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퓨테이션: 명예 1
세라 본 지음, 신솔잎 옮김 / 창비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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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조마조마한 전개! 주인공 엠마는 44세의 이상주의적인 하원의원이 리벤지 포르노에 대해 온라인 피해 법안 개정을 요구하자 온오프상의 각종 협박과 괴롭힘을 받게 된다. 자전거를 타고 퇴근하는 엠마를, 자전거를 타고 쫓아오며 사악한 미소를 짓던 사내 아이의 모습은 너무나 오싹하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온라인상의 악플과 강간 협박문자는 성폭력은 정말 위계, 권력의 문제라는 생각에 치가 떨렸다. 하원의원임에도 불구하고 여성은 너무나 쉽게 표적의 대상이 되고 만다는 것에 소름이 끼쳤다.

한국에서도 몇년 전 최고권력의 검사가 자신이 당한 성추행을 폭로해서 미투운동을 촉발했지만 성추문 사건이 일 어난지 8년만에 폭로하게 되었다. 노예제는 없어졌지만 더 오래된 여성 차별과 협오는 더 굳건해지고 있다!

이 사회는 제대로 일하고 있는 성인 여성에게만 혹독한것이 아니라서 엠마의 14살 딸에게도 감정이입이 되었다. sns에서 엄마를 저격하는 글을 보고 두려움으로 불면에 시달리지만 차마 엄마에게는 말을 하지 못하는 착한 딸, 그러다 자해도 하려고 하고 ... 본인 또한 마른 몸 때문에 "꼬챙이"라고 놀림을 받고 가장 친한 친구들에게서 사이버폭력을 당하는 모습은 우리의 여러 사회문제와도 꼭 닮았다.

"툭 던지는 댓글과 날 선 농담은 치익하고 그어지는 성냥불과 같았다. 순식간에 삶 전체가 화염에 휩싸였다."(91쪽)

누군가에게는 장난, 복수, 심심풀이, 구경으로 끝나는 일이 다른 사람에게는 돌이킬수 없는 재난이 시작된다.

사회적 양심을 가르쳐준 아버지의 기대와 자신의 의지로 명예를 쌓아 올린 엠마가 과거의 장면들을 회상하면서 "자만이 몰락을 부른다"라고 혼잣말하는 부분은 두고두고 씁쓸하다. 우리 사회에서 가부장제의 튼튼한 토대를 지켜내기 위해 여성들안에 뿌리박혀 있는 도덕을 가장한 내면화된 소리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명예가 별건가? 목숨이 중요하지라고 생각했는데, 사실 명예는 그 사람 자체, 전부이다. 머리속에 떠오르는 존경받아 마땅하지만 돌아가신 어른들이 한둘이 아닌것이 참 슬프다. 그나저나 2권이 벌써 기대된다.

*리벤지 포르노라는 말 대신에 불법촬영물을 이용한 디지털 성범죄라는 말이 더 적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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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살 위로 사전 - 나를 들여다보는 100가지 단어
박성우 지음 / 창비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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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이지만 큰 위로가 되었다. 한 손으로 잡기 편한 싸이즈에 가로세로 퍼즐이 있는 진달래색 표지가 귀엽다. 무려 100가지의 감정 단어들이 있다. 감정 단어의 다양한 일상의 사례들이 하나같이 적절하고 슬그머니 웃음이 난다. 심각하게 문제를 직면한다고 해서 해결되지 않고 애써 무시해도 사라지기는 커녕 가라앉아서 더 큰 덩어리를 만드는 감정들을 피식 바람도 빼주고 살살 어루만져서 다독여서 다시 일상에서 힘을 내게 해준다. 처음에는 마음에 드는 페이지에 붙임쪽지를 붙이며 읽었는데 도중에 그만 두었다. 붙이고 싶은 쪽수가 너무 많다. 내 감정이 내마음과 내머리와만 관련있는 것이 아니라 나의 모든 감각과 신체부위와도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고소하다: 귀는 못 들은 척 다시 듣고 싶어하고 눈은 못 본 척 다시 보고 싶어한다.

괜찮다: 들숨으로 안도를 들이고 날숨으로 걱정을 내보낸다.

쓰라리다: 손톱을 깍다가 손톱깎이에 집혀 나온 살은 다시 붙일 수는 없다.

무감각하다: 이미 귀에 닿았던 소리가 울리지 못한 말이 되어 돌아간다.

"마음 곁에 마음을"이라는 부분은 부정적 감정들 조차 다시 다른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게 해주는 여유를 줘서 위로가 된다. 내가 힘들고 지쳤을때 그래도 내가 있어 다행이라고 나에게 말해줄 좋은 친구를 하나 얻게 되어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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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풍당당 여우 꼬리 4 - 붉은 여우의 속삭임 위풍당당 여우 꼬리 4
손원평 지음, 만물상 그림 / 창비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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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어린이, 청소년 뿐만 아니라 어른이 읽어도 재미있다. 네 번째 여우 꼬리인 붉은 여우는 영화 엘리멘탈의 주인공 앰버가 생각났다. 파워가 넘치고 어디로 튈지 몰라서 긴장감도 생긴다. 자신 안의 질투의 불에 자기가 사랑하는 아내 뿐만 아니라 결국에는 본인도 파멸시켜 버리는 세익스피어의 비극의 주인공 "오셀로"도 생각난 것처럼, 주인공 단비도 겁이 나서 처음에는 질투 꼬리의 도움을 받다가 꼬리를 버리게 된다. 그러자 처음에는 편안했지만 모든 의욕조차 시들해 버리는 부분에서는 '인사이드아웃'이 생각났다. 슬픔이 안 좋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슬픔을 받아들일 때 그 과정 속에서 위로와 공감도 느끼고 기쁨이나 다른 감정도 온전해진다는 것을 느끼는 것 처럼. 내 안의 싫은 것들을 버리는 게 능사가 아니라 방향만 바꿔주면 된다는 것은 큰 깨달음을 주었다.  질투의 꼬리 대신에 어떤 이름을 붙일수 있을가를 생각하면서 글을 읽게 되는데 역시나 내가 생각했던 열정, 사랑보다 더 딱맞는 이름을 갖게 된다. 벌써 다섯번째 꼬리가 궁금해진다. 사춘기 아이들이 맞닥뜨릴수 밖에 없는 정체성, 우정, 용기, 질투의 감정을 이렇게 재미있고 적절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니 정말 작가가 존경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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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주
최은미 지음 / 창비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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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정말 어떻게 그 시절을 보냈을까? 학교에서 아이가 줌 수업에 접속 안했다고 연락이 오고 퇴근해서 집에 가면 줌에서 튕겨 나와져서 들어가지 못했다고 울먹이던 아이가 있고, 엘리베이터에 다른 사람과 같이 타는게 무서웠던 시절.

전세계가 거대한 감옥으로 변해버려서 철저히 각자도생의 삶을 꾸려야 했던 시절. 우리 모두는 다른 많은 사람들의 수고 덕에 정말 운 좋게도 살아남은 생존자이다.

책을 읽으면서 10년도 전에 수안보온천 근처에서 사과따기 체험을 했던 것도 새록새록 기억이 나고 사과주도 먹어보고 싶다. 쌍팔년도 중학교때 교회에서 소록도에 가봤던 것도 떠오른다. 미개한 시대의 국가폭력처럼 느껴졌는데 21세기에 우리도 마찬가지로 미개했다. 코호트 격리라는 어려운 말을 쓰면서. 성찰이 없으면 나쁜 역사는 반복된다고 하는데 이제부터라도 코로나 시절 철저히 소외시켰던 우리의 이웃들의 생활, 복지 사각지대, 필수노동자들의 노동권리에 대해 연구와 정책적 실천이 있었으면 좋겠다. 

게다가 좋은 여자 어른인 "만조 아줌마" 가 내 인생에 있었나? 나는 그런 사람이 되려고 하는가? 오히려 수미처럼 나도 아이를 내 맘대로 휘두르려고 하는 지점이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나는 다른 사람의 신발에 발을 넣어 본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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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크는 여기서 시작된다 창비청소년시선 44
최설 지음 / 창비교육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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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크는 여기서 시작된다>

여중, 여고, 여대를 나와서 여학교에 근무하는 국어 교사인 시인의 따뜻하면서 예리한 시선이 곳곳에 느껴진다. 시가 원래 그렇겠지만 한 번 읽을 때 보다 두 번, 세 번 읽으면 눈에 그려지는 장면이 더 선명해져서 웃음이 나오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다. 시의 제목들이 감각적이고 재미있다.(, , , 사 먹으면 돼요, 잔소리 반사, 마미손, 으르렁 등

자꾸 나의 여중생 시절이 생각나기도 했다. 심야 라디오 DJ의 한마디에 눈물이 나서 가출도 하고 싶고 친구 때문에 전학가고 싶어지기도 했고 보이시한 다른 반 아이가 멋져 보여서 마음을 졸이고 좋아하는 가수 공연에 목메던 정말 총천연색의 좌충우돌의 시기였다

사춘기다, 세대차이가 심하다라며 쉽게 요즘 중학생들 문제가 많아라고 하기에는 그들이 풍요 속에서 느끼는 빈곤이 더 클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의 10대와 요즘 아이들과도 좀 더 가까워진 느낌이 든다.

배를 접는다
칠판 가득 노란색 침묵
그날 이후로 어른이라는 단어를 말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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