 작품으로는 르노도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고. 문학성을 인정받는 작가의 영화는 어떤 빛깔일까. 영화로의 데뷔는 성공적일까? 사실, 영화를 보기 전 그런 궁금증이 강했다.

  그런데 영화가 시작되면 감독에 대한 생각을 이내 잊어버린다. 영화가 전개될수록 한 여배우에게 영화가 압도당하기 때문이다. 영화가 끝나고 나면 이 영화는 줄리엣 역을 연기한, 크리스틴 스콧 토마스의 영화이고, 그녀를 위한 영화라는 느낌이 강렬하게 든다. 감독이 마치 이 여배우를 위해 이 영화를 만든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그녀의 얼굴은, 그녀가 얼굴을 통해 드러내는 표정은 줄리엣의 슬픔을, 줄리엣의 내면을 그보다 더 잘 드러낼 수 없을 정도로 느껴진다. 그리고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그녀의 얼굴 위로 드리워졌던 슬픔을, 고독을 쉽게 떨쳐내 버릴 수 없을 것 같은 느낌에 사로잡힌다. 그녀의 얼굴은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쉽게 잊히지 않는다.

  줄리엣은 15년의 감옥 생활을 끝내고 일을 구할 때까지 동생 레아 집에 머무르게 된다. 15년 동안 떨어져 있었기에, 연락조차 주고받지 않았기에 이들 자매의 관계는 서먹하다. 레아의 가족들(남편인 뤽과 딸)과도 서먹하기는 마찬가지. 그들은 언제까지 줄리엣이 자기 집에서 지낼 것인지(레아의 남편, 뤽), 무엇하느라  지금까지 못 보았는지(레아의 딸)를 궁금해 할 뿐이다. 줄리엣은 동생 레아에게조차 자신의 이야기를 편안하게 하지 못한다. 15년만에 출소일이 가까워져서야, 복지부의 연락을 받고 겨우 언니를 찾아온 동생, 레아. 자매는 그렇게 다시 만나게 되었지만, 레아마저 찾아오지 않았다면 줄리엣은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없었을 텐데도, 줄리엣은 그저 "너는 나를 잊고 살았지?"라고 차갑게 말한다. 레아는 자신이 그동안 언니를 얼마나 그리워했는지, 그 흔적들을 줄리엣 앞에 내놓지만 줄리엣은 그저 그 수첩들을 무표정하게 바라다볼 뿐이다. 동생은 언니를 감싸안고 싶어하지만 언니 줄리엣은 그런 동생에게 필요 이상으로 냉담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화면 전체에 가득했던 외로움과 고독은 점차 걷히는 듯 보인다. 서로 마음의 문을 닫았던 관계에 조금씩 조금씩 소통의 순간들이 찾아오기 때문이다. 자신의 아들을 죽이고 15년형을 살았던 줄리엣에게서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못했던 뤽은 자신의 아이를 편하게 줄리엣에게 맡기고, 아이들 또한 점차 줄리엣 이모를 편하게 대한다. 줄리엣 또한 레아에게 짧지만 자신의 진심을 담은 듯한 말, 고맙다는 말을 전한다. 영화를 보면서 반짝 하는 마음의 일렁임을 느끼는 순간들이었다.

  영화를 보고 나서 필립 클로델의 작품 <무슈 린의 아기>와 이 영화가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소통의 순간들이 닿아 있는 곳이 결국 같은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들의 죽음을 경험해야 했던 여자의 지독한 삶. 어떤 형벌을 받아도 구원이란 없을 것 같은 지독한 삶에 고요히 전개되는 소통의 순간들이 아름다웠다. 왜 아들을 죽이고 감옥에 가야 했는지, 줄리엣이 끝내 말하려 하지 않았던 그 비밀에 다가가고 나면, 줄리엣의 얼굴 위로 끝없는 슬픔이 고요히 내려앉는 느낌이 든다. 그 얼굴은 이제 치유될 수 없는 슬픔의 얼굴로 기억될 것이다. 영화는 줄리엣의 인상적인 한 마디로 끝이 난다. 이 인상적인 한마디와 함께, 이 여배우의 얼굴을, 그리고 지독히도 인상적인 데뷔작을 들고 나온 필립 클로델이라는 감독을 쉽사리 잊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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셉템버 이슈 - The September Issue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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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서 메릴 스트립이 연기했던, 차가운 편집장을 기억하는 이라면 그녀의 실제 모델이라던 보그지 편집장, 안나 윈투어라는 이름을 들어보았을 것이다. 안나 윈투어의 실제 생활을 담은 다큐멘터리라는 점에서 귀가 솔깃하게 만드는 영화, <셉템버 이슈>. 이 영화를 보게 된 건 누군가의 솔직 담백한 일상이 담긴 다큐멘터리를 좋아하는 개인적인 취향 때문이다. 더구나 패션계에서 강력한 힘을 지닌 안나 윈투어라니, 궁금증이 더했다.
 
 
선글라스를 끼고 팔장을 낀 채 도도한 표정으로 패션쇼를 관람하는 안나. 어떤 모델보다도 카메라 세례를 받는 화제의 인물. ‘패션계의 교황’이라 불린다는 주변 사람들의 짤막한 인터뷰까지. 영화는 시작부터 화려한 장면을 오고가며 안나에 대한 궁금증을 불러 일으킨다. 그런데 정작 영화가 전개될수록 영화의 중심은 안나가 아니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보그지 9월호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따라가는 카메라는 안나보다도 오히려 패션 디렉터인 그레이스에게 더 오래 머무는 듯한 인상을 준다. 어렸을 때 모델 일을 시작했다가, 교통사고를 당해 디렉터로 일을 바꾸게 된 그레이스는 안나와 함께 20년 동안 보그지에서 일했다고. 그레이스는 안나의 탁월한 예측 능력을 칭찬하고, 안나는 그레이스의 탁월한 감각을 칭찬한다. 보그지의 지면에 실릴 사진을 결정하는 안나의 안목보다는, 안나에 의해 자신이 작업한 상당 부분을 실리지 못하는 그레이스의 심경에 더 초점을 맞춘 듯 느껴졌다. 영화 내내 센스 있고 화려한 옷차림을 자랑하는 안나와는 달리 별로 신경을 쓰지 않은 듯한, 소탈한 옷차림으로 나온 그레이스에게 유독 눈길이 머물렀다.

  마감 전까지 숨 가쁘게 진행될 것 같은, 보그지 9월호 탄생 과정 속에 잠시 숨 쉴 여유를 주려는 듯, 영화는 중간 중간 안나의 인터뷰, 그레이스의 인터뷰, 그 외 주변 인물들의 인터뷰까지 끼워 넣으며 호흡을 늦춘다. ‘얼음 공주’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지만, 메릴 스트립이 연기했던 편집장처럼 차갑게 보이지는 않았다. 물론 그렇다고 전혀 다르게 소탈하거나 편안해 보이지는 않았다. 카메라를 의식했기 때문이었을까? 말은 적었고, 필요한 말만 간결하게 하는 스타일인 것 같았다. 잠깐, 딸과 함께 있는 장면이 비추기도 했지만, 안나의 개인적인 생활은 더 이상 깊이 들어가지 않았다. 딸과 함께 있는 장면이라고는 해도, 딸의 인터뷰가 잠깐 소개되고 안나가 딸과 있다가 다시 나가는 장면 정도랄까. 영화에 소개된 개인적인 취향이라면, 스타벅스 커피를 즐겨 마신다는 것과 허리에 벨트를 한, 소매가 없는 원피스 차림을 즐겨 입는다는 것, 그리고 패션쇼를 볼 때는 꼭 선글라스를 낀다는 것.


  안나는 인터뷰에서 “패션에서는 앞을 내다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레이스가 칭찬했듯이, 그것이야말로 그녀가 패션계에서 20년 이상 일하면서 아직도 패션계의 교황이라 불리는 이유일 것이다. 패션계를 주름잡는 인물, 안나 윈투어에 대한 솔직 담백한 다큐멘터리를 기대한다면 약간 실망할 수도 있다. 아니, 많이! 보그지가 만들어지는 과정(옷을 고르고 화보를 찍고 그리고 안나의 선택에 따라 많은 사진이 버려지고, 다시 찍는 과정)과 그 과정 속에서 잠깐 잠깐씩 안나 윈투어의 일상을 스케치하고, 안나와 함께(아니, 안나의 선택에 따라 좌지우지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의 일상이 소개되는 식이다.


  너무나 간결하게 소개되어, 정확히 알기는 어려웠지만 여러 가지로 짐작해보자면, 안나가 보그지 편집장으로 20년 동안 패션계를 주름잡는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건 정확히 재단할 줄 아는 그녀의 안목에 있다는 것. 그녀의 삶 또한 자신의 생각대로 정확히 재단해서 만들어간다는 느낌이 팍팍 들었다. 이 다큐멘터리 또한 감독이 편집한 것이 아니라, 그녀의 감각과 판단에 의해 맞추어진 느낌이랄까. 검은 선글라스를 끼고 자신의 눈을 가릴 때처럼, 이 다큐멘터리 속에서도 가리고 싶은 것은 절대로 보여주지 않는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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