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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골드 마음 세탁소
윤정은 지음 / 북로망스 / 2023년 3월
평점 :
품절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책 읽다가 운 적이 근래에 거의 없었는데 이 책이 나를 울려버렸다. 나만 감동받은 것은 아닌지 출간 두 달 만에 10만부를 돌파하였고 종합베스트 셀러 1위를 기록하였다. 국내 뿐만 아니라 영미권 외 여러 유럽지역에서도 어필이 되는지 펭귄랜덤하우스 UK에 10만 달러로 출간계약이 되었다고 한다. 몰랐는데 내가 달러구트 꿈백화점이나 불편한 편의점과 같이 판타지가 살짝 가미된 글을 좋아하는 거 같다. 개인적으로 그간 읽었던 힐링 판타지 책 중 가장 좋았다. 더불어 로맨스도 있다는 건 안 비밀.
특별한 마을에서 태어난 지은은 타인의 슬픔에 공감하고 치유하는 능력과 원하는 것을 실현시키는 능력을 갖고 있다. 하지만 능력을 가진지 얼마 안 되었던 때 자신의 능력을 잘 다루지 못해 가족을 잃었다. 가족을 다시 만나기 위해 어쩌다 보니 천년도 넘게 살아온 지은은 20대인지 40대인지 종잡을 수 없는 모습을 하고 있다. 그러다 엄마가 좋아하는 메리골드란 이름을 가진 동네에서 마음의 얼룩을 지워주고 다려주는 마음 세탁소를 차리게 된다. 이 세탁소를 거쳐간 사람들은 전보다 다들 행복해 보인다. 그렇다면 지은은 어떨까? 인상 깊었던 문장 남겨 보겠다.
P.116 지은이 건넨 옷을 입으며 인플루언서로 지냈던 모든 날의 기쁨과 슬픔이 얼룩으로 나타나길 빌었다. 너무 화려해서 외로웠던 날들. 하지만 그 안에 고정된 이미지로 자신을 가둔건 자기 자신이었음을 이제야 알 것 같다. 맞지 않는 신발을 오랫동안 신어서, 신발을 신으면 발이 아픈 게 당연한 줄 알았다.
P. 171 "저는 그냥 지금 이런 일상이 좋아요. 불행하다 느꼈던 상처를 지우고 싶던 순간이 물론 많았지만 그날들이 있었으니 오늘이 좋은 걸 알지 않겠어요. 불행을 지우고 싶지 않아요. 그 순간들이 있어야 오늘의 나도 있고, 재하도 있으니까요."
P. 210 삶의 마법을 풀고 싶다면 닫힌 문을 여는 용기를 내야 한다. 아무리 힘껏 밀고 열고 두드려도 문이 잠겨 있을 수도 있고, 문을 여는 열쇠를 잃어버릴 수도 있다. "어쩌면 열쇠는 자신의 주머니 속에 있는 게 아닐까."
P. 225 지나간 과거를 후회하느라, 살아갈 미래에 눈이 멀어 미처 오늘을 보지 못했다.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과거의 슬픔과 후회를 안고 살아가느라 그리 오랜시간을 다시 태어나며 살아왔어도 정작 오늘 행복한 적이 없었다. 아니, 행복할 거 같으면 겁이나서 도망쳤다. 행복하면 안 될 것 같았다. 하지만 사랑하는 엄마 아빠가 원하는 게 정말 지은이 과거에 얽매여 이토록 행복을 두려워하며 사는 것이었을까?
P.264 어쩌면 꿈꾸는 일을 현실로 만드는 능력은 굳이 마법을 쓰지 않아도 우리 모두의 삶에서 가능한 능력일지도 모른다. 삶을 원하는 대로 만들어가는 힘은 실수하고 얼룩지더라도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용기와 특권 같은게 아닐까. 그렇다면 이 마법은 선택받은 특별한 이에게만 허락된 것이 아니라 당신도 나도 가질 수 있는 능력이다.
메리골드 마음 세탁소에서 사람들은 마음의 얼룩을 지우고 더러는 조금 다리기만 하는 사람도 있었다. 어떤 서비스를 받았던 그들의 마음은 이전보다 가볍고 행복해졌음에는 분명했다. 하지만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지은은 정작 자신에게는 그렇게 해주질 못했다. 지은이 가족을 찾는 먼 미래에서 행복을 찾으려는 시도를 멈추고 자기 자신에게 차를 대접하고 지금 행복해지기로 결심한 순간, 지은도 행복해진다.
그런데 정말 지은만 천년을 산 걸까? 메리 골드 마음 세탁소와 연이 닿은 어디선가 본 듯한 사람들 또한 기억하지 못할 뿐 천년 아니 그 이상을 산 것은 아닐까 하는 추측을 해본다. 더불어 지은의 공감하고 치유하는 능력과, 원하는 것을 실현하는 능력 또한 우리 모두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사실 우리는 모두 마법사일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