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 수 없는 여인에게 ㅣ 민음사 세계시인선 리뉴얼판 26
로베르 데스노스 지음, 조재룡 옮김 / 민음사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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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베르 데스노스의 시에 꿈과 그림자가 자주 나온다. 꿈 속의 나와 내 그림자는 내가 아니지만 항상 나한테 붙어 있고 나를 닮아서 나같다. 하지만 꿈 속의 나는 꿈을 깨면 사라지고 꿈 속에서는 내가 절대로 할 수 없는 것이 있다. 꿈은 내 마음 속 깊이 있어서 내가 모르는 것일 수도 있고, 알고 있지만 현실에서는 이룰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그림자도 나한테 붙어 있어서 나를 따라 하기만 할 뿐이다. 꿈과 그림자는 현실이지만, 오염된 현실이므로 환상 문학과 초현실문학에서 중요한 장치가 되곤 하는데 로베르 데스노스한테도 예외는 아닌 듯 하다.

 

<너무나도 자주 나는 너를 꿈꾸었다> 꿈에서 소망할수록 현실과의 거리는 멀어지는데, 현실과의 거리가 멀기 때문에 꿈으로 더 소망한다. 무엇이 원인이고 결과인지 모르겠지만 둘은 그림자한테 원인이다. 그림자가 짙어진 원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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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플소프 - 에로스와 타나토스 ㅣ 현대 예술의 거장
퍼트리샤 모리스로 지음, 윤철희 옮김 / 을유문화사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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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플소프는 당대 사회에서 금기시한 동성애와 마약에 탐닉한다. 나치 하켄크로이츠 악세사리를 달고 다니며 남창으로 일을 한다. 그가 찍은 사진에는 게이가 담겨 있다. 한마디로 메이플소프의 삶과 예술은 일탈이었다. 그의 평전을 읽다보니 그가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당대 사회 질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말라. 끊임없이 반문하라.


평전의 앞부분 메이플소프가 아버지한테 인정을 받지 못해 갈등을 빚는 장면이 의미심장했다. 가정은 사회의 축소판이니 아버지와의 대립은 앞으로 그의 생에서 벌어질 사회와의 대립을 의미하는 것처럼 상징적으로 보였다. 그 순간 메이플소프는 경계선에 서 있었다. 경계선을 사이로 세상은 서로 상이한 규칙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경계선에서 그는 세상을 본다. 그가 뛰어넘어야할 모든 규칙과 관습을 직시한다.


지금 메이플소프같은 연예인이 등장한다면 그는 질식당할 것이다. 도덕주의자들이 가하는 폭력. 이를테면 그가 개입된 모든 것에 대한 불매운동, 비난과 비아냥의 SNS 댓글, 아이가 살아갈 세상을 들먹이는 청와대 청원, 가족에 대한 공격, 살의가 가득찬 시위, 저주의 기도회, 그가 하지 않은 일을 했다고 확정하는 루머의 향연. 끔찍하다. 도덕주의자들이 보고 싶어하는 것은 눈물흘리는 그, 고통받고 회개하는 그이고, 그를 발가벗겨 그가 모욕당하기를 요구한다. 그를 에워 싼 도덕주의자들은 자비없는 재판관이다. 지금도 그렇고 과거도 그러했고 미래도 그럴 것이다. 도덕주의자들은 메이플소프들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하지만 메이플소프를 보자. 도덕주의자들의 주장과 다르게 사실 그의 예술은 체제를 무너뜨리는 것에 있지 않다. 메이플소프의 목적은 하나다. 우리의 고정관념을 공격하여 세상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세계에 유익이 되는 것 아닌가. 고정관념에 사로 잡혀 우리가 보지 못하는 세계를 그가 볼 수 있게 해주는데?


그래서 나는 이렇게 주장한다. 메이플소프의 사진은 게이로 대표되지만 게이가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사회가 도래한다면, 오히려 그는 게이를 사진에 담지 않을 것이라고. 그에게 중요한 것은 게이가 아니라 고정관념을 공격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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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노트 : 타협하지 않는 음악
리처드 하버스 지음, 류희성 옮김 / 태림스코어(스코어)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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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뮤지션에 대한 이야기는 영화로 많이 나왔는데 블루노트 레코드 영화는 블루노트 스튜디오와 프로듀서에 대한 이야기라서 더 흥미롭습니다. 아무리 뛰어난 뮤지션이라도 스튜디오와 프로듀서가 없으면 앨범은 만들어지지 않으니까요. 위대한 순간을 만들어 준 그들. 영화와 책 정말 기대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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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짐승아시아하기 ㅣ 문지 에크리
김혜순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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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즐거움은 낯선 것을 만나는 것에 있지만 알고 보면 낯선 것은 익숙한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여행지에서 발견하는 것은 결국 나 자신이다. 김혜순 시인의 <여자짐승아시아하기>는 실크로드-운남성-미얀마-고비사막-몽골 등을 다닌 여행기이다. 시인이 그곳에서 안 것은 우리가 모른다는 것이었다. 우리가 제일 모르는 것이 우리가 아시아인이라는 것, 우리가 짐승이라는 것, 우리가 여자라는 것이다. 시인은 그곳의 현재에서 한국의 과거를 발견하는데 그곳의 현재는 사실은 한국의 현재이기도 하다. 이를테면 <똥 덩어리 부처>에서 시인은 이렇게 말했다.


“여자는 사원에 몸을 의탁해도 승려가 될 수는 없다. 단지 잡무만 본다. 남자가 1층에 있을 때, 여자는 2층에 올라갈 수 없다. 여자가 남자보다 높은 위치에 있는 건 남자를 모욕하는 것이다...그럼에도 남자들은 말한다. 국립대학에는 여학생 수가 더 많고, 사미니들의 불경 지식이 더 풍부하고, 해박하다고...(중략)... 독재정권 아래서 살아 보지 않은 자는 모른다. 퇴폐, 슬픔, 분노, 타락을 어떤 예술 작품 형태로도 표출하지 말라는 권력자의 주문이 여성 억압과 한통속이라는 사실을. 그들은 먼저 여성을 억압하고, 다음 소위 여성적이라고 규정된 것들을 억압한다. p244”


과거 한국에 있었던, 권력자의 주문과 여성 억압은 현재 한국에도 있다. 개신교 어떤 교단에서 여성은 목사가 될 수 없다. 교회의 남자 목사가 여자 성도에게 성범죄를 저지르면 교회에 소문이 난다. 여자 성도가 유혹했다는 내용이다. 여자 성도의 품행, 외모, 옷차림, 연애사, 가정형편, 학벌, 소비행태 모든 것이 소문의 근거가 된다. 여성이 여성적이지 않았다고 비난한다. 교회는 여자 성도를 이단으로 규정하여 쫓아낸다. 여성은 가해자 남성과 싸워야 하고 자신이 섬겼던 교회와 싸워야 한다. 자신이 살고 있는 사회와 싸워야 한다. 여성다움을 비롯하여 자신을 가두는 수 많은 ‘~다움’ 과 싸워야 한다.


한국에서 다문화는 결혼이주여성과 외국인 노동자가 한국 문화에 동화되는 것을 의미한다. 외국인이 자신의 문화를 유지하려고 하면 비난받는다. 한국에 왔으면 한국법을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TV에서 인기 있는 외국인은 한국말을 잘하고(심지어 사투리도) 한국음식을 좋아한다고 말한다.(그래서 두 유 노우 김치 라고 묻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TV에는 유럽과 북미 출신 백인이 더 많이 나온다. 한국사회가 서구를 동경하기 때문이다. 서구를 동경하는 우리는 우리가 아시아인이라는 것을 망각하고 있다. 짐승을 학대하는 사람은 우리도 짐승이라는 것을 망각하고, 여성을 억압하는 사회는 우리도 여성이라는 것을 망각한다. 여성과 노약자만 공격한 흉악범이 동물도 학대했다는 연구가 있었다. 동물을 대하는 태도만 봐도 인권에 대한 인식을 알 수 있다는 말도 있다. 그렇기에 시인이 여자, 짐승, 아시아를 한 데 모은 것이 당연하게 느껴졌다.


시인의 글에서 명사가 자주 나왔다. ‘여행하기’, ‘여자짐승아시아하기’, ‘시하기’, ‘여자하기’, ‘짐승하기’, ‘식물하기’, ‘풍경하기’, ‘색깔하기’ 등 이었다. 여행하다, 시 쓰다, 식물을 심다. 같은 동사가 아니다. 왜 동사가 아니라 명사로 썼을까. 시인이 여행을 하고 깨달았다는 의미가 아닐까. 여행 속에서 낯선 것을 경험할 때 물음표가 떠오르고 물음표는 여행자를 따라 다닌다. 그러다 느낌표가 될 때 여행자의 발걸음은 멈춘다. 여행자의 오감으로 전해지는 감각은 깨달음이라는 의미로 바뀐다. 동사로 운동하는 감각은 명사에 갇힌다. 명사는 구호가 되고 신념이 된다. 시인은 자신의 글쓰기가 “탈식민하기였으면, 미래로 회귀하기였으면 좋겠다.p22” 고 했다. 시인에게 여행기는 동사가 명사가 된 자취이다. 깨달음과 소망의 기록이다.


참 좋은 여행기를 읽었다. 여행을 간다는 사람이 있으면 누구한테라도 이 책을 권하고 싶다. 동남아든 국내든 유럽이든 상관없다. 내 안의 아시아, 여자, 짐승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안의 아시아, 여자, 짐승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나를 발견하는 시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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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당나귀들의 도시로 돌아가다 - 제임스 테이트 산문시집
제임스 테이트 지음, 최정례 옮김 / 창비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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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테이트의 산문시집 <흰 당나귀들의 도시로 돌아가다>. 꽁트 같은 짧은 글이 모여 있다. 이 글이 시라면 시에 등장하는 ‘말했다’ 라는 단어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인물이 말한다고 할 때 사용할 수 있는 단어는 많지만.(소리쳤다. 주장했다. 떠들었다. 입을 뗐다. 등등) 시는 ‘말했다’ 라는 단어를 반복한다. ‘말했다’의 반복은 시에 리듬을 부여한다.

 

시는 일상에서 환상같은 순간을 포착한다. 이를테면 <샤일로>에서 수업시간에 학생들은 남북전쟁에 대한 질문을 하지 않고 결혼 예정인 선생님에 대해 질문을 한다. 선생님 결혼의 추이는 남북전쟁의 추이와 맞물리듯 전개된다. 그러다 시는 로리가 선생님을 보며 누군가를 떠올리는 것으로 끝난다. “전쟁터 옆에서 야영천막을 친 그녀를 그려보았다. 초조하게 그녀의 남자를 기다리는 그녀, 결코 돌아오지 않을 그 남자를. P98” 수업을 하고 있는, 결혼을 앞둔 선생님은 남북전쟁에 참전한 남편을 기다리는 여인으로 바뀐다. 제임스 테이트는 관계를 전복시켜 환상성을 표현한다. 일상적인 관계 속에 놓여 있는 사물을 낯선 관계 속으로 밀어내는 것이다. 제사에 쓰인 너새니얼 호손의 American Notebooks 속 문구처럼 말이다. “나무들이 강물에 비친다. - 그들은 그렇게 가까운 곳에 영혼의 세계가 있다는 것을 의식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도 그렇다. P15.

 

제임스 테이트의 현실적인 시가 초현실적이라는 생각을 했다. 역자 서문을 읽은 것은 시집을 다 읽고 난 뒤였는데, “제임스 테이트는 벤저민 페레, 막스 제이콥, 로베르 데스노스, 앙드레 브르통 등의 초현실주의자들의 문학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p6.”는 대목을 읽고 아하. 이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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