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기 캐리어가 아닙니다 - 열 받아서 매일매일 써내려간 임신일기
송해나 지음, 이사림 그림 / 문예출판사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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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을 한 번에 잃었다. 사형 선고나 다름없다는 게 마냥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내 행복의 요소들이 사형당했으니까.

이 세 문장으로 이 책을 소개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문장이 가장 기억에 남았던 이유는 같은 여자인 나 조차도 임신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고 살아가는 이 사회에서, 악착같이 살아남은 동지에 대한 안타까움 때문일 것 이다. 힘든 것을 힘들다 하지 못하고, 시작 전에 그 누구도 제대로 설명해 주지 않았던 사실들을 한 번에 마주한 채, 모든 것을 책임지고 견뎌야만 하는 (여성이기 이전에) 한 인격체로서의 삶은 그 어디에서도 존중받지 못했다.

  나는 이 책이 발간되기 전부터 임신일기 계정을 통해 간간히 그의 소식을 들었던 사람이다. 그 작은 화면 속에서 들리는 여러 외침들은 거의 지옥에 가까웠다. 사회는 국가에 인구가 줄어드는 것은 결혼을 하지 않는 여자와 임신을 하지 않는 여자의 탓이라며 저출산이라는 단어를 꺼내들었고, 그다지 실효성 없는 정책을 회유책이라며 카드 짝처럼 보란 듯이 흔들더니, ‘대한민국출산지도’(가임이 가능한 여성(20~44)을 지역별로 구체적 수치로 표기한 지도)라는 노골적 조사 지표를 들먹이며 가임여성이 이렇게나 많은데 왜 출산이 안 되냐고 따지고 들었다. 국가에게 여성은 가임이 가능한 아이를 재생산 할 수 있는 도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들에게 임신은 선택이 아닌 국민의 의무였고, 때문에 회유책으로 사용한 정책 역시 탁상공론에 지나지 않았다. 정작 필요한 것은 임신이 어느 정도의 신체적 리스크를 가지고 있고, 사회적으로 도움이 되는 제도는 무엇이 있는지, 회사에서 정확하게 어떤 현실을 마주하게 되는지, 아이를 낳은 후의 몸의 변화는 어떠하며, 어떻게 관리해야하는지, 이런 가장 중요한 임산부로서의 정보인데도, 그렇게 무섭게 현실적이고 고통스러운 이야기는 은폐했다. 그것은 겪지 못해 잘 알지 못하거나, 겪을 일이 없거나, 당연하게 여겨야 했던 사회분위기 속에 당연하게 감내했던 자들의 무지라고 생각한다.

  사회는 외면해도 사람은 외면하면 안 되는 것이지 않나. 무지한 환경에서 자란 사람들은 여전히 본인의 무지를 알지조차 못했다. 그 속엔 내가 포함되어있었고, 우리가 포함되어 있었다. 그나마 자각이라도 하고 배려라도 하려고 눈을 굴리는 사람과는 달리 일부러 보란 듯이 임산부 배려 좌석에 다리를 벌려 앉는 인간들을 나는 너무 많이 보았고, 속으로 욕을 하며 지하철 번호로 문자를 보냈지만, 임산부 배려석에서 자리를 비켜달라는 고정 안내멘트만 몇 번 더 나올 뿐, 놀랄 만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한번은 버스에서 임산부에게 자리를 비켜주려고 앉으시라고 했더니 경기를 일으키듯이 괜찮다며 손사래를 치셔서 몇 번 권하다가 그냥 그 자리를 비워놓고 일어선 기억도 있다. 당연히 앉지 말았어야 할 사람은 자각을 하지 못했고, 당연히 앉아서 가야 할 사람은 이런 배려가 익숙치 못했다.

  낯선 사람이 아무렇지 않게 임산부의 배를 쓰다듬으며 몇 개월이냐고 묻는 것도 보았고, 임신한 채로 아기를 업고 있는 여성에게 자리는 비켜주지 않으면서 아이만 달라고, 자기가 데리고 있겠다는 사람도 보았다. 그들은 자신이 대체 얼마나 대단한 존재라고 생각하기에 남의 권리는 빼앗을 수 있고, 상대방이 원치도 않는 관심과 배려라는 말로 위장한 무례를 범하고 있는가? 그들은 그저 불편하고 무례하기 짝이 없는 대중에 불과하다는 것을 인식도 못하는 그들의 무지에 수십 수백번을 고개를 저었다.

  무지하다는 것을 모르는 것 자체는 죄가 아니지만, 그것으로 인해 누군가가 피해를 입는다는 것을 모른다면 그것은 죄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임신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던 사람이라면, 임신에 대해 알고 싶은 사람이라면, 임신을 준비할 사람이라면, 여성이 왜 이렇게 임신에 대해 예민하게 받아 들이냐고 물었던 사람이라면, 그 누군가에게 임신 이야기를 쉽게 꺼내놓고 입방아를 찧었던 사람이라면, 단 한 사람의 이야기에 공감하는 수십 수백명의 이야기를 보라. 겪어서, 겪지 않아서 쉽게 이야기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당사자가 아니기 때문에 듣고 위로해주어야 하는 이야기라는 것을 알 때까지, 많은 사람이 이 책을 읽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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