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오랫동안 사랑했어요 - I’ve Loved You So Long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제목만 보면 애절한 사랑 영화인 것 같다.(하지만 연인 사이의 애절한 사랑 이야기는 아니다. 어쨌든 제목이 주는 여운이 있다.) 그리고 포스터를 보면 지극히 슬픈 눈빛으로 바라보는 여자의 얼굴에 압도당한다. 한 꺼풀 더 들어가, 이 영화의 감독이 누군지 알고 나면, 영화를 꼭 보아야 할 것 같은 의무감이 생긴다. 소설가 필립 클로델의 데뷔작이란다. 많이 들어본 것 같은데 잘 기억이 안 나 검색해 보았더니, 언젠가 한없이 슬픈 여운을 남겼던 작품으로 기억되는 <무슈 린의 아기>의 작가다. <회색 영혼>이라는 작품으로는 르노도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고. 문학성을 인정받는 작가의 영화는 어떤 빛깔일까. 영화로의 데뷔는 성공적일까? 사실, 영화를 보기 전 그런 궁금증이 강했다.

  그런데 영화가 시작되면 감독에 대한 생각을 이내 잊어버린다. 영화가 전개될수록 한 여배우에게 영화가 압도당하기 때문이다. 영화가 끝나고 나면 이 영화는 줄리엣 역을 연기한, 크리스틴 스콧 토마스의 영화이고, 그녀를 위한 영화라는 느낌이 강렬하게 든다. 감독이 마치 이 여배우를 위해 이 영화를 만든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그녀의 얼굴은, 그녀가 얼굴을 통해 드러내는 표정은 줄리엣의 슬픔을, 줄리엣의 내면을 그보다 더 잘 드러낼 수 없을 정도로 느껴진다. 그리고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그녀의 얼굴 위로 드리워졌던 슬픔을, 고독을 쉽게 떨쳐내 버릴 수 없을 것 같은 느낌에 사로잡힌다. 그녀의 얼굴은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쉽게 잊히지 않는다.

  줄리엣은 15년의 감옥 생활을 끝내고 일을 구할 때까지 동생 레아 집에 머무르게 된다. 15년 동안 떨어져 있었기에, 연락조차 주고받지 않았기에 이들 자매의 관계는 서먹하다. 레아의 가족들(남편인 뤽과 딸)과도 서먹하기는 마찬가지. 그들은 언제까지 줄리엣이 자기 집에서 지낼 것인지(레아의 남편, 뤽), 무엇하느라  지금까지 못 보았는지(레아의 딸)를 궁금해 할 뿐이다. 줄리엣은 동생 레아에게조차 자신의 이야기를 편안하게 하지 못한다. 15년만에 출소일이 가까워져서야, 복지부의 연락을 받고 겨우 언니를 찾아온 동생, 레아. 자매는 그렇게 다시 만나게 되었지만, 레아마저 찾아오지 않았다면 줄리엣은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없었을 텐데도, 줄리엣은 그저 "너는 나를 잊고 살았지?"라고 차갑게 말한다. 레아는 자신이 그동안 언니를 얼마나 그리워했는지, 그 흔적들을 줄리엣 앞에 내놓지만 줄리엣은 그저 그 수첩들을 무표정하게 바라다볼 뿐이다. 동생은 언니를 감싸안고 싶어하지만 언니 줄리엣은 그런 동생에게 필요 이상으로 냉담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화면 전체에 가득했던 외로움과 고독은 점차 걷히는 듯 보인다. 서로 마음의 문을 닫았던 관계에 조금씩 조금씩 소통의 순간들이 찾아오기 때문이다. 자신의 아들을 죽이고 15년형을 살았던 줄리엣에게서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못했던 뤽은 자신의 아이를 편하게 줄리엣에게 맡기고, 아이들 또한 점차 줄리엣 이모를 편하게 대한다. 줄리엣 또한 레아에게 짧지만 자신의 진심을 담은 듯한 말, 고맙다는 말을 전한다. 영화를 보면서 반짝 하는 마음의 일렁임을 느끼는 순간들이었다.

  영화를 보고 나서 필립 클로델의 작품 <무슈 린의 아기>와 이 영화가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소통의 순간들이 닿아 있는 곳이 결국 같은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들의 죽음을 경험해야 했던 여자의 지독한 삶. 어떤 형벌을 받아도 구원이란 없을 것 같은 지독한 삶에 고요히 전개되는 소통의 순간들이 아름다웠다. 왜 아들을 죽이고 감옥에 가야 했는지, 줄리엣이 끝내 말하려 하지 않았던 그 비밀에 다가가고 나면, 줄리엣의 얼굴 위로 끝없는 슬픔이 고요히 내려앉는 느낌이 든다. 그 얼굴은 이제 치유될 수 없는 슬픔의 얼굴로 기억될 것이다. 영화는 줄리엣의 인상적인 한 마디로 끝이 난다. 이 인상적인 한마디와 함께, 이 여배우의 얼굴을, 그리고 지독히도 인상적인 데뷔작을 들고 나온 필립 클로델이라는 감독을 쉽사리 잊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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