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 5 | 6 | 7 | 8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냉소자의 달콤한 상상 - 뒤집어야 비로소 보이는 답답한 세상의 속살
홍석준 지음 / 바이북스 / 2023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을 읽고 얼마 되지 않아 알아버렸다. 내가 작가님이랑 비슷한 인간이라는 것을. 작년에 무슨 책을 쓸까 하고 고민하던 때 세상이 정석대로 말하는 걸 다 뒤집어 버리는 글을 쓰고 싶다는 말을 했는데 별로 먹혀들지 않았다. 그래서 지지리 궁상 떠는 글을 여전히 다듬고 있는데 내가 생각만 하던 것을 작가님은 현실의 결과물로 구현해버리셨다. 현실에 있지 않은 상황을 상상력을 끌어와서 전개하는데 내용이 상당히 흥미롭다.⠀




누군가는 세상 사람들 다 당연하다고 하는 얘기를 왜 그렇게 삐딱하게 받아들이느냐고 불편하다며 탐탁치 않게 보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모두가 예스라고 할 때 그꺼이 노!라고 말하는 프로불편러는 얼마나 명예로운 존재인가.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는 현실을 뒤집어봤을 때 우리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할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식판밥을 좋아하며 정해진대로 살던 작가님이 퇴사와 동시에 식판을 엎어버리셨다. 그럼 인상 깊었던 문장을 남겨보겠다.⠀




P.60 급기야 이곳에서조차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에 도달한다. 언제나 그래 온 것처럼. 상황이 닥치면 부대끼길 거부해 왔다. 결정할 용기가 부족했고 마주할 진실은 겁이 났다. 피하길 거듭했다. 할 수 있을 때까지 계속. 대학은 최후의 보루로 삼았던 도피처였다.⠀

현실과 달리 이 책의 등장인물은 도대체 대학을 왜 나왔냐는 질문을 받는다. 현실에서는 오히려 대학을 안 가면 왜 대학을 안 가냐는 말을 들을 텐데 말이다. 그리고 그 시간에 다른 생산적인 일을 하는게 더 낫지 않냐는 질책까지 받는다. 상황은 현실과 다르지만 대학을 택한 이유는 대다수의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책에서의 상황은 이처럼 현실과 딴판이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지극히 실제적인 속내를 파고든다.⠀




P. 72 기피 직업군이 생겼다. 바로 '사'자 직업. 세상 오래 살고 볼 일이다. 예전엔 집안에 '사'자 하나 있어야 가문이 일어선다고 난리였는데. 이젠 다들 괴로워한다. 무엇보다도 사전 준비 기간이 길다. 일을 하기 전에 일정 수준의 점검을 통과하지 못하면 일을 시작할 수 없다. 말 그대로 실업자가 된다. ...(중략)... 대우가 똑같아진 '사'자는 누구도 원하지 않는 괴로운 타이틀이 되었다.⠀




P. 183 세상엔 모두에게 맞는 절대의 선은 없어요. 놀라는 당신 반응을 보니 누군가 운동을 이렇게까지 지독히 싫어할 줄은 몰랐죠? 건강을 포기하면서까지요. 그게 사람이에요. 다 똑같지 않다고요. 좋은 걸 알아도 싫을 수 있어요.⠀




P. 205 관계를 유지하지 않고 필요할 때만 돈으로 구입하는 경향은 점점 뚜렷해지고 있어요. 따져보면 어떤 게 더 가성비가 나은지 쉽게 알 수 있죠. 먼저 관계를 형성하면서 얻을 수 있는 장점은 꽤 많아요. ...(중략)... 하지만 이를 위해선 상당한 수고가 들어갑니다.⠀

이 글에서는 관계의 수고를 덜기 위해 체험형 관계를 판매하는 상황을 가정한다. 관계는 힘이 들어간다. 막상 들쳐보면 팔할이 뭐야, 수없이 꽝으로 밝혀진다. 나랑 안 맞는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그런 이유로 체험형 관계가 잘 팔릴 것이라는 추측으로 마무리된다.




P. 222 워낙 빠르게 오르고 내리는 소유물에 집착하느라, 그동안 나 자신은 우선순위에 없었다. 눈에 띄지않는 대상에 눈길을 줄 여유 따윈 사치였으니. 모든 게 멈춘 지금 유일하게 자랄 수 있는 가치는 내면의 나 뿐이었다. 숫자가 인생을 결정짓던 세상이 끝나고 나서야 비로소 마주한 자신이었다.⠀




책은 읽는 내내 흥미로웠고 재미있었다. 가끔은 들여다 보고 싶지 않았던 나의 치부를 들켜버리는 느낌마저 들었다. 허구를 차용했지만 어떤 면에서는 굉장히 진실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작가님의 소설도 보고 싶어졌다. 그리고 이 에세이에서 발생하는 저작 수익은 전액 기부를 하신다고 한다. 책장을 여는 순간 새롭고 참신하다 못해 발칙한(?) 글을 보게 될 수 있을 것이다.




* 이 글은 홍석준작가님의 서평제안을 수락한 후 책을 받고 작성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허술하면 좀 어때 - 이런 나인 채로, 일단은 고!
띠로리 지음 / 푸른숲 / 2023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은 띠로리소프트라는 굿즈 숍을 운영하는 작가님의 에세이이다. 좋아하는 인형을 잔뜩 만들며 돈도 벌고 있으니 이를 덕업일치라 하는 건가. 나도 하고 싶다. 덕업일치란 거 말이다.




작가님이 만드는 인형은 바비인형같이 아름다운 비율을 자랑하지도 치밀한 것과도 다소 거리가 있어 조금 허술해보이지만 포근하고 귀여운 맛이 있다. 별 기대없이 그저 소소하고 귀여운 글을 예상했는데 작가님이 생각보다 글을 잘 쓰신다. 그리고 조금은 느슨한 시선으로 세상을 보는 모습을 들여다 보는 재미가 있다. 그럼 인상 깊었던 부분 남겨 보겠다.




P. 51 '어딘가 못하는 부분이 있어야 인간미도 있고 좋죠'같은 말을 하려는 게 아니다. 괴짜처럼 보일까 봐 굳이 말하지 않지만, 나는 내 그런 서투른 부분들과 그로 인한 실수들이 재미있다. 그래서 그냥 둔다.

이거 은근 기존쎄 멘트. 자신의 취약함을 드러내는 것만큼 강인한 것이 있을까. 더 나아가 재밌어서 내버려둔다니. 하긴, 애초에 덕업일치를 한다는 거 자체가 어찌보면 니들이 뭐라고 떠들든 나는 나 좋을대로 산다라는 마인드 아닌가.




P.80 내가 만드는 인형들이 주로 하찮고 힘없는 인상을 주기에 못 믿는 분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인형들을 자세히 보면, 기본적인 구조는 아주 확실한 모양이라는 걸 알 수 있을 것이다. ...(중략)... 다만, 허술한 인상은 못생기고 웃긴 표정에서 나온다. 단지 그 표정을 만들기 위해 그 모든 과정을 견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P. 143 보통은 사람들이 따뜻하거나 다정하다고 느껴지는 행동을 하면, 그저 머뭇거리다가 '당신은 정말로 착한 사람 같다'고 해버린다. 그렇게 말하면 사람들은 당황한다. '착하다'라는 말은 어떨 때는 '바보처럼 착해 빠졌다'라는 의미로 미끄러지니까.




P.192 인정하기로 했다. 민들레 홀씨가 장미나 튤립이 될 수는 없지 않은가. ...(중략)... 나의 어설픔은 늘 언젠가는 탄로가 난다. 그러니 '언제쯤 들킬까?' 전전긍긍하지 않고 바로 체면을 벗어던지는 게 편하다.




P. 231 혼자 기대를 했다가 실망하는 일은 어리숙하던 시절에 끝낸 지 오래였다. 사람들과 무언가를 약속할 때, 팔 할은 안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건 오랜 세월 체득한 방어기제와도 같았다. 나를 상처 입지 않게 도와주는 '어른다운'방법이기도 했다.

안 될 거라고 예상해도 실망하지 않기 위해 기대를 하지 않으려고 해도 나는 그게 잘 안 되던데. 상처야 덜 입겠지만 나는 마음껏 기대하고 마음껏 실망하는 내가 좋다. 세상일은 내 맘처럼 되지 않지만 내 맘처럼 되지 않기에 내 생각보다 훨씬 더 좋은 일도 생기는 거 아닌가. 뭐 나는 그렇다고, 아님 말고.




책을 읽고 난 나의 감상은 작가님이 왠지 조용한 별종같다는 느낌. 나쁜 의미 아니고 좋은 의미다. 받아들이는 사람의 느낌은 의도한 바와 다를 수 있겠지만 말이다. 책을 읽다보면 작가님의 독특하면서 잔잔한 글에 스며들 것이다. 삽화와 인형도 마찬가지다. 작가님의 인형을 닮아 허술해보이지만 막상 열어보면 그 중심에 나름의 단단함이 느껴지는 글이 읽는 재미를 준다.




* 이 글은 서평단당첨 후 푸른숲출판사에서 책을 받고 작성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메타버스 유토피아 - 누구나 돈을 버는 디지털 세계의 탄생
마크 반 리메남 지음, 김혜린.이주현 옮김 / 21세기북스 / 2023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메타버스에 ㅁ자도 모르는데 누구나 돈을 벌 수 있는 메타버스라고 해서 혹했다. 사실 어플도 잘 안 까는 디지털 미개인인데 메타버스 좀 부담스럽다만 메타버스는 잘 모르는 내가 봐도 곧 우리생활에서 제법 중요해질 거 같다. 메타버스라는 세상은 실로 놀라웠다. 작년에 봤던 #용과주근깨공주 에서 나온 것처럼 전세계 도처에 수백만 관객을 대상으로 공연을 할 수도 있고, 옷을 가상으로 입어봐서 어울리는지 아닌지 알아볼 수도 있고, 역사 공부를 마치 그 시대에서 살아본 것 같이 할 수도 있었다. 이쯤 되니 메타버스라는 가상현실이 순간이동을 가장 현실적으로 구현한 형태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빛이 강한만큼 어두운 부분도 있었다. 그럼 읽으면서 인상깊었던 부분 남겨보겠다.

P. 37 게다가 빅테크 기업은 스스로에 대한 불신을 조장하고 있다. 2021년에 저커버그가 메타를 공개한 직후, 호주의 예술가인 테아 마이 바우만은 자신의 인스타그램 ID가 완전히 삭제된 것을 발견했다. 그녀의 인스타그램 ID가 'metaverse(메타버스)'였기 때문이다. 그녀가 10년 동안 작업해왔던 것이 순식간에 사라졌고 계정을 복구할 방법이 없었다.

뭐 이쯤 되면 독재가 따로 없다. 책에서는 줄곧 중앙화된 웹2.0을 비판한다. 메타버스는 탈중앙화된 웹3.0을 지향하며, 빅테크 기업의 통제와 영향력을 제한하고자 한다. 그리고 개인이 온라인 신원과 데이터를 제어할 수 있다고 한다. 최소 연령 요구하는 메타버스 컴뮤니티 입장 시 자신의 나이를 공개하지 않고도 해당 연령 이상임을 증명할 수 있다.

P. 117 범죄자들이 유명인의 가짜 소셜 미디어 프로필을 만들어 사기를 치듯이 메타버스에서도 유명인으로 가장하여 사기 범죄를 저지르기가 너무 쉬워진다. 내가 나의 디지털 복사본을 만들 수 있다면 누구라도 나의 디지털 복사본을 만들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딥페이크 음성을 사용하면 디지털 세계에서 누구라도 사칭할 수 있다.

P.136~137 메타버스에서는 누구나 원하는 모습으로 원하는 장소에 갈 수 있다. 가상 세계와 현실 세계 양쪽이 모두 즐거워진다. 상상해보라.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진 곳에 사는 친구와 현실 세계에서 만나는데, 액체금속으로 된 특이한 가상 드레스를 입은 친구를 거실에 앉아 증강현실 안경을 쓰고 호로그램으로 투영된 디지털 트윈으로 만나는 것이다.

P. 169~170 가상현실을 통해 고대 로마를 체험하게 하고, 그룹 토의를 결합하여 가상현실 속에서 수업을 진행하는 역사 선생님을 상상해보라. 학생들은 가상 환경으로 들어가 선생님이나 반 친구들과 상호작용하며, 원하는 장면이나 세션에서 일시 중지하거나 그 부분을 반복재생할 수 있다.

P. 240 200만 명쯤 되는 프로 창작자들이 10만달러에 가까운 수입을 올리는 반면, 대부분의 창작자는 생계를 꾸려나가는 것조차 어려운 실정이다. 이는 부분적으로 중앙집중식 플랫폼이 가져가는 높은 수수료 때문이다. ...(중략)... 개방형 메타버스에서는 사정이 달라져 콘텐츠를 만든 사람이 수익의 25~75퍼센트나 빼앗길 필요가 없어진다.

플랫폼이 가져갔던 수익의 많은 부분이 창작자에게 투명하게 전달된다는 점에서 메타버스는 분명 기회이다. 메타버스로 강의를 들으면 학습효과도 더 좋을 것이며 학원비도 절약될 거 같고 못 입어보고 눈으로만 사서 잔뜩 반품할 일도 없어보인다. 다만, 사이버 성추행, 각종 사기, NFT 구동에 따른 전력문제 등이 예상되지만 빠른 속도로 확장되고 있는 메타버스를 피할 길은 없어 보인다. 그리고 메타버스에서 중요시 되는 가치는 창의력과 진실성이라고 한다. 새로운 흐름에 뒤쳐지지 않고 메타버스에 대해 알아볼 수 있는 책.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메리골드 마음 세탁소
윤정은 지음 / 북로망스 / 2023년 3월
평점 :
품절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책 읽다가 운 적이 근래에 거의 없었는데 이 책이 나를 울려버렸다. 나만 감동받은 것은 아닌지 출간 두 달 만에 10만부를 돌파하였고 종합베스트 셀러 1위를 기록하였다. 국내 뿐만 아니라 영미권 외 여러 유럽지역에서도 어필이 되는지 펭귄랜덤하우스 UK에 10만 달러로 출간계약이 되었다고 한다. 몰랐는데 내가 달러구트 꿈백화점이나 불편한 편의점과 같이 판타지가 살짝 가미된 글을 좋아하는 거 같다. 개인적으로 그간 읽었던 힐링 판타지 책 중 가장 좋았다. 더불어 로맨스도 있다는 건 안 비밀.

특별한 마을에서 태어난 지은은 타인의 슬픔에 공감하고 치유하는 능력과 원하는 것을 실현시키는 능력을 갖고 있다. 하지만 능력을 가진지 얼마 안 되었던 때 자신의 능력을 잘 다루지 못해 가족을 잃었다. 가족을 다시 만나기 위해 어쩌다 보니 천년도 넘게 살아온 지은은 20대인지 40대인지 종잡을 수 없는 모습을 하고 있다. 그러다 엄마가 좋아하는 메리골드란 이름을 가진 동네에서 마음의 얼룩을 지워주고 다려주는 마음 세탁소를 차리게 된다. 이 세탁소를 거쳐간 사람들은 전보다 다들 행복해 보인다. 그렇다면 지은은 어떨까? 인상 깊었던 문장 남겨 보겠다.

P.116 지은이 건넨 옷을 입으며 인플루언서로 지냈던 모든 날의 기쁨과 슬픔이 얼룩으로 나타나길 빌었다. 너무 화려해서 외로웠던 날들. 하지만 그 안에 고정된 이미지로 자신을 가둔건 자기 자신이었음을 이제야 알 것 같다. 맞지 않는 신발을 오랫동안 신어서, 신발을 신으면 발이 아픈 게 당연한 줄 알았다.

P. 171 "저는 그냥 지금 이런 일상이 좋아요. 불행하다 느꼈던 상처를 지우고 싶던 순간이 물론 많았지만 그날들이 있었으니 오늘이 좋은 걸 알지 않겠어요. 불행을 지우고 싶지 않아요. 그 순간들이 있어야 오늘의 나도 있고, 재하도 있으니까요."

P. 210 삶의 마법을 풀고 싶다면 닫힌 문을 여는 용기를 내야 한다. 아무리 힘껏 밀고 열고 두드려도 문이 잠겨 있을 수도 있고, 문을 여는 열쇠를 잃어버릴 수도 있다. "어쩌면 열쇠는 자신의 주머니 속에 있는 게 아닐까."

P. 225 지나간 과거를 후회하느라, 살아갈 미래에 눈이 멀어 미처 오늘을 보지 못했다.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과거의 슬픔과 후회를 안고 살아가느라 그리 오랜시간을 다시 태어나며 살아왔어도 정작 오늘 행복한 적이 없었다. 아니, 행복할 거 같으면 겁이나서 도망쳤다. 행복하면 안 될 것 같았다. 하지만 사랑하는 엄마 아빠가 원하는 게 정말 지은이 과거에 얽매여 이토록 행복을 두려워하며 사는 것이었을까?

P.264 어쩌면 꿈꾸는 일을 현실로 만드는 능력은 굳이 마법을 쓰지 않아도 우리 모두의 삶에서 가능한 능력일지도 모른다. 삶을 원하는 대로 만들어가는 힘은 실수하고 얼룩지더라도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용기와 특권 같은게 아닐까. 그렇다면 이 마법은 선택받은 특별한 이에게만 허락된 것이 아니라 당신도 나도 가질 수 있는 능력이다.

메리골드 마음 세탁소에서 사람들은 마음의 얼룩을 지우고 더러는 조금 다리기만 하는 사람도 있었다. 어떤 서비스를 받았던 그들의 마음은 이전보다 가볍고 행복해졌음에는 분명했다. 하지만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지은은 정작 자신에게는 그렇게 해주질 못했다. 지은이 가족을 찾는 먼 미래에서 행복을 찾으려는 시도를 멈추고 자기 자신에게 차를 대접하고 지금 행복해지기로 결심한 순간, 지은도 행복해진다.

그런데 정말 지은만 천년을 산 걸까? 메리 골드 마음 세탁소와 연이 닿은 어디선가 본 듯한 사람들 또한 기억하지 못할 뿐 천년 아니 그 이상을 산 것은 아닐까 하는 추측을 해본다. 더불어 지은의 공감하고 치유하는 능력과, 원하는 것을 실현하는 능력 또한 우리 모두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사실 우리는 모두 마법사일지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방전 없음 - '새로운 건강'을 찾아나선 어느 청년의사의 인생실험
홍종원 지음 / 잠비 / 2023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은 조금 특별한 의사의 이야기를 담았다. 병원에 찾아온 환자들을 진료하는 의사가 아니라 아픈 환자들이 사는 곳을 방문해서 치료하는 청년 의사의 이야기이다. 원래부터 의사가 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공학기술에 더 관심이 많았다. 하지만 합격한 곳은 의학대학 한 군데였고 수능 공부를 더 하고 싶지 않았던 저자는 의대에 진학한다. 진학한 의과대학 동아리에서 방문의료 봉사활동을 한 것이 지금의 방문진료 전문의원 '건강의집'을 운영하게 되는데 영향을 준 거 같다.

의대졸업 후에는 작은 지하방을 얻어 아무 조건 없이 여러 청년들과 함께 살게 된다. 이때 얻은 집의 이름도 '건강의집'으로 방문진료 의원과 이름이 같다. 굳이 따지면 이 셰어하우스 형태의 '건강의집'이 더 먼저다. 주민들과 어울려 문화예술활동 등을 하면서 '호의'와 '연대'의 중요성을 깨닫는다. 얼마 전에 읽었던 경제적 이유와 적당히 외로움을 해소하기 위한 느슨한 연대의 셰어하우스를 주장하는 일본인 니트족의 글은 나에게 별로 설득력이 없었지만 이번에는 조금 달랐다. 나쁘지 않은 거 같았다. 함께 사는 사람들의 삶이 건강해지고 있었다. 그럼 인상 깊었던 글 남겨 보겠다.

P. 94~95 "왜 우울증의 원인을 개인에게서 찾을까. 오히려 자기를 알아야 한다는 강박 속에서 자신을 몰아치도록 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우울 증상을 유발한 건 아닐까?"라고 묻고 또 위로하고 싶었다.

P. 135 죽음의 '질'은 산 사람에게나 의미가 있을 뿐이다. 그래서일까. 나는 고독사보다는 고독생이 더 슬프다. 바이러스로 인한 위기도 무섭지만, 그로 인해 서로를 돌보지 않고 누군가의 외로움 속에서 서서히 잊히는 것이 더 끔찍하다.

P. 147 청년들이 스펙 쌓기에 열중하는 것도, 자신을 조금이라도 좋은 상품으로 만들고 싶어서다. 그것이 꿈을 찾아가는 과정이라는 건 기성세대가 만들어낸 그럴싸한 포장 아닐까 ...(중략)... 지금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건 이런 물음이 아닐까. 우리가 어떻게 함께 살아갈 수 있을지, 왜 사회적 약자를 도와야 하는지, 강자와 약자의 격차가 벌어지지 않도록 할 수는 없는지, 약자가 되지 않기 위해 경쟁하지 않고 어느 누구도 약자가 되지 않도록 서로 도울 수는 없을지.

P. 225 꼭 혈연이나 혼인을 통해 연결되는 관계가 아니더라도, 바로 곁에서 돌보는 이는 인간 생존에 필수적이다. 돌봄은 존재의 증거 그 자체이며, 한 인간의 역사는 돌봄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닌 듯하다. 그러고 보면 '저출산, 고령화 위기'란 진단은 틀렸다. 정확한 진단은 '돌봄의 위기'다.

P. 285 계속해서 아픈 이들을 만날 작정이다. 건강을 강요하지도, 약을 강요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저 그들과 함께 하면서 마음이 시키는 소리대로 살아갈 것이다. 그렇게 아픈 이들과 소통하다 보면, 언젠가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 작은 실마리를 찾아낼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남다른 행보를 걷는 의사답게 생각도 참 많은 거 같다. 이미 충분히 멋진 삶을 살아가고 있는데 본인만 모르고 있는 거 같다는 느낌도 든다. 자신의 이익을 챙기기보다는 타인의 아픔을 생각하고 사람들과 연대하여 건강하게 살고 싶은 선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데 말이다. 더불어 방문진료로 찾아가는 환자들은 대부분 취약계층이다. 대부분 다가가기만 해도 눈살부터 찌뿌릴 것이다. 그런데 오히려 찾아가고 있다. 자신이 어쩔 수 없는 한계를 종종 마주하면서도 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을 찾으며 말이다. 왠지 무한응원하고 싶어지는 의사선생님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 5 | 6 | 7 | 8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