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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은 내일의 해가 뜨겠지만 오늘 밤은 어떡하나요
연정 지음 / 발코니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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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일에 치여 가장 힘든 시기에 고향에 갔다가 운명처럼 이 책과 마주했다. 귀엽고 아름다운 소품이 가득한 곳에 이 책들이 잘 포장되어 빛나고 있어서 견본 책을 한번 들춰보고 바로 데려왔다. 당장 읽으려고 책상 위 가장 잘 보이는 곳에 고이 놔두었지만, 도저히 시간이 나지 않아 겨우 시간이 났을 때 이 책을 읽었다. 당황스럽게도 읽는 내내 눈물이 멈추지 않아서 냅킨으로 사람들 몰래 눈물을 닦았다. 나는 다시 할 걸 해야 하니까 급하게 책을 접어 가방에 넣었다. 나머지는 집에 가서 마저 읽으며 마음껏 울었다. 어쩌면 나는 울 핑계가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이 책은 빛 좋은 개살구 같은 말은 하지 않는다. 오로지 연정 님의 다짐과 결심, 마음으로 쓰인 글이다. 어떤 글은 너무 처지가 같아서 슬픈 웃음을 짓게 되고, 어떤 글은 닿지 못할 손을 책에 올리며 위로하고 싶어진다. 우연히 만난 사람이 나와 같은 높이의 돌계단에 주저앉아 서로 넋두리를 하며 위로받는 기분이다. 내가 힘이 든 건 맞는지, 뭐가 대체 이렇게 체기만 돌고 답답하기만 한지 의문이 쌓여갈 때, 내 상태를 다시 한번 짚어준 책이다.

연정 님의 첫 책은 내가 처음으로 사랑하게 된 사람에게 선물했다. 나는 그전보다 단단해진 마음으로 이 책을 다시 읽었다. 이 책도 그 전보다 더 두껍고 단단해져 돌아왔다. 난 이제 이 책을 보면서 웃음을 짓지, 울지 않는다.

책을 다 읽고 작가님께 편지를 써야지 다짐했는데, 이렇게 뒤늦게나마 마음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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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의 기쁨과 슬픔 - 장류진 소설집
장류진 지음 / 창비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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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펼치고 몇 줄 읽자마자 펼쳐지는 풍경은 마치 외국 회사에 일하는 것 같다. 아침 조회 대신 스크럼을 하고, 서로 외국 이름을 부르는 실리콘밸리를 연상시키는, 그러나 이 소설의 배경은 판교 테크노밸리다. 이 책의 주인공인 안나의 삶을 보고 있자면, 스타트업 기업에서나 할 법 한 업무 시스템 속에 웃지 못할 헤프닝, 어느 회사든 업무의 고충보다 괴로운 직원간의 신경전이 보인다. 그 모든 것이 숨 쉬고 있는 작은 서열 사회는 멀리서 보면 참 웃기지만, 당하는 이들을 눈물짓게 한다.

  창비로 등단한 장류진 소설가의 첫 소설이다. 짧은 서사만으로도 흡입력 있게 이끌어가는 그의 문체는 읽는 이로 하여금 한편의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개인적으로 소설은 끊지기 않고 문장이 매끄럽게 흘러가는 것을 좋아하는데, 이 책이라면 한번도 끊지 않고 그 자리에서 다 읽을 수 있을 것만 같다. 가제본이 아닌 본제본을 구매하고 싶게 하는 이 책을, 요즘 무겁지 않고 편하게 읽을 만한 소설이 없을까라는 생각이 들 때 읽어보는 것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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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기 캐리어가 아닙니다 - 열 받아서 매일매일 써내려간 임신일기
송해나 지음, 이사림 그림 / 문예출판사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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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을 한 번에 잃었다. 사형 선고나 다름없다는 게 마냥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내 행복의 요소들이 사형당했으니까.

이 세 문장으로 이 책을 소개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문장이 가장 기억에 남았던 이유는 같은 여자인 나 조차도 임신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고 살아가는 이 사회에서, 악착같이 살아남은 동지에 대한 안타까움 때문일 것 이다. 힘든 것을 힘들다 하지 못하고, 시작 전에 그 누구도 제대로 설명해 주지 않았던 사실들을 한 번에 마주한 채, 모든 것을 책임지고 견뎌야만 하는 (여성이기 이전에) 한 인격체로서의 삶은 그 어디에서도 존중받지 못했다.

  나는 이 책이 발간되기 전부터 임신일기 계정을 통해 간간히 그의 소식을 들었던 사람이다. 그 작은 화면 속에서 들리는 여러 외침들은 거의 지옥에 가까웠다. 사회는 국가에 인구가 줄어드는 것은 결혼을 하지 않는 여자와 임신을 하지 않는 여자의 탓이라며 저출산이라는 단어를 꺼내들었고, 그다지 실효성 없는 정책을 회유책이라며 카드 짝처럼 보란 듯이 흔들더니, ‘대한민국출산지도’(가임이 가능한 여성(20~44)을 지역별로 구체적 수치로 표기한 지도)라는 노골적 조사 지표를 들먹이며 가임여성이 이렇게나 많은데 왜 출산이 안 되냐고 따지고 들었다. 국가에게 여성은 가임이 가능한 아이를 재생산 할 수 있는 도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들에게 임신은 선택이 아닌 국민의 의무였고, 때문에 회유책으로 사용한 정책 역시 탁상공론에 지나지 않았다. 정작 필요한 것은 임신이 어느 정도의 신체적 리스크를 가지고 있고, 사회적으로 도움이 되는 제도는 무엇이 있는지, 회사에서 정확하게 어떤 현실을 마주하게 되는지, 아이를 낳은 후의 몸의 변화는 어떠하며, 어떻게 관리해야하는지, 이런 가장 중요한 임산부로서의 정보인데도, 그렇게 무섭게 현실적이고 고통스러운 이야기는 은폐했다. 그것은 겪지 못해 잘 알지 못하거나, 겪을 일이 없거나, 당연하게 여겨야 했던 사회분위기 속에 당연하게 감내했던 자들의 무지라고 생각한다.

  사회는 외면해도 사람은 외면하면 안 되는 것이지 않나. 무지한 환경에서 자란 사람들은 여전히 본인의 무지를 알지조차 못했다. 그 속엔 내가 포함되어있었고, 우리가 포함되어 있었다. 그나마 자각이라도 하고 배려라도 하려고 눈을 굴리는 사람과는 달리 일부러 보란 듯이 임산부 배려 좌석에 다리를 벌려 앉는 인간들을 나는 너무 많이 보았고, 속으로 욕을 하며 지하철 번호로 문자를 보냈지만, 임산부 배려석에서 자리를 비켜달라는 고정 안내멘트만 몇 번 더 나올 뿐, 놀랄 만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한번은 버스에서 임산부에게 자리를 비켜주려고 앉으시라고 했더니 경기를 일으키듯이 괜찮다며 손사래를 치셔서 몇 번 권하다가 그냥 그 자리를 비워놓고 일어선 기억도 있다. 당연히 앉지 말았어야 할 사람은 자각을 하지 못했고, 당연히 앉아서 가야 할 사람은 이런 배려가 익숙치 못했다.

  낯선 사람이 아무렇지 않게 임산부의 배를 쓰다듬으며 몇 개월이냐고 묻는 것도 보았고, 임신한 채로 아기를 업고 있는 여성에게 자리는 비켜주지 않으면서 아이만 달라고, 자기가 데리고 있겠다는 사람도 보았다. 그들은 자신이 대체 얼마나 대단한 존재라고 생각하기에 남의 권리는 빼앗을 수 있고, 상대방이 원치도 않는 관심과 배려라는 말로 위장한 무례를 범하고 있는가? 그들은 그저 불편하고 무례하기 짝이 없는 대중에 불과하다는 것을 인식도 못하는 그들의 무지에 수십 수백번을 고개를 저었다.

  무지하다는 것을 모르는 것 자체는 죄가 아니지만, 그것으로 인해 누군가가 피해를 입는다는 것을 모른다면 그것은 죄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임신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던 사람이라면, 임신에 대해 알고 싶은 사람이라면, 임신을 준비할 사람이라면, 여성이 왜 이렇게 임신에 대해 예민하게 받아 들이냐고 물었던 사람이라면, 그 누군가에게 임신 이야기를 쉽게 꺼내놓고 입방아를 찧었던 사람이라면, 단 한 사람의 이야기에 공감하는 수십 수백명의 이야기를 보라. 겪어서, 겪지 않아서 쉽게 이야기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당사자가 아니기 때문에 듣고 위로해주어야 하는 이야기라는 것을 알 때까지, 많은 사람이 이 책을 읽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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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 (미니북)
알베르 카뮈 지음, 김민준 옮김 / 자화상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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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방인 >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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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람은 타인을 어떠한 기준에서 판단하는가. 이 소설에 나오는 사람들은 크게 세 가지 기준에서 타인을 바라본다. 개인적 경험에 따른 판단, 자신이 맡은 역할에서의 판단, 그리고 사회적 통념에 따른 판단. 세 기준 중 어떠한 기준이 맞다고, 혹은 틀리다고 말할 순 없다. 하지만 그러한 기준들이 절대적일 순 없다는 것은 이 책을 예시로 들어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뫼르소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 덤덤한 인간이다.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도, 애인과의 대화 속에서도, 거친 행동을 하는 이웃 주민과의 대화 속에서도, 자신을 평가하는 수많은 사람 속에서도 그는 일정한 본연의 온도를 유지할 뿐, 감정에서 큰 변화는 없다. 그의 속마음도 무던한 편이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그의 모습은 더욱 평온하다. 격한 감정의 표현도 없고, 남을 심하게 싫어하지도 않는다.
2) 사람들은 그런 그를 여러 갈래로 판단한다. 어머니에게 무심했던 아들, 어머님이 돌아가셔서 안타까운 사람, 남들의 평가에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을 받아들여 주는 사람,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 그냥 성격이 무난한 이웃 주민 등 자신이 살아오면서 이런 행동을 하고,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라면 그런 사람이겠거니 하는 개인적 경험에서 판단한 뫼르소의 모습이었다. 그들은 속으로 뫼르소라는 사람이 마음에 들지 않았을지라도, 그가 특별하게 모난 행동을 했다든지, 남에게 피해를 주는 행동은 하지 않았기 때문에 큰 악의를 가지고 그를 판단하진 않았다. 물론 이러한 판단은 살인사건을 계기로 달라진다. 사건을 계기로 재판을 받게 된 뫼르소를 대하는 사람들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자신이 괜찮게 생각했던 지인이거나 사랑하고 있는 그의 연인은 그를 무조건 도우려고 했다. 그가 어떠한 것을 의도했든 그것은 중요치 않고, 당장 있을 재판에서 나쁘지 않은 결과를 얻게 하려고 애쓴다. 그 때문에 그들의 증언 속에서의 뫼르소는 원래도 좋은 사람이었지만, 정말 수상한 점이 하나도 없고, 나쁜 의도라곤 찾아볼 수 없는 순진하고 순박한 사람으로 표현된다. 왜냐하면 그들의 기억 속에서 뫼르소는 이미 좋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반면 그와 그렇게 친하지 않았던 많은 사람은 그가 했던 행동을 있었던 그대로 말하지 못한다. 과거에 그들 곁에 있던 건 살인하기 전 일반인 뫼르소였지만, 다시 기억을 떠올릴 때의 뫼르소는 이미 살인자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뫼르소에게 특별한 악의가 있는 것은 아니었음에도 그가 사람을 살인했기 때문에 그가 전에 했던 많은 행동에 의문을 갖게 된다. 그가 원래 살인을 언제든 할 가능성이 있었던, 타인과의 감정에 공감하지 못하고 사회 부적응자였던 것처럼 느끼게 된다. 그들의 증언 속에서의 뫼르소는 왜곡된다.
3) 증언하는 사람들은 재판의 결과에 영향을 줄 순 있지만, 실제로 재판에 지대한 영향을 주는 사람들은 판사, 변호사, 검사이다. 그들은 자신의 직업에 따른 역할이 명확히 있다. 판사는 뫼르소가 정말 나쁜 의도를 지니고 범행을 했는지, 그렇지 않았는지 가려야 할 의무가 있고, 변호사는 그의 의도나 선악의 유무와 관계없이 피의자를 보호해야 할 의무를 지고 있다. 검사는 그가 저지른 잘못에 대한 적절한 죗값을 치르도록 재판을 이끌어갈 의무가 있다. (사실 판사가 왜 신을 믿느냐고 따지고 물으며 그의 선악 유무를 판단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판사가 그런 태도를 보인 것은 재판의 결과에 있어서 크게 영향을 주지 않았기 때문에 넘어가겠다) 이러한 의무는 변호사와 검사가 뫼르소라는 사람을 설명할 때 큰 영향을 미친다. 변호사는 자신의 개인적 판단으로 뫼르소가 나쁜 의도를 가졌는지, 뫼르소의 범행동기를 이해할 수 있는지는 중요치 않았다. 뫼르소가 최대한 불리한 말을 하지 않도록 막고, 형량을 감하는 자신의 역할이 중요했다. 그 때문에 뫼르소가 말을 하려고 해도 막고 자신이 대변 아닌 대변을 했다. 반면에 검사에게 뫼르소는 중형을 받아야 할 범죄자에 불과하다. 그에게 증인들의 증언은 아주 사소한 것에도 그가 평소에 감정을 잘 느끼지 못하고, 살인할 계획을 세우게 만든 복선이 된다. 그는 뫼르소를 패륜적 인간이고, 그의 어머니를 정신적으로 살해한 범죄자로 표현하는데, 이는 그가 검사이기 때문에 극단적으로 그를 표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소설 속에서 검사와 변호사는 그들의 역할에 따라 뫼르소를 판단할 뿐이다.
4)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뫼르소가 어떤 사람이었나를 판단하고, 그가 나쁜 사람인 것을 증명하는 데에 사회적 통념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뫼르소가 어머니 장례식에서 울지 않았던 것은 그가 무정하고 어머니에게 무심한 아들이었기 때문이고, 어머니 장례식 이틀 후 그가 연애를 시작한 것은 그가 어머니의 죽음은 괘념치 않고 사랑에 눈이 먼 패륜아이기 때문이고, 그가 평소에 평판이 좋지 않던 사람과 친한 것은 뫼르소 역시 그런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판단한다. 그들의 통념 속에 예외는 존재하지 않는다. 뫼르소는 그런 말들에 반박을 할 수 없다. 꼭 그런 케이스들만 있는 게 아니라고, 그 자리에서 당장 증명할 수도 없거니와 증명한다고 해도 믿어줄 사람이 없다. 그런 상황은 그를 완벽하게 죄인으로 만든다. 그의 없던 의도는 사회 통념적 판단때문에 왜곡되고, 이는 검사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좋은 기회가 된다.
5) 이방인을 한번 읽었지만, 참 어렵고도 복잡한 작품이다. 하지만 이방인은 사람들이 살면서 한 번씩 생각해봐야 할 가치 판단의 오류들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제삼자의 관점에서 바라본 뫼르소는 어떤 사람이었나? 내가 판단한 뫼르소는 어떠한 가치 판단에 따른 것이었나 생각하다 보면, 내가 그동안 사람을 판단할 때 어떠한 기준으로 판단했었는지, 그곳에서 오류는 없었는지 다시 생각해보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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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계절
백가희 지음, 한은서 그림 / 쿵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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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너와 함께라면 이 삶 자체가 성공이었는데, 하필 둘이서 처음 같이 한 실패가 사랑이라니. 그게 우리의 사랑이었다니. - <너의 계절> 하필이면

2. 그녀는 사랑했다. 그녀가 사랑을 시작하고, 사랑하고, 사랑을 끝맺은 후의 감정을 고스란히 이 책에 담았다. 이 책 속에서 그녀는 수많은 사랑과 이별을 했다.

3. 사랑하는 이에게 마음을 표현하는 방식은 각기 다르겠지만, 사실 말하고자 하는 바는 같을지도 모른다. 나는 진심으로 너의 모든 것을 응원하고, 네가 행복하길 바라며, 네가 나로 인해 네 힘듦을 조금이라도 덜길 바라는 마음. 그 마음은 전해질 때도, 그렇지 못할 때도 있지만, 여하튼 이런 마음가짐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본다. 그런 의미에서 사랑을 내 의지대로 끝내지 못했다면 실패일지도 모른다.

일을 잘못하여 뜻한 대로 되지 아니하거나 그르침이는 실패의 사전적 정의이다. 내 뜻대로 되지 않았다면 나의 실패이겠지만, 네 뜻대로도 되지도 않았다면, 서로에게도 실패일지 모른다.

4. 그렇다면 우리는 수많은 사랑에 실패한 것일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진 않는다. 우린 그저 더 나은 사랑을 찾고 있는 과정에 있을 뿐이다. 실패란 일을 잘못했기 때문에 생기는 결과물이다. 물론 정말로 죄를 물어야 할 정도로 일을 잘못한 사람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를 제외한 대부분의 사랑은 잘못해서의 범주에 끼우기 모호하다. 실패는 일을 잘못해서인데, 그 잘못했다는 판단은 누가 할 수 있는가. 사랑엔 성공과 실패의 명확한 기준이 없다. 사랑의 성공이 결혼도 아니고, 사랑의 성공이 영원한 사랑도 아니다. 물론 사랑의 실패가 이별도 아니다. 사랑은 눈에 보이지 않고, 수치로도 나타낼 수 없기 때문에 결과물을 눈에 보이게 내어놓을 수 없다. 결과물이 없으니 어떠한 기준을 만들어 판단할 수도 없다. 혹시 다른 사람들이 당신의 사랑을 두고, 혹은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의 사랑을 두고 성공과 실패뿐만 아니라 그 어떠한 평가를 하더라도 그는 옳지 않다. 사랑은 어떠한 말로도 형용할 수 없는 광범위한 범주의, 불명확하지만 확실하게 존재하는 감정이다. 이를 두고 실패라는 표현을 하는 것은 어쩌면 당신이 사랑한 시간 속에서의 당신에게 말하는 평가일지 모르겠다.

5. 우리는 수많은 사랑을 겪으며 울고 웃는다. 하지만 그 수많은 사랑 속에서 (감정적으로 표현했을 때) 실패한 나 자신을 발견하면서도 또 다른 사랑을 찾는다. 누가 말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사랑은 사랑으로 잊는다 했다. 그 말이 옳은 표현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사랑으로 인해 생긴 아픔을 다른 사랑이 감싸줄 수 있다는 의미에서 한 말이라면 맞을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누군가를 사랑함으로써, 또다시 아픔을 치유한다. 상처가 남은 자리에 다시 상처가 생기지 않길 바라며 간절한 마음으로 다시 사랑한다. 그들이 더는 자신이 지나온 시간 속의 사랑을 실패라고 평가하지 않았으면 한다. 그들이 쓰는 마음만큼 사랑을 받을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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