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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연시대
황혜란 지음 / 에세이스트사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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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혜란 작가의 첫 산문집 <조연시대>는 총 5부로 나뉘어 있다. 어린 시절부터 이어진 험난했던 가족과의 삶과 작가로 살고 싶은 그녀의 현재와 소망을 담고 있다.

그녀에겐 4살의 어린 나이에 교통사고로 죽은 오빠가 있었다. 이 사실은 결혼 후 첫아이를 낳고 알게 되었다고 한다. 평범했던 친정엄마는 어느 날 무당이 되었다.

결혼하기 전까지 그녀의 삶은 친정엄마를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젊고 능력있던 엄마는 건물도 짓고 땅을 사며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부를 이루었지만, 작가가 23살이 되던 해에 신을 모시는 무당이 되어 집을 떠났다.

"내 나이 스물셋, 엄마가 무당이 되겠다고 했을 때, 나는 엄마의 상황에 대해선 생각해 보지 않았다. 다만 무당이 된 엄마를 부끄러워할 내 생각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노희경 작가의 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의 주인공 완이를 보며 깨달았다. 완이가 엄마의 대장암 선고 앞에 엄마의 걱정이 아닌 자신과 연인에 대한 걱정이 앞섰다는 죄책감으로 자신의 따귀를 수없이 내리치는 장면을 보았다. 나의 마음은 완이와 한 치도 다름없었음을 이제야 고백한다..... (중략)..... 앞에 수식어처럼 붙게 된 '무당의 딸'이라는 말이 치가 떨리게 싫었다. 난 그저 나이길 원했다. 튀고 싶지도 바닥을 기고 싶지도 않은 보통 그 언저리 어디쯤의 삶이길 바랐다."

그녀는 눈물과 한탄으로 얼룩진 무능하고 우유부단한 아버지를 대신해 집안을 돌보는 장녀가 되어야 했고, 취업 원서에 부모의 직업을 어찌 써야 할지 혼란스러울 만큼 어렸다. 한동안은 부끄럽고 창피해 하며 그레이스 봉고를 모는 슈퍼가게 아가씨로 살았고, 무당이 된 엄마와 바퀴벌레가 들끓는 천호동 구옥에서 가난한 무당의 딸로, 책임감으로 어깨가 무거운 장녀로 살았다. 엄마가 무당이어서 연인과 헤어져야 했고 엄마의 직업은 이별의 무기가 되었다.

그러나, 그녀는 K-장녀였고 마음의 크기가 큰 딸이었다. 무당인 엄마의 직업이 치가 떨리도록 싫었어도 "늘 엄마 법당에 가서 때맞춰 절을 올리고 돈을 놓아 드리고 동자에겐 과자를 사다 받쳤다. 믿음이 아니라 가족에 대한 도리였다."

고되고 힘들었던 젊은 시절을 보내고 좋은 남편을 만나 현재는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고, 친정엄마를 이해하는 나이가 되었다.

"딸인 나조차 무당으로서의 삶이 어떤지 깊게 알 수 없다. 엄마가 어떤 일을 하든지 간에 엄마는 그저 엄마니까."

"어리고 지금보다 젊었을 때 구부러진 엄마의 삶에 분노하고 매몰차게 한 적이 많았다. 경외와 멸시 사이에 존재하는 무당처럼 엄마는 내게 전지전능한 신과 실패하고 제멋대로인 인간 사이 어디쯤에 자리하고 있었다. 내가 갈지자로 인생을 널뛰기하며 살았듯 엄마 또한 그러했으리라."

자신을 찾아 갈지자로 헤매던
과거의 젊고 씩씩했던 황혜란은
50을 바라보며 또다시
새로운 꿈을 꾸고 있다.
조연시대의 자체발광 빛나는 조연으로
자신의 색을 또렷하게 발하는
존재. 글을 쓰는 작가가 되고 싶다고.

황혜란 작가의 다음 작품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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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홀린 글쓰기 32 - 책이 전하는 창의적 영감
고선애 외 지음 / 도서출판이곳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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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문학작품을 좋아해서 종종 에세이와 시집을 읽지만, 보통은 장르를 가리지 않고 소설을 즐겨읽는 편이다. 소설을 읽는 주된 이유는 뭘까? 인간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다.

뛰어난 소설을 읽을 때마다 드는 생각은,
작가의 글쓰기 재능은 천부적으로 타고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해리포터 시리즈의 작가 J.K. 롤링을 보면 이 생각은 더욱 근거가 있어 보인다.

그러나 아무리 상상력이 뛰어나고 글솜씨가 탁월한 작가라 해도 세상에 없는 새로운 글을 창작해 가는 과정은 쉬울 리가 없다. 힘들게 글쓰기를 시작했다 쳐도 아이디어의 고갈이나 실망, 좌절, 고통, 외로움 등등 앞이 보이지 않는 터널의 연속일 것이다.


<나를 홀린 글쓰기 32>는
글을 쓰고 싶고, 좋은 글을 쓰고 싶은 작가 또는 작가 지망생 7인의 글쓰기에 대한 진심이 흘러넘치고 있다.

이 책의 저자인 7명의 작가들은
각자가 읽은 기존 유명 작가들의 작법서 32권을 한 권씩 소개, 요약하면서 동시에 자신들의 글쓰기에 대한 열망과 노력을 다짐하고 있다.

<소설창작수업>의 작가 최옥정은 작가 지망생들에게 이렇게 격려한다.

"재능이 있는지 없는지 고민하지 말고 절실한 마음으로 충실하게 글을 쓰라. 글을 쓰겠다는 욕망과 절박한 마음이 글을 쓰게 한다. 또 매일 일정한 분량의 글을 쓰라. 그러다 보면 문장력도 좋아질 테니 말이다. 나아가 오랫동안 글을 쓰기 위해선 자신감, 근성, 오기, 그 무엇이든 내 안에서 샅샅이 뒤져 붙들고 매달리라."


소설가 스티븐 킹은 <유혹하는 글쓰기> 창작론에서, 글쓰기에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려면, 다음 요소들을 기억하라고 한다.

- 어휘력, 문법, 문체의 요소를 익히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기
- 많이 읽고 많이 쓰기
- 명사와 동사를 기본 구조로 쓰기
- 동사의 경우 수동태를 피하고 능동태로 쓰기
- 주어가 어떤 행동을 하는지 속 후련하게 쓰기
- 부사 사용 자제하기
- 문단 잘 이용하기​

무엇보다 글쓰기를 배우는 가장 좋은 방법은 "많이 읽고 많이 쓰는 것"이라고 거듭 강조하고 있다. 글쓰기를 위한 마법 같은 비결은 어디에도 없기에 자신이 쓰고자 하는 장 르의 책을 많이 읽고 써보라는 것이다.

또한, 스티븐 킹의 글 중 인상적이었던 것은 초고에 대한 태도였다.

"완성한 초고를 6주 정도 묵힌 다음, 쓴 글을 다시 읽으면서 플롯이나 등장인물의 성격에서 발견된 허점을 고쳐나간다."


작가 김효선의 <전략적 에세이 쓰기>에서,
이 책의 저자 중 한 명인 이수경 님은 "글은 쥐어 짜내는 것이 아니라 흘러넘쳐야"한다는 저자의 말에 무릎을 탁 쳤다고 했다. 나 역시 머리를 탁 쳤다.

나 또한 매번 글쓰기가 어렵게 느껴지는 이유 중 하나가 가뭄의 논바닥처럼 글감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쓰는 손이 따라잡기 어려울 정도로 글감이 많다면 오죽 좋을까.

김효선 작가는 글감이 넘치길 기다리라고 한다.

"사람을 만나 인터뷰하고 자료조사도 하고 독서와 성찰을 하며 내 안에 글감이 흘러넘치도록 기다리는 것도 글을 쓰는 과정이라고 한다. 쓰고 싶은 글이 있지만 아직 설익었다 느껴진다면 잠시 유보하고, 지금 내가 쓸 수 있는 글을 시작하는 것도 필요하다."


인간이란 존재는 문명이 탄생하기 훨씬 전부터 동굴벽이든 어디든 무언가를 그리고 써서 흔적 남기기를 좋아했다.

글을 쓰는 행위는 인간이 타고난 본능 중 가장 고귀한 본능이 아닐까. 더 나아가 자신이 쓴 글이 세상으로부터 인정과 공감을 받는다면, 자신에게 그보다 더한 성취가 어디 있을까.

이 책 속 7명의 작가들의 열망이 빛나는 열매로 맺어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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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일드 - 4285km, 가장 어두운 길 위에서 발견한 뜨거운 희망의 기록
셰릴 스트레이드 지음, 우진하 옮김 / 페이지2(page2)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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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일드 Wild>는 미국 여성 작가 셰릴 스트레이드가
4,285km에 달하는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PCT)을
도보로 혼자 95일간 걸으며 상실을 회복해가는 여정을 담아낸 여행 에세이다.

p.15
PCT란 캘리포니아 주 멕시코 국경에서 시작해 캐나다 국경 너머까지 9개의 산맥을 따라 이어지는 황무지의 도보여행길이었다..... (중략)..... 캘리포니아 주, 오리건 주, 워싱턴 주 전체에 해당하는 거리를 가로지르는 이 장대한 여정에는 국립공원들은 물론 여러 황무지와 연방 정부, 인디언 부족, 그리고 개인 소유의 땅과 지역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게다가 사막과 산맥들, 그리고 열대우림이며 강과 고속도로까지 거처야 하는 길이었다. ​

셰릴이 PCT 여행을 시작한 때는 26세의 6월 초순으로 PCT가 공식적인 도보 여행길로 인정된 지 겨우 두 달 지난 후였다. 많은 사람들이 아직은 PCT가 뭔지도 모르는 초창기였다.

그녀는 4년 전 폐암으로 돌아가신 엄마를 잃은 후 삶의 지표를 잃고 방황하는 삶을 살고 있었다. 엄마의 나이는 고작 45세였다. 19세에 결혼한 엄마는 폭력적인 남편으로부터 벗어나 세 명의 자녀를 데리고 자상한 남자와 미네소타 주에서 히피와도 같은 생활을 했다. 결코 풍족하지는 않았지만 자신의 모든 사랑을 주었던 엄마였다. 하지만, 셰릴은 엄마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인해, 자신을 사랑하던 남편이 있음에도 마약과 외도를 일삼으며 남편과 자신을 속이는 피폐한 삶을 이어갔다. 결국, 남편과 자신을 위해 이혼을 택하고 자신을 찾기 위한 길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바로 PCT 여행이었다.


나는 변해야만 했다. ​
나는 변해야만 한다는 생각이 그 계획을 세우는 몇 개월 동안 나를 밀어붙이는 힘이 되었다.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신하겠다는 뜻이 아니라 내 예전 모습을 되찾겠다는 뜻이었다. 강한 의지와 책임감을 지닌, 눈이 맑고 의욕이 넘치고 윤리를 거스르지 않는 그냥 보통의 좋은 사람. PCT는 나를 그렇게 만들어줄 것이었다. 그곳을 걸으면서 나는 내 인생에 대해 전체적으로 다시 생각해 볼 참이었다. 내 인생을 이처럼 우스꽝스럽게 만들어버린 모든 것으로부터 아주 멀리 떨어진 채 내 의지와 힘을 다시 찾을 생각이었다. p.110


몇 개월 동안의 준비과정을 거쳐 셰릴은 스스로 일어설 수조차 없는 거대한 배낭을 짊어지고 멕시코 국경의 사막에서 출발해 캐나다까지 이어지는 9개의 산맥을 넘는다.

자신의 키보다 크고 엄청난 무게의 배낭을 메고 수십 킬로를 걸으면서도, 그녀는 잠자리에 들기 전에는 챙겨간 소설과 시를 읽는다. 그녀의 꿈은 작가였다.

중간에 만난 도보여행자로부터 짐을 덜고 여행을 계속할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하기도 하고, 등산화 한 짝을 절벽 아래로 떨어트려 절망감에 쌓여 테이프로 샌들을 동여맨 채 수십 킬로의 황무지 길을 걷기도 한다.

마실 물이 떨어질 때는 준비해 간 휴대용 정수기와 요오드 용액을 이용해 더러운 호수물을 정수시켜 끔찍한 갈증에서 벗어나기도 한다. 산길에서 수없이 마주치는 방울뱀과 곰, 여우, 사슴, 한밤중의 개구리떼에게 습격을 당하기도 하면서 상상하지도 못했던 자연과 부딪히지만 여행을 멈추지 않는다.

4285km의 여정 중에는 폭염과 비바람, 추위, 심지어는 폭설로 인한 빙하, 빙벽 등 자연과의 싸움이 있었고, 곰과 여우 등의 야생동물, 심지어 빅풋(사스콰치)에 대한 공포, 여자로서 혹시 모를 사고에 대한 두려움, 외로움, 침묵, 고독, 배고픔이 항상 그녀와 함께 였다.

텐트를 치고 바닥에서 잠을 자고, 단백질을 물에 풀어 밥을 해먹고, 배고픔을 참고, 혼자 어두운 숲속과 뜨거운 사막, 눈길을 거니는 것이 일상이었다.​

발톱이 빠지고 까지고 온통 물집으로 엉망이 된 두 발, 멍들고 굳은 살이 박힌 등과 어깨, 며칠 동안 땀을 흘리고도 씻지 못해 악취가 나는 몸 등등 현실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육체적인 고통과 뼈를 파고드는 외로움에도 셰실은 걷고 또 걷는다.


엄마의 죽음이 모든 것을 다 망쳐버렸다. 내 인생도 망쳐버렸다. 내 어린 시절의 교만이 절정에 달했을 때 엄마의 죽음이 나를 끝장냈다. 나는 어느새 강제로 훌쩍 어른이 되어버렸고 동시에 엄마의 잘못들을 모두 다 용서해야만 했다. p. 495


혼자 외롭게 걷는 깊은 숲과 흙먼지 길에서 셰실은 젊은 나이에 죽은 엄마에 대한 원망과 회한으로부터 어느새 자식들에 대한 깊은 사랑을 깨닫게 된다. 또한 폭력적인 아빠 때문에 힘들었던 어린 시절로부터 스스로 회복해 가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날 밤, PCT에서 어두워지는 대지를 바라보며 나는 이제 아버지때문에 놀라워할 필요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
이 세상에는 그보다 놀라운 일이 훨씬 더 많다.
그렇게 생각하자 내 안의 마음이 마치 강물처럼 열리는 것 같았다. p.436

다음 날 아침, PCT에 들어선 이후 처음으로 눈물을 흘렸다. 나는 울고 또 울었다. 행복해서 우는 게 아니었다. 그렇다고 슬퍼서 우는 것도 아니었다. 엄마나 아버지, 폴 때문도 아니었다. 내가 울었던 이유는 내 마음이 가득 채워졌기 때문이었다. PCT에서 보낸 힘들었던 50일과 그전에 살아왔던 9,760일이 드디어 내 마음을 채워준 것이다. p.437


6월 초에 시작한 여행이 끝날 무렵에는 가을로 접어들고 6개의 발톱이 빠지고 몸은 괴로운 상태였지만 자신이 계획한 컬럼비아 강 '신들의 다리'에 도달한다. 그리고 그녀는 인생의 비밀을 깨닫는다.

이제 나는 믿게 되었다. 더는 무언가를 잡으려 텅 빈 손을 물속에서 휘저을 필요가 없다는 것을. 단지 헤엄치는 물고기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을. 그리고 알게 되었다. 다른 모든 이의 인생처럼 나의 인생 역시 신비로우면서도 돌이킬 수 없이 고귀하다는 것을. 지금 이 순간, 내 곁에 있는 바로 이것.

인생이란 얼마나 예측 불허한가.
그러니 흘러가는 대로,
그대로 내버려 둘 수밖에.


책을 읽으면서 또는 영화를 보면서
참으로 놀라웠다.
3개월간 그것도 거대한 대륙 미국에서
여자 혼자 9개의 산맥을 넘고
사막을 건너고 폭설로 쌓인 산을 넘어
여행을 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이었다.

솔직히, 셰실 스트레이드는 운이
좋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그녀가 여행했던 90년대나 현재나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예측할 수 없는
위험과 사건, 사고가 잠복해 있는 세상.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자 혼자만의 여행을 감행했다는
사실이 경이롭고 존경스럽다.
책에서도 세실이 말했듯이,
산길에서 만난 모든 사람들이 그녀의 위험한 용기에 입을 딱 벌렸고 놀라움과 존경을 감추지 못했다.

결국, 외롭고 고통스럽고 길었던,
때로는 여행 중에 만난 사람들과의
즐거웠던 시간들을 통해
셰릴은 두려움과 고통, 고독을
넘어서 자신이 그토록 원했던 모습.
보통의 좋은 사람으로 회복되었다.

셰릴 스트레이드는 4년 후 남자친구와
PCT를 한 번 더 갔고, 결혼을 했고 두 아이를 낳았으며, 작가가 되었고 현재 팟캐스트를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https://m.blog.naver.com/winterlake21/2236294366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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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2 쿠데타와 나
장태완 지음, 이원복 엮음 / 이콘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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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서울의 봄>은 결말을 뻔히 알면서도 수직 상승하는 스트레스 수치가 느껴질 만큼 몰입감과 긴장감이 최고였던 영화였다.

영화 속 배우 정우성이 열연했던 이태신 수도경비사령관의 실제 모델인 故 장태완 장군의 회고록 <12.12 쿠데타와 나>가 절판되었다가 30년 만에 재출간되었다. 마침 출판사 문학동네에서 서평단을 모집하기에 신청을 했고 당첨되어 책을 읽어볼 수 있었다.



《12.12 쿠데타와 나》서평

장태완 장군의 증언을 토대로 한

영화 <서울의 봄>이 1979년 12·12

군사반란이 일어나기까지의 시차적 상황을

보여준 것이라면, 회고록<12.12 쿠데타와 나>는 12·12 군사반란 진압작전을 지휘하다가 실패한 장태완 장군의 군사반란의 진상 규명을 위한 증언, 군인으로서 자신의 삶, 군인정신, 그리고 가족들의 비극적인 삶을 써내려가고 있다.

"불충자 유구무언(不忠者 有口無言)의 속죄하는 마음으로 나는 지난 13년간의 세원을 침묵으로 일관해 왔다...... (중략)...... 12·12 군사반란을 진압해야 하는 정부 계엄군의 핵심적인 위치에서 진압 작전을 지휘하다가 실패하여 용서받을 수 없는 죄인이 된 장본인으로, 그 당시의 실증적인 증언을 국민 앞에 공개한다. 이것이 발생 원인과 진상을 규명하고 진압 실패의 원인과 교훈을 도출하는 데 일조가 되기를 바란다." p.5



영화 <서울의 봄>과 다른 12·12 쿠데타 결말​


영화 <서울의 봄>의 마지막 장면은 12·12 쿠데타를 진압하지 못한 이태신(정우성) 사령관이 분노와 울분을 참지 못해 군사 반란의 주범인 전두환과 그의 일당들이 막아놓은 가시장벽을 맨몸으로 뛰어들어 대항하는 것이었다.

이 장면은 영화의 극적인 효과를 위한 상징적인 표현으로 생각된다. 실제로는 노재현 국방장관의 병력을 철수하고 상황을 끝내라는 명령에 따라 장태완 사령관은 비통한 심정으로 지시에 복종한다. 따라서 장태완은 1979년 12월 13일 오전 3시부로 일체의 전투 행위와 사격을 중지시키고 모든 부대를 원상으로 복귀 조치한다.​​

"12·12 군사반란은 우발적인 사건이 아니다. 거듭 말했듯 오래전부터 정권 찬탈을 목적으로 하나회를 중심으로 한 일부 정치군인들의 주도하에 치밀하게 계획된 쿠데타였다." p.214


장태완 수경사령관과 가족의 비극​

영화 속 이태신(정우성) 사령관 역의 실존 인물인 장태완 수경경비사령관은 1931년생으로 1950년 6.25 동란이 터지자 19세의 학생 신분에서 전시 장교양성 기관이던 육군종합학교에서 단기교육을 받고 일명 '총알받이 소모 소위'라는 육군소위로 임관되어 생사를 넘나드는 전투를 수도 없이 겪는다.


그는 애국심이 뛰어나고 충직한 군인이기도 했지만 속 깊은 효자이기도 했다. 부모님이 전쟁터에 나간 아들로 인해 노심초사할 것을 염려해 일절 편지를 드리지 않고 연을 끊다시피 하는 군인 생활을 했다.​​

"여기서 휴전 직전까지 연일 치열한 전투를 치러야 했던 나는 언제 전사할지 몰라 일부러 자식에 대한 부모님의 정을 끊어놓기 위해 소대장으로 부임한 이후 일절 편지를 드리지 않았다. 내가 자주 편지를 드리면 이것을 유일한 낙으로 삼고 계실 부모님 앞에, 어느날 갑자기 아들의 전사통지서가 가면 어쩐단 말인가. 아들을 잃은 부모님의 충격은 곱절이 될 것이다." p.279

그 후 1979년 11월 16일 10.26 박정희 대통령 시해사건으로 인한 비상계엄 체제 시에 수도경비사령관 겸 수도계엄 사무소장의 중책을 맡게 된다. 하지만, 부임 24일 만에 박정희 대통령의 비호 아래 세력을 키워가던 전두환과 그의 사조직 '하나회' 및 세력 일당들이 12·12 군사반란을 일으키고, 장태완 사령관은 사력을 다해 저지하려고 하지만 치밀하게 계획된 쿠데타를 막지 못한다.

결국 13일 새벽에 장태완은 자신이 아끼던 직속 부하에게 체포되어 보안사 서빙고로 압송되고, 두 달 동안의 감금생활에서 끈질긴 수사를 받지만 충직하고 청렴한 군인이었던 그에게서 받아낼 수 있었던 죄목은 없었다. 결국 수사관이 불러주는 대로 강제 예편서를 작성하고 6.25부터 시작되어 천직으로 알고 살아온 30년간의 군생활을 떠나야 했다.

그 후 보안사 요원들이 한 집에 상주하며 장태완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가택연금 생활이 이어지던 중 부친상을 당하고 의문사로 외동아들을 잃는 가혹한 비극을 겪게 된다.

장군의 부친은 아들이 쿠데타 군에 체포, 감금된 사실을 알게 되자 "예부터 역모자들의 손에서 살아남을 수 없는 게 우리의 역사다. 내가 자식보다 먼저 떠나야 한다"라고 말하며 문을 걸어 잠근 채 식사를 거절하고 막걸리만 마시면서 세상과 접촉을 끊고 지내다 세상을 떠났다.

서울대 자연대학에 다니던 아들도 1982년 1월 집을 나선 지 약 한 달 만에 낙동강 산기슭에서 의문의 주검으로 발견된다. 그는 아들의 시신을 싣고 서울 집으로 올라오는 차 안에서 강추위에 얼어붙은 아들의 온몸을 뜨거운 눈물과 입으로 녹여준다. ​​

"나는 얼어붙은 아들의 얼굴에다 내 얼굴을 비비대면서 흐르는 눈물로 씻겨 주었고, 입으로는 아들의 눈부터 빨아 녹였다..... 아들의 눈 안에서 사탕만 한 모난 얼음조각들이 내 입안으로 들어왔다." p.304


아들의 죽음 이후로 가족들의 삶은 송두리째 바뀌고 아들의 묘지에서 눈물로 잠드는 세월을 보내면서도 하나뿐인 딸을 생각하며 고통스러운 삶을 참고 살아간다. 작은 용역회사의 사장 자리를 맡기도 하고 신앙생활을 하고 6·25 당시 생사고락을 함께 한 전우들의 유해들을 찾아 국립묘지에 안장하고 위령제를 올려주는 등 아들을 잃은 슬픔을 잊기 위한 삶을 살아간다.

동생을 잃은 슬픔에 우울증에 시달리며 자살을 시도하려던 딸이 다행히 결혼을 하고 두 명의 손녀도 얻는 기쁨을 얻기도 한다. 심근경색으로 수술을 하기 위해 미국에 사는 사촌의 도움을 받기도 하고 끈끈한 인척들의 따뜻한 보살핌과 위로 속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남은 생을 살아갈 것을 다짐하며 이 책을 마무리한다.



장태완 장군의 마지막 삶과 끝나지 않은 가족의 비극​

1993년 '12.12 쿠데타 진상조사위'에서는 공개 증인으로 직접 나섰다. 2000년에는 새천년민주당에 입당하여 정계에 입문하고 국회의원과 민주당 고문직을 맡기도 했다. 2004년 정계를 떠난 뒤 2008년 폐암으로 폐를 절제하는 대수술을 받았다. 2010년 79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는 쿠데타에 대한 이 책을 집필했다.

장태완 장군이 세상을 떠난 후에도 가족의 비극은 끝나지 않았다. 2012년 부인 이병호씨가 남편을 잃고 우울증을 앓다가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어린 시절에 12.12 쿠데타가 있었다.
불운했던 시대에 역사적 사실을 체감하지 못한 채 평범한 삶을 영위할 수 있었다는 사실에 비루한 감사를 느끼는 평범한 인간임을 실감했다.​

​국권을 장악했던 전두환과 그의 세력들은 역사적 심판을 받았고 진상규명과 단죄도 이루어졌지만, 12.12 쿠데타로 인해 평생 충직하고 청렴했던 한 군인과 그의 가족은 잔인하고 비통한 비극을 겪어야만 했다. 12·12 군사반란과 같은 비극적인 사태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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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의 속삭임 - 제24회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대상 보름달문고 93
하신하 지음, 안경미 그림 / 문학동네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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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아이도 훌쩍거리고 나도 읽었던
감동적인 동화책 《긴긴밤》은
제21회 문학동네 어린이문학상 대상 수상작이었다. ​

​​이번에 읽은 《우주의 속삭임》은
제24회 문학동네 어린이문학상 대상 작품이다.

책 제목과 표지 그림만 보더라도
장르가 SF일 것이라는
강한 추측이 되는 《우주의 속삭임》은
어린이 SF 동화책으로 다섯 편의
단편 동화가 실려있다.

이 다섯 편의 동화를 통해서
우리는 멀지 않은 미래의 지구 모습이
상상되고, 행성으로의 여행,
외계인과의 만남 그리고 이제는
어느 정도 구체화되고 상상되는
로봇이나 휴머노이드와 함께하는
미래의 생활, 더 나아가서 인간과 기계의 합체인 사이보그(지나 3.0)를 만날 수 있다.

- 반짝이는 별먼지
- 타보타의 아이들
- 달로 가는 길
- 들어오지 마시오
- 지나 3.0

결코 먼 미래의 상상 속 이야기가 아닌
곧 다가올 우리의 미래.
친근하게 따뜻하게 또는 우울하게
느껴질 수 있는 실현 가능한
우리의 미래 이야기들이다.

첫 번째 이야기 《반짝이는 별먼지》는
허름한 여행자 숙소 '별먼지'를 운영하고 있는 할머니와 아이에게 제로라는 외계인이 찾아오면서 시작된다.

​50년 전 갑자기 혼선된 라디오 방송에 엽서를 보냈다는 할머니. 제로는 할머니가 보낸 엽서가 당첨되어 우주 복권 선물을 전달하기 위해 할머니를 찾아왔던 것이다. 당첨된 복권으로 할머니는 오로타 행성으로 여행을 떠나는 첫 지구인이 되었다. ​​

p.28
50년 뒤에 지구에 우주선이 오고
우주 호텔이 생깁니다.
외계인을 만나고 싶어요.
환영합니다!

p.29
귀하의 믿음에 감사드립니다.
귀하는 오로타 행성을 방문하는 첫 지구인으로 당첨되셨습니다. 귀하는 원하셨던 우주 호텔을 갖게 될 것이며 더불어 오로타 행성에 올 수 있는 우주 항공권을 받게 되셨습니다.
방금 오로타의 우주선이 지구로 향하였습니다. 귀하를 만나 선물을 전해 드릴 날을 기다립니다.


우주를 믿었던 아이는 50년이 흘러
할머니가 되었고, 50년에 걸쳐 지구에 도착한 외계인으로부터 상품을 받은 할머니는 반짝이는 별먼지가 되어 오로타 행성으로 여행을 떠난다.

​할머니와 이별 후 홀로 남겨진 아이는
이제 외계인 제로와 함께 지구의 첫 우주 공항에서 새롭게 수리한 '우주 호텔 별먼지'의 주인이 되어 손님을 기다린다.

​할머니의 죽음이라고 할 수 있는 현실적인 문제를 우주여행과 외계인의 만남으로 결합시켜 신비로움과 기쁨, 슬픔을 동시에 느끼게 해주는 아름다운 동화이다.

두 번째 글인 《타보타의 아이들》은
인류가 세운 타보타 행성 탐사기지에
남겨진 인공지능 로봇 티티의 이야기다. 티티는 함께 온실 작업을 하던 홍박사가 붙여준 이름이다. ​​

p. 42
"이봐, 우리가 이름을 부르는 건 서로 잘 안다는 뜻이야. 더구나 별명이나 애칭을 부른다면 그건 친구라는 뜻이지. 이제부터 너를 티티라고 부를게."
그렇게 나, 로봇 TAT-129는 티티가 되었다.


티티는 어느날 폐쇄된 온실에서 촉촉한 이끼를 발견하고 이끼에게 '보보'란 이름을 붙여준다. 티티는 보보가 퍼져갈 수 있도록 자신의 몸까지 내어주고 생명체가 가득한 타보타 행성을 상상하며 서서히 녹슬어 간다.

​언어와 감정이 함께 프로그래밍 돼있는 인공지능 로봇 티티의 사랑과 희생은 눈물이 찔끔할 정도의 감동이 있다.​​

p.61
보보 힘내, 이게 우리가 사랑을 나누는 방식이야.


티티가 이끼를 키우기 위해 습도와 온도, 햇빛을 조절하며 살피는 모습에서 영화로 먼저 보고 소설로도 읽었던 《마션》이 떠올랐다. 홀로 화성에 남겨진 화학박사이자 식물학자인 마크 와트니가 오로지 생존을 위해 물을 만들어 내고 지구 작물인 감자를 키우며 생명력 성장에 기뻐하는 모습과 오버랩된다.

《달로 가는 길》에서는 자신이 인간인 줄 알고 살았던, 눈물까지 흘리는 12살 휴머노이드 진의 이야기가 실려있다.

하이브리드 생명 연장술로도 인간의 노화를 막을 수 없어 힘들고 기력이 쇠한 부모는 낡은 로봇이 된 진을 로봇 폐기물 처리 공장이 있는 달로 보내려 한다. 엄마, 아빠, 집과 지구를 사랑한 진의 달로 가는 마지막 여정이 슬프게 다가온다.

​이외에 《들어오지 마시오》와 《지나 3.0》까지 어린이 동화책이라고 하지만 성인이 읽어도 좋은 감동과 울림이 있는 《우주의 속삭임》을 아이들과 부모님이 함께 읽어도 좋을 책으로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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