셉템버 이슈 - The September Issue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서 메릴 스트립이 연기했던, 차가운 편집장을 기억하는 이라면 그녀의 실제 모델이라던 보그지 편집장, 안나 윈투어라는 이름을 들어보았을 것이다. 안나 윈투어의 실제 생활을 담은 다큐멘터리라는 점에서 귀가 솔깃하게 만드는 영화, <셉템버 이슈>. 이 영화를 보게 된 건 누군가의 솔직 담백한 일상이 담긴 다큐멘터리를 좋아하는 개인적인 취향 때문이다. 더구나 패션계에서 강력한 힘을 지닌 안나 윈투어라니, 궁금증이 더했다.
 
 
선글라스를 끼고 팔장을 낀 채 도도한 표정으로 패션쇼를 관람하는 안나. 어떤 모델보다도 카메라 세례를 받는 화제의 인물. ‘패션계의 교황’이라 불린다는 주변 사람들의 짤막한 인터뷰까지. 영화는 시작부터 화려한 장면을 오고가며 안나에 대한 궁금증을 불러 일으킨다. 그런데 정작 영화가 전개될수록 영화의 중심은 안나가 아니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보그지 9월호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따라가는 카메라는 안나보다도 오히려 패션 디렉터인 그레이스에게 더 오래 머무는 듯한 인상을 준다. 어렸을 때 모델 일을 시작했다가, 교통사고를 당해 디렉터로 일을 바꾸게 된 그레이스는 안나와 함께 20년 동안 보그지에서 일했다고. 그레이스는 안나의 탁월한 예측 능력을 칭찬하고, 안나는 그레이스의 탁월한 감각을 칭찬한다. 보그지의 지면에 실릴 사진을 결정하는 안나의 안목보다는, 안나에 의해 자신이 작업한 상당 부분을 실리지 못하는 그레이스의 심경에 더 초점을 맞춘 듯 느껴졌다. 영화 내내 센스 있고 화려한 옷차림을 자랑하는 안나와는 달리 별로 신경을 쓰지 않은 듯한, 소탈한 옷차림으로 나온 그레이스에게 유독 눈길이 머물렀다.

  마감 전까지 숨 가쁘게 진행될 것 같은, 보그지 9월호 탄생 과정 속에 잠시 숨 쉴 여유를 주려는 듯, 영화는 중간 중간 안나의 인터뷰, 그레이스의 인터뷰, 그 외 주변 인물들의 인터뷰까지 끼워 넣으며 호흡을 늦춘다. ‘얼음 공주’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지만, 메릴 스트립이 연기했던 편집장처럼 차갑게 보이지는 않았다. 물론 그렇다고 전혀 다르게 소탈하거나 편안해 보이지는 않았다. 카메라를 의식했기 때문이었을까? 말은 적었고, 필요한 말만 간결하게 하는 스타일인 것 같았다. 잠깐, 딸과 함께 있는 장면이 비추기도 했지만, 안나의 개인적인 생활은 더 이상 깊이 들어가지 않았다. 딸과 함께 있는 장면이라고는 해도, 딸의 인터뷰가 잠깐 소개되고 안나가 딸과 있다가 다시 나가는 장면 정도랄까. 영화에 소개된 개인적인 취향이라면, 스타벅스 커피를 즐겨 마신다는 것과 허리에 벨트를 한, 소매가 없는 원피스 차림을 즐겨 입는다는 것, 그리고 패션쇼를 볼 때는 꼭 선글라스를 낀다는 것.


  안나는 인터뷰에서 “패션에서는 앞을 내다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레이스가 칭찬했듯이, 그것이야말로 그녀가 패션계에서 20년 이상 일하면서 아직도 패션계의 교황이라 불리는 이유일 것이다. 패션계를 주름잡는 인물, 안나 윈투어에 대한 솔직 담백한 다큐멘터리를 기대한다면 약간 실망할 수도 있다. 아니, 많이! 보그지가 만들어지는 과정(옷을 고르고 화보를 찍고 그리고 안나의 선택에 따라 많은 사진이 버려지고, 다시 찍는 과정)과 그 과정 속에서 잠깐 잠깐씩 안나 윈투어의 일상을 스케치하고, 안나와 함께(아니, 안나의 선택에 따라 좌지우지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의 일상이 소개되는 식이다.


  너무나 간결하게 소개되어, 정확히 알기는 어려웠지만 여러 가지로 짐작해보자면, 안나가 보그지 편집장으로 20년 동안 패션계를 주름잡는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건 정확히 재단할 줄 아는 그녀의 안목에 있다는 것. 그녀의 삶 또한 자신의 생각대로 정확히 재단해서 만들어간다는 느낌이 팍팍 들었다. 이 다큐멘터리 또한 감독이 편집한 것이 아니라, 그녀의 감각과 판단에 의해 맞추어진 느낌이랄까. 검은 선글라스를 끼고 자신의 눈을 가릴 때처럼, 이 다큐멘터리 속에서도 가리고 싶은 것은 절대로 보여주지 않는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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