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정치 - 밀과 토크빌, 시대의 부름에 답하다
서병훈 지음 / 책세상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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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병훈이 쓴 <위대한 정치-밀과 토크빌, 시대의 부름에 답하다>를 읽고 있다. 존 스튜어트 밀과 알렉시스 드 토크빌를 비교하는 이 책은 지식인의 역할은 무엇인가에 대한 문제제기로 볼 수도 있을 것이고(서문에서 현실에 영합하는 한국 지식인 집단, 특히 SCI에 목을 매는 대학교수들에 대한 저자의 비판에 날이 서 있었다.)


존 스튜어트 밀과 알렉시스 드 토크빌의 생애와 저작을 되짚고 있기에, 둘의 위대한 저서들(밀이 쓴 ‘자유론’, ‘공리주의’, ‘여성의 종속’, 토크빌이 쓴 ‘미국의 민주주의’, ‘앙시엥 레짐과 프랑스혁명’) 을 깊이 읽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서문에서 저자는 지식인의 역할에 대해 플라톤이 했던 말을 인용했는데 박근혜 탄핵과 관련하여 기억에 남았다. 플라톤의 철인왕에 대한 것이었다.


"플라톤은 ‘동굴의 우화’에서 철학자의 정치 참여를 독려했다. 천상의 세계에 머물지 말고 동굴 속으로 다시 내려가 ‘죄수’들을 밖으로 끌고 나오라고 했다. 플라톤은 철학자가 그 누구보다도 정치를 잘할 수 있다고 믿었다. 진리를 알 뿐 아니라 사사로운 욕심이 없기 때문이다. 그의 말은 일리가 있다. 권력자가 사적인 욕심에서 자유롭다면 정치를 잘할 수 있는 꽤 유리한 조건을 선점한 셈이다. 그뿐만 아니다. 플라톤의 ‘아름다운 국가’에는 조건이 또 하나 있다. 그 나라 백성은 권력자에게 절대 복종한다. 따라서 플라톤의 철인왕은 ‘선의의 독재자’로서 큰 업적을 낼 가능성이 있다. p17-18"


국민은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뽑으며 국민 각자의 권력을 박근혜한테 모아 주었다. 박근혜는 플라톤이 말한 철인과는 완벽하게 동떨어진 사람이었지만 어찌되었든 권력자로 선출이 되었다. 박근혜가 헌법 질서를 어지럽혀서 탄핵을 당했는데 박근혜 탄핵을 판결한 헌법재판소의 권력은 국민이 준 게 아니다. 국민은 헌법재판소 재판관을 선출하지 않았다.


민주주의의 핵심은 투표 즉 선출이지만 선출된 권력이 선출되지 않은 권력에 좌우되었다. 선출되지 않은 권력인 헌법재판소의 판결은 단심이라서 이의제기를 할 수 없고 무조건 승복해야 한다. 


헌법재판소가 만들어진 이래 헌재가 판결을 하며 사사로운 욕심을 챙겼다는 소리는 듣지 못했다. 그렇다면 헌법재판소는 권력자가 사적인 욕심에서 자유롭고, 백성은 권력자에게 절대 복종한다는, 플라톤이 말한 철인왕에 가깝다. 헌법재판소를 플라톤이 말한 철인왕이라고 해도 괜찮을 것인가? 궁금하다. 박근혜가 탄핵되어 기쁜 마음으로 민주주의와 철인왕을 생각한다.


서병훈이 쓴 <위대한 정치-밀과 토크빌, 시대의 부름에 답하다>와, 밀의 책, 토크빌의 책을 읽으며 더 고민해봐야겠다. 정치와 철학에 대한 다른 책도 더 읽고 싶다

* 이제 이 시대 이 땅의 지식인들은 삶의 가치나 역사의 응보에 대한 관심을 잃어버렸다. 오불관언, ‘세상일에 나 몰라라‘ 하는 것을 마치 지식인의 표상이나 되는 것처럼 자랑하고 다닌다. 그런 사람일수록 ‘불의는 참아도 불이익은 못 참는다.‘ 서글픈 일이다. 소크라테스는 그렇게 살지 않았다...(중략)... 시대의 아픔에 괴로워하고 현실의 부조리에 분노하는 것은 지식인의 책무요, 숙명이다. p16

*밀은 젊어서 사회 개혁 운동에 열심히 가담했고 인생 후반부에는 하원 의원으로 활약했다. 토크빌의 공생에는 전부 정치로 점철되었다. 그는 하원 의원에 장관까지 지냈다. 밀과 토크빌은 "옳은 것을 알고도 그것을 실천에 옮기지 못한 적은 없는지 항상 작정"하는 지식인의 전형에 가까웠다...(중략)...밀은 일생 동안 진보적 자유주의의 구현에 앞섰다. 인간의 진보를 푯대 삼아 여성과 노동자 등 사회적 약자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분투했다. 그가 쓴 책과 논설은 거의 모두 이 진보적 자유주의의 구축과 확장을 겨냥했다. 토크빌은 자신을 새로운 자유주의자라고 불렀다. 그는 물질적 탐닉과 소시민적 안락을 부추기는 당시의 주류 자유주의자와 자신을 분명하게 구분했다. 토크빌의 주요 저작 역시 이 새로운 자유주의의 토대를 확립하고 그 이념을 현실에 투영하는 방안에 집중하고 있다.

* 콩트는 정신이 육체에 의존한다면서 여자의 뇌가 남자의 뇌보다 작기 때문에 여자가 남자에게 복종하는 것이 옳다고 강변했다. 여자가 부분적으로 감성에서 우위를 보이는 것도 이성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밀은 이런 남녀 차별론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남녀 사이에서 목격되는 모든 차이는 교육, 환경 등 여건의 불평등에서 비롯되는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p62

* 토크빌은 종교에 관심이 많았다. 그의 글을 한두 페이지만 들춰봐도 그가 얼마나 깊이 종교의 영향을 검토했는지 확연히 알 수 있다. 우선 그는 민주 정부가 제대로 존립하기 위해서는 ‘종교적 믿음‘ 이라는 조건이 구비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성과 개인적 도덕성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왜 그럴까? 평등 시대의 사람들은 과도하게 세속적 욕구를 좇는다. 이런 곳에서는 정치의 힘만으로는 안정된 사회를 만들 수 없다. 사람들이 각자 이기심을 제어하며 사회적 의무를 충실히 이행해야 한다. 사람들의 분별없는 욕심을 순화, 규제, 억제해주는 것이 바로 종교이다. 종교는 큰 틀에서 사회적 기강을 확립해주고 이기심을 억제해줌으로써 자유가 숨 쉴 토대를 제공한다. 따라서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신앙이 없으면 도덕이 설 자리가 없고, 도덕이 살지 않으면 자유가 힘을 발휘할 수 없다". 토크빌이 "선동가들, 대중의 무질서한 행동, 그들의 폭력적이고 무식한 일 처리 방식, 하층 계급의 불같은 질투심" 못지않게 "비종교적 성향"을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증오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p117

* 평등이란 덜 고결할지는 몰라도 더 정의로운 것이다. 바로 이런 정의로움 때문에 평등이 위대하고 아름다운 것이다. - 알렉시스 드 토크빌 p118

* 토크빌은 종교가 없으면 위대함도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1853년 코르셀에게 쓴 편지에서 자유주의적 감정과 종교적 감정이 함께 조화를 이루어야 ‘진정한 위대함‘ 이 실현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p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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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학의 역사와 이론 - 세계 인류학의 패러다임 호모사피엔스
앨런 바너드 지음, 김우영 옮김 / 한길사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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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런 바너드가 쓴 <인류학의 역사와 이론 : 세계 인류학의 패러다임>은 인류학의 역사를 통시적으로 조망하는 데다가 각 시대별로 대가들의 학설, 쟁점을 소개하고 있어서 대학교 1학년 전공기초 수업 교재 같은 느낌이 들었다.


지도 없이도 산을 오를 수 있고 산을 오르는 방법에는 한 가지만 있는 것이 아니지만 먼저 오른 사람의 자취를 따라 지도를 가지고 산을 오르면 산을 더 수월하게 오를 수 있을 것이다. 인류학에 관심이 생겨 인류학 책을 이것저것(에밀 뒤르켐, 에드먼드 리치, 마르셀 모스, 클로드 레비-스트로스) 사 모으고 있던 차였는데 읽기 전에 좋은 안내서를 읽었다. 이제 산만 오르면 되는 것인가. !!!


인류학이 당시 유행하던 경향을 반영하는 것이 흥미로웠다. 몽테스키외의 <법의 정신>으로 대변될 계몽사상으로 인류학은 시작되었고 다윈의 진화론이 우세할 때는 진화론으로 원시사회를 설명했고, 마르크스가 나온 뒤에는 마르크스주의로 원시사회를 설명했다.


앨런 바너드의 말에 따르면, 시대가 변하더라도 기존 이론들은 배척되지 않고 새로운 경향에 통합되거나 다른 모습으로 복귀할 것이라고 한다. (p320)


그렇다면 앞으로 인류학은 어떻게 될 것인가. AI, VR이 나오고, 페미니즘에 대한 요구가 커지고, 4차 산업혁명이 도래하는 시대에, 진화론, 니체, 프로이트, 마르크스, 마르셀 모스, 소쉬르의 학설이 어떻게 통합될지 앞으로 인류학은 인간을 어떻게 해석할지 궁금하다

* 보아스 이전에는 모든 언어가 비슷하다고 생각되었다. 그리스어나 라틴어의 문법을 알면 세상의 어떤 언어도 설명할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보아스 학파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그렇지 않음을 보여주었다. 이누이트나 아메리카 인디언의 언어가 그리스어나 라틴어보다 훨씬 복잡하다. 어떤 언어에는 17개의 문법적 성(gender)이 있어서 여러 가지 말의 조합이 가능하고, 그것을 연구하러 갔던 수많은 인류학자를 혼란에 빠뜨렸다. 워프는 그런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은 영어처럼 보다 단순한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과는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 다를 것이라는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이 아이디어는 워프와 그의 스승 사피어의 이름을 따서 ‘사피어-워프 가설’로 알려지게 된다...(중략)...원칙적으로 그 가설은 ‘우리의 사고’와 ‘그들의 사고’라는 두 형태만 있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언어를 갖는 다수의 사고형태가 존재한다고 제시한다. p198-199

* 레비-스트로스는 복잡한 오이디푸스 신화를 간단한 도식으로 설명하려고 시도했는데,..(중략)...III열은 인간이 살해한 괴물에 대한 것이다. 용은 인류가 대지에서 태어나기 위해 살해되어야만 하는 남성 괴물이었으며, 스핑크스는 인간의 생존을 원치 않는 여성 괴물이었다. 레비-스트로스의 표현을 빌리면, 이 열은 ‘인간의 토착적 기원의 부정’(다시 말하면 인류가 본래 땅과 관련된다는 사실에 대한 부정)을 상징한다. p241

* 푸코의 담론은 사람들이 어떤 사물에 대해 말하거나 쓰는 방식, 함축된 지식체계, 또는 그 지식을 권력의 구조에서 사용하는 행위 -푸코를 사로잡은 관심-를 포함하는 개념이다. 인류학에서 권력에 관한 관심은 점차 커졌으며, 푸코의 영향은 광범위하다. 권력의 담론이라는 아이디어는 여성주의 이론에 적용할 수 있고, 서구에 의한 제3세계와 제4세계의 식민지적, 탈식민지적 지배에 관한 연구에 강한 파급효과를 지녔다. p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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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기의 수수께끼 - 성서 속의 금기와 인간의 지혜 호모사피엔스
최창모 지음 / 한길사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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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창모의 <금기의 수수께끼>를 흥미롭게 읽었다. 최창모는 성서에 나오는 금기에서 여러 문화권, 인간과 환경을 공시적으로 재구성하여 의미를 찾는다. 나는 엄마 뱃속에서부터 교회를 다녔는데 주류 기독교의 성경해석에 익숙해져 있다 보니 인류학적인 해석을 생각하지 못했다. 교회에서는 성경을 하나님의 사랑, 창조, 예수의 구속사에 맞추어 해석을 하지 인류학적으로 해석하지 않는다.


예를 들면, 성경에서 카인이 동생 아벨을 죽인 뒤 하나님은 카인한테 표식을 줘서 만나는 사람한테서 보호하도록 하는 구절을 (그 앞 대목에서, 동생을 죽였으니 앞으로 너는 땅에서 유리하는 자가 될 것이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카인은 유리하다가 사람들이 나를 죽일 것이라고 애원한다.) 기독교에서는 하나님이 죄지은 자도 사랑하신다고 해석을 한다.


최창모는 이렇게 말한다. 1) 카인의 징표는 문신이다, 2) 살인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를 만나는 사람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3)카인은 최초의 인간인 아담과 하와의 아들이었고 또 다른 아들인 아벨은 죽었기에 카인을 해칠 사람은 세상에 없으므로 하나님이 카인한테 준 징표는 죽은 자(동생)의 유령으로부터 해방시켜주는 약속, 즉 살인자가 받게 될 공포를 진정시켜 주는 의미를 갖는다. p286-287


그러면서 최창모는 고대 관습에서 신체 장식은 자연세계에 존재하는 마술적인 힘을 일으킨다고 했다. 물의 위험을 막으려고 라오스에서는 물고기 비늘 무늬를 즐겨 넣고, 살인자를 변장시켜 혼령이 그를 못 알아보도록 하는 문신이 아프리카 콩고의 바야카족, 남동 아프리카 모잠비크의 통가족...등에서 나타난다고 했다. 문신의 주술적 기능은 이후 씨족의 표시로, 씨족 표시에서 사회적 지위 상징으로, 용맹의 상징으로, 형벌의 기능으로, 미적 기능으로 변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p284-288


카인과 아벨 이야기를 다양하게 읽으니 재밌다. 교회에서는 카인의 질투와 아벨의 신실한 마음, 죄인을 사랑하는 하나님으로 들었던 이야기였다. 주제 사라마구와 미겔 데 우나무노의 소설에서 카인과 아벨의 변주를 읽었을 때도 어찌나 재밌었는지 모른다.


주제 사라마구의 <카인>을 읽었을 때 하나님이 만들어 놓은 계획 때문에 살인을 저질러야 했던 하찮은 인간의 서글픔과 분노를 느껴서 짜릿했고, 미겔 데 우나무노의 <아벨 산체스>를 읽었을 때는 행복의 원인으로서 비교와, 비교의 결과로서 질투를 느껴서 좋았다. 최창모의 <금기의 수수께끼>에서는 문신의 주술적 기능과, 문신이 유령이라는 공포로부터 막아준다는 보호기능을 읽어서 참 좋았다.


기존의 성경읽기는 통시적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하나의 해석만이 시간을 관통할 수 밖에 없다. 인류학은 텍스트를 공시적으로 읽으므로 인류학으로 성경을 읽으면 성경을 깊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성경에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의 구속사가 있다고 하더라도 결국 성경은 인간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이 과연 성경을 공시적으로, 인류학적으로 읽을지 의문이다. 기독교계가 윌리엄 로버트슨 스미스의 인류학 연구를 보고 스미스를 이단으로 몰았던 것이나 제임스 조지 프레이저가 기독교계와 충돌할까봐 두려워 <황금가지>의 특정 내용을 삭제하고 논란이 될 해석에 언급을 피한 것이 과거의 일 같지가 않다.


기독교에서는 금기를 다르게 해석하는 것을 금기하므로 자신들의 세계를 보호하기를 원하고 성스러움이 훼손당하기를 원치 않기 때문이다.

* 터부는 ‘금지’와 ‘성스러움’이 결합된 이중의 개념이고, 금기와 터부는 두 세계를 분리시킴으로써 두 세계를 한꺼번에 보호해준다. p272

* 역사가가 소멸해버린 사회의 당대 모습을 현재로서 그대로 복원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인류학자는 현재의 사회가 지금의 모습으로 되기까지 걸어온 역사의 각 단계를 재구성하는 데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다. 그런 점에서 인류학은 인간과 환경과의 밀접한 관계를 강조하며, 문화를 하나의 ‘의미의 총채’로 성서 이야기에서 심층적이고 잠재적인 의미를 얻기 위한 공시적 읽기를 가능케 했다는 것이다. 기존의 통시적 성서 읽기는 결코 성서의 의미를 발견하는 데 충분하지 못하였다. p329

* 결론적으로 성서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살 베기(문신)를 금한 것은(레위기 19:28; 21:5; 신명기 14:1) 이러한 의식적인 자해가 사람을 사자의 영역으로 인계한다고 생각하는 이방인(가나안인)의 관습과 믿음을 거부하고, ’스스로 있는 자‘(출애굽기 3:14)로서 그 자신을 드러내신 언약의 하나님 ’야훼의 자녀‘(신명기 14:1)로서 이스라엘 백성은 선민이라는 확신때문이었다. 즉 야훼께서 이스라엘을 택하셔서 구별하셨다는 근거 아래 이스라엘이 ’야훼의 거룩한 백성‘(신명기 14:2) 이라고 강조한 점, 삶과 건강에 대한 신성한 개념 등에 그 근거를 두고 있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문신에 대한 금기는 그 당시 주변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문신을 하던 습관이 있던 이스라엘이 문신을 금지하여 다른 나라와의 사회적, 민족적, 종교 적 차이를 나타내고자 한 것이다. 내적 또는 외적 차이의 체계로 이루어진 질서, 그것이 고대 이스라엘 사회구조의 특성이다. p303-304

* 결론적으로 왼손잡이 금기는 오른손잡이 중심 사회가 낳은 하나의 사회적인 억압기제였다. 금기는 억제를 통해 사회의 질서와 통합을 가져다준다. 이것은 터부가 사회적 일체감(때로는 복종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기능을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왼손잡이 금기가 바로 그러한 사회적 기능을 하고 있다. 문제는 그러한 통제는 통제자에게 우선권을 주게 되고, 그 우선권은 하나의 권력이 되어 지배 이데올로기를 낳게 되며, 이데올로기는 고착되어 영속화를 꾀한다는 것이다. 차이의 체계로 이루어진 고대사회의 질서로부터 질서를 위한 ‘차이’가 지배를 위한 ‘차별’이 되어, 차이의 본질은 거세되고 차별의 작용만 남게 되었다. 사고 패턴의 차이는 차별화된 사회적 조건과 긴밀히 작용한다. p277

* 터부는 ‘금지’(prohibition)와 ‘성스러움’(sacred)이 결합한 이중의 개념이다. 모든 금지는 ‘위험’한 상황에서 발생하며, 성스러운 곳에서는 언제나 위험이 발생한다...(중략)... 터부는 ‘위험한 곳’에서 발생하는데, 위험한 곳은 항상 ‘애매모호한’ 즉, ‘어중간한’ 중간지대에 속한다. 이곳은 동일성이나 체계와 질서를 교란시키는 곳이다. 동일성을 교란하는 곳, 여기서 금기가 발생한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문턱’을 밟는 것이 금기인 이유 역시 마찬가지이다. 최근 구조주의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문턱’(stile)은 어중간한 곳, 곧 안도 아니고 바깥도 아닌 곳으로서 모순, 대립되는 것들을 매개하는 영역이기 때문에 하늘과 땅, 삶과 죽음, 영과 육을 오고가는 영매들에게 사로잡힌 곳으로 여겨진다....(중략)...따라사 이들이 하나님의 계시를 경험하는 장소는 이 세상도 아니고 저 세상도 아닌 ‘광야’ 라는 어중간한 곳(그들은 어디에도 완전히 속할 수 없다.)이다. 성서의 모세, 엘리야, 세례 요한, 예수, 바울로 등은 모두 ‘광야’에서 신을 만난 자들이다. 제사장이나 왕처럼 특정한 계층에 속한 이들에게 특히 많은 개인적 금기가 뒤따르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신성한 힘의 남용을 막기 위해서다. p32-35

* 성서는 아버지의 우월성과 힘을 빼앗으려는 아들의 욕망의 주체적, 상징적 행위로 나타난다...(중략)...압살롬이 아버지 다윗의 첩들과 벌인 근친성교는 자신의 정치적 승리를 기념하기 위한 축제의 행위로 공개적으로 벌어진다...(중략)...압살롬의 의도는 아버지의 후궁들과 성관계를 맺음으로써 자신의 남성다움을 과시할 뿐 아니라, 부왕의 세도를 꺾고 돌이킬 수 없는 단절을 선언하면서 부왕의 정치적 힘과 권위가 자신에게로 완전히 옮겨왔음을 백성들에게 공개적으로 선언하고자 하였던 것이다.(16:21) 고대부터 남근이 힘과 권력을 상징해온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중략)...압살롬의 최후에 관한 기록에 따르면 그는 전쟁 중 노새를 타고 달리다가 남성성의 또 다른 상징인 긴 머리카락이 큰 상수리나무 가지에 걸려 공중에 매달려 죽었다. 또는 그는 아들이 없었는데, 이는 분명 부도덕한 행위에 대한 보복으로 보인다. p172-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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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돌의 마지막 날들 버티고 시리즈
제임스 그레이디 지음, 윤철희 옮김 / 오픈하우스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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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520페이지의 소설을 6시간 동안 읽었다. 제임스 그레이디가 쓴 스파이 스릴러 소설 <콘돌의 마지막 날들>을 읽는데 극장에서 2시간짜리 스파이 스릴러 영화 한 편을 본 것 같았다.


CIA 요원 콘돌은 집에서 괴이한 상태로 죽은 요원을 발견하고 도망친다. 그때마다 누군가가 좇아와 죽이려고 한다. 도망갈 때마다 어떻게 귀신같이 찾아 올 수 있었는가 하면, 콘돌과 친구들이 사용한 통화기록, 인터넷 사용정보를 CIA가 감시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감시와 통제. 프리즘 사건이 그렇지 않았던가. 미국 국가안보국(NSA)이 PRISM 이라는 비밀정보수집 프로그램을 가지고 일반인들의 통화기록이나 인터넷 사용정보같은 개인정보를 무차별적으로 수집하고 있다고 CIA 요원 스노든이 폭로했을 때 미국 정부와 보수주의자들은 테러를 막을 목적이니 감시가 필요하다고 했다.


'최소한'으로 수집한 정보를 '철저'하게 관리한다면서 스노든이 어떻게 폭로를 할 수 있었는지, 최소한의 정보가 아닌 엄청난 양을 수집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테러용의자가 아니라 일반인들의 정보를 왜 수집하는지 모르겠다. 콘돌도 스노든처럼 도망다니다가 CIA가 감시하는 정보를 역으로 이용했다. 정보를 철저하게 관리했다면 콘돌은 살 수 없었을 것이다.


스파이 소설의 긴장감은 이유도 모르고 좇고 좇기고, 추악한 진실이 서서히 밝혀질 때 생긴다. 사이사이 등장하는 로맨스는 긴장감에 불을 붙인다. 이 소설도 마찬가지였다. 거기다 콘돌은 오랫동안 스파이 업무에 종사해서 (<콘돌의 6일>당시 배경은 1970년대 중반이고 <콘돌의 마지막 날들> 당시 배경은 2013년 보스턴 폭탄 테러 이전이다.) 망상에 시달리고 망상은 불안감을 고조시킨다. 하지만 무엇보다 백미는 감시 통제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CIA 국장이 역설하는 여섯 페이지였다.


국장은 높은 가치를 위해서는 불법을 저질러야 하며, 통제를 왜 하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누가 통제하느냐가 문제라고 말했다. 조지 오웰의 <1984>가 떠올랐다. 국장이 필요하다고 주장한 프로그램의 이름은 '빅 어스(Big Us)' 여서 그것이 조지 오웰의 '빅 브라더'를 연상시키기도 했고 어스(Us)라는 이름이 미국을 연상시키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1984>가 아마존 베스트셀러가 되었다는 뉴스까지 생각이 나 온 몸이 찌릿했다.

"빅 브라더는 세상에 없어. 빅 어스(Big Us)만 있을 뿐이야. 그리고 그 우리에는 당신(u)하고 s가 있는데, s는 시스템(system)을 뜻할 수도 있고, 반드시 존재를 알면서 살아야 할 필요까지는 없는 똥 덩어리(shit)를 뜻할 수도 있어. 하지만 자네가 선택한 기회를 가질 경우, 숫자로 세어지는 사람이 되기보다는 숫자를 세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도록 하라고. 이보게. 내 친구, 내 전우, 내 동료, 그냥 u가 되는 건 엿 같은 일이야. 하지만 s에 연결되는 u가 되는 건, 그렇게 us가 되는 건......그건 할 만한 가치가 있는 무슨 일인가를 할 수 있는 곳에서 살아가는 인생이야...(중략)...중요한 건 us의 정신과 혼을 대표하는 사람이 누구냐, 통제하는 사람이 누구냐 하는 거야. 전체적인 상황이 얼마나 끔찍하게 잘못될 수 있는지를 아는 누군가가 그 일을 맡아야 하는 거야...(중략)...V는 그 수준을 넘어서서 진행된 프로그램이야. 우리는 전쟁 전체를 이런 식으로 싸워나가게 될 거야. 인생 전체를 이런 식으로 살아가게 될 거야. 우리는 모두 한데 접속돼 있어. 꽤 이른 시간 내에 우리(the we)보다 접속(the wire)이 더 중요해질 거야. 자네가 그건 그리 영리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더라도, 자네 생각은 중요치 않아. p453-455

"지식은 그 소유자의 수준에 알맞은 수준으로 찾아오는 거예요." 페이가 말했다. "다음에는 압도적인 분량의 데이터가 몰려올 거요." 콘돌이 말했다. "사전에 철저하게 계산을 마친 상태에서 엉뚱한 방향으로 산탄총을 난사하는 거지. 모든 ‘사실들‘로, 그 많은 데이터로 사람들이 훤히 볼 수 있는 곳에 엄청난 비밀을 숨기는 수법을 쓸 거요." p317

* 콘돌은 무척이나 많은 누군가가 그가 죽거나 침묵하기를 원했던 곳, 또는 그가 그들이 합리적이라고 말하는 것의 노예가 되기를 원했던 곳인 대리석 꿈들의 도시에서 묘비들이 이룬 정원 가운데에 그를 따라다니는 유령들과 함께 서 있었다. 바람이 나무를 흔들었고 하늘은 푸르렀으며 그는 저 멀리로 훨훨 날아갈 수가 없었다.
네가 거짓말쟁이가 되지 않는 유일한 방법은 참된 존재가 되기 위해 싸우는 것 뿐이야. p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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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이름의 이야기 나폴리 4부작 2
엘레나 페란테 지음, 김지우 옮김 / 한길사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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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레나 페란테의 <나폴리 4부작>은 레누와 릴라라는 두 친구를 축으로 진행된다. <새로운 이름의 이야기 - 나폴리 4부작 중 2부>는 청소년기에서 20대 초반의 이야기이다. 주인공들은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며, 장사를 하고 공부를 한다.


두 소녀가 성장하며 인식이 넓어지고, 사랑과 인생에서 주체적인 여성으로 눈을 뜨는 것을 보니 샬럿 브론테의 <제인 에어>, 루이자 메이 올컷의 <작은 아씨들>, 루시 모드 몽고메리의 <빨간 머리 앤>같은 느낌이 났다.


이런 류의 이야기가 내 독서취향과 맞지 않아 잘 읽지 않는데 <나폴리 4부작>도 처음에는 턱을 괴고 심드렁하게 페이지를 넘겼다가 어느새 이야기에 빠져 들어, 새벽 1시에 혼자, 헉! 레누한테 왜 저런 일이....해 뜰때까지 읽었다.


<나폴리 4부작>은 <제인 에어>, <작은 아씨들>, <빨간 머리 앤>보다 더 격정적이다. 레누와 릴라. 두 친구를 축으로 질투, 애증, 허세, 그리움, 사랑같은, 인물들의 심리적 거리에서 태어날 수 있는 모든 것이 두드러졌다. 여성의 심리가 섬세하게 묘사되었다.


예컨대, 난 네 남편을 사랑해. 네 남편의 아이를 가졌어. 이 더러운 집안 꼴 좀 봐. 네 남편이 너무 불쌍해. 나는 네 남편을 행복하게 해줄거야. 넌 여기를 떠나야 돼. 안 그러면 네 애를 죽여 버릴거야... 자기 남편과 내연관계이며 아이를 가졌다고 집에 와서 난리치는 여자를 보고 릴라가 차분히 듣고 있다가 “너 지금 네 어머니처럼 행동하고 있어.” 감정없이 말하는 대목이 좋았다. 머리끄댕이를 쥐어 뜯어도 부족할 판에, 차분히 듣고 감정을 뺀 응수라니, 그 여자의 어머니가 유부남한테 버림받고 동네가 떠나갈 듯 행패를 부렸던 과거와, 그 때의 충격으로 어머니가 정신병에 걸린 현재를 떠올리며 릴라가 쓸쓸함과 동정심을 느꼈기 때문이다. 남성중심사회와 가난이 여성을 어떻게 만드는지 알리는 릴라의 목소리가 적적했다.


소설의 배경이 2차 대전 이후 가난한 나폴리라는 것도 이 소설을 격정적으로 만든다. 가난한 동네주민들은 서로 악다구니를 하고, 무식하고 잘 사는 것에만 혈안이 된 사람과 무식하기에 공부를 하려는 사람이 공존한다. 검은 손은 가난한 주민들을 쥐어 짜며 주민들은 욕을 하면서도 순응하며 살아간다.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관습과 자유가 부딪친다.


격동의 시간 속에서 레누와 릴라는 그리워하고 질투한다. 응원하고 경쟁한다. 둘은 한 몸 같았다. 한 몸이 되어야만 격동의 시간을 이겨낼 수 있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 전 아름다움이란 속임수라고 생각해요...(중략)... 네. 어느 청명한 날의 바다처럼요. 아니면 석양이라고도 할 수 있겠죠. 밤하늘이라고도 할 수 있고요. 아름다움이란 공포 위에 뿌린 가루와도 같아서 아름다움을 걷어내면 우리는 홀로 각자의 두려움과 마주하게 되는 거죠. p452

* 평생 릴라는 ‘경계의 해체’ 현상이 사물보다 사람에게 더 심각하게 나타날 뿐만 아니라 그 형태가 허물어져버릴 수 있다는 사실을 가장 두려워했다. 지난날 가족 중에서 가장 사랑했던 오빠의 경계가 무너져 내리는 것을 보고 기운을 잃었고 스테파노가 약혼자에서 남편으로 변모하는 과정에서 망가지는 것을 보고서도 큰 충격을 받았다.
나는 릴라의 공책을 보고서야 첫날밤 경험이 릴라에게 얼마나 큰 상처로 남았는지 알게 되었다. 내면의 욕망과 분노 때문에 또는 음흉한 계획이나 비열함 때문에 남편이 기형적인 모습으로 변할까봐 얼마나 두려워했는지 알게 되었다. 밤에 눈을 뜰 때마다 남편이 변형된 상태로 침대에 누워 있을까봐 두려움에 떨었다. 남편이 물집 같은 것으로 변할까봐 두려워했다. 체액으로 꽉 차서 물집이 터지면 살이 흐물흐물해져 흘러내릴 것을 두려워했다. 가구와 아파트와 스테파노의 아내인 릴라 자신까지도 주변의 모든 것과 함께 부서져서 살아 숨 쉬는 더러운 그 물질에 흡수될까봐 두려워했다. p496-497

* 만약 릴라가 나 대신에 노르말레 대학에 입학했다면 릴라도 나처럼 힘든 상황에서도 언제나 최선을 다했을까. 로마 출신 여학생의 뺨을 때렸을 때, 나는 릴라의 영향을 얼마나 받은 것일까. 멀리 떨어져 있는 릴라가 어떻게 내 가식적인 온화함을 걷어내고 내게 필요한 결단력을 주었으며 욕설까지 퍼붓게 만들었을까. 나는 어디까지 릴라의 영향을 받은 것일까. 망설임과 두려움 속에서도 결국은 프랑코의 방에서 그와 함께 시간을 보내게 된 것도 릴라의 과감함을 배웠기 때문이었다. 프랑코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와 내 말라붙은 감성에 대해 깨달았을 때의 불만도 릴라가 진정한 사랑이란 어떤 것인지 보여주지 않았다면 느낄 수 없었을 것이다....(중략)... 릴라의 삶은 계속해서 내 삶에 투영된다. 내 말에서는 릴라가 한 말의 메아리가 느껴지고 내 결연한 행동은 릴라의 행동을 재각색한 것이다. 내 부족함은 릴라의 과함 때문이었고 내 과함은 릴라의 부족함을 보완하기 위함이었다. p470-471

* 릴라는 불현듯 어린 시절 우리에게 희망이자 위안이었던 부자가 되겠다는 꿈이 머리에서 사라져버린 것을 깨달았다...(중략)... 돈과 소유욕의 관계는 그녀를 실망시켰다. 자신을 위해서도 곧 태어날 아이를 위해서도 바라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릴라에게 부유해지는 것이란 니노를 가지는 것이었다. 니노가 떠나버린 지금 릴라는 가난해졌다. 돈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빈곤함이었다. p513

* 사실 살아가면서 승리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고, 자신의 인생은 나만큼이나 다양하고 무모한 모험으로 가득하며 시간은 그저 별 의미없이 흘러가기 마련이니 가끔 이렇게 만나 한 사람의 머릿속에 떠오른 터무니없는 생각과 다른 사람의 머릿속에 메아리치는 정신 나간 생각을 나누는 것도 좋지 않겠느냐고 말하고 있는 것이었다. p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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