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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이름의 이야기 ㅣ 나폴리 4부작 2
엘레나 페란테 지음, 김지우 옮김 / 한길사 / 2016년 12월
평점 :
품절
엘레나 페란테의 <나폴리 4부작>은 레누와 릴라라는 두 친구를 축으로 진행된다. <새로운 이름의 이야기 - 나폴리 4부작 중 2부>는 청소년기에서 20대 초반의 이야기이다. 주인공들은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며, 장사를 하고 공부를 한다.
두 소녀가 성장하며 인식이 넓어지고, 사랑과 인생에서 주체적인 여성으로 눈을 뜨는 것을 보니 샬럿 브론테의 <제인 에어>, 루이자 메이 올컷의 <작은 아씨들>, 루시 모드 몽고메리의 <빨간 머리 앤>같은 느낌이 났다.
이런 류의 이야기가 내 독서취향과 맞지 않아 잘 읽지 않는데 <나폴리 4부작>도 처음에는 턱을 괴고 심드렁하게 페이지를 넘겼다가 어느새 이야기에 빠져 들어, 새벽 1시에 혼자, 헉! 레누한테 왜 저런 일이....해 뜰때까지 읽었다.
<나폴리 4부작>은 <제인 에어>, <작은 아씨들>, <빨간 머리 앤>보다 더 격정적이다. 레누와 릴라. 두 친구를 축으로 질투, 애증, 허세, 그리움, 사랑같은, 인물들의 심리적 거리에서 태어날 수 있는 모든 것이 두드러졌다. 여성의 심리가 섬세하게 묘사되었다.
예컨대, 난 네 남편을 사랑해. 네 남편의 아이를 가졌어. 이 더러운 집안 꼴 좀 봐. 네 남편이 너무 불쌍해. 나는 네 남편을 행복하게 해줄거야. 넌 여기를 떠나야 돼. 안 그러면 네 애를 죽여 버릴거야... 자기 남편과 내연관계이며 아이를 가졌다고 집에 와서 난리치는 여자를 보고 릴라가 차분히 듣고 있다가 “너 지금 네 어머니처럼 행동하고 있어.” 감정없이 말하는 대목이 좋았다. 머리끄댕이를 쥐어 뜯어도 부족할 판에, 차분히 듣고 감정을 뺀 응수라니, 그 여자의 어머니가 유부남한테 버림받고 동네가 떠나갈 듯 행패를 부렸던 과거와, 그 때의 충격으로 어머니가 정신병에 걸린 현재를 떠올리며 릴라가 쓸쓸함과 동정심을 느꼈기 때문이다. 남성중심사회와 가난이 여성을 어떻게 만드는지 알리는 릴라의 목소리가 적적했다.
소설의 배경이 2차 대전 이후 가난한 나폴리라는 것도 이 소설을 격정적으로 만든다. 가난한 동네주민들은 서로 악다구니를 하고, 무식하고 잘 사는 것에만 혈안이 된 사람과 무식하기에 공부를 하려는 사람이 공존한다. 검은 손은 가난한 주민들을 쥐어 짜며 주민들은 욕을 하면서도 순응하며 살아간다.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관습과 자유가 부딪친다.
격동의 시간 속에서 레누와 릴라는 그리워하고 질투한다. 응원하고 경쟁한다. 둘은 한 몸 같았다. 한 몸이 되어야만 격동의 시간을 이겨낼 수 있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 전 아름다움이란 속임수라고 생각해요...(중략)... 네. 어느 청명한 날의 바다처럼요. 아니면 석양이라고도 할 수 있겠죠. 밤하늘이라고도 할 수 있고요. 아름다움이란 공포 위에 뿌린 가루와도 같아서 아름다움을 걷어내면 우리는 홀로 각자의 두려움과 마주하게 되는 거죠. p452
* 평생 릴라는 ‘경계의 해체’ 현상이 사물보다 사람에게 더 심각하게 나타날 뿐만 아니라 그 형태가 허물어져버릴 수 있다는 사실을 가장 두려워했다. 지난날 가족 중에서 가장 사랑했던 오빠의 경계가 무너져 내리는 것을 보고 기운을 잃었고 스테파노가 약혼자에서 남편으로 변모하는 과정에서 망가지는 것을 보고서도 큰 충격을 받았다. 나는 릴라의 공책을 보고서야 첫날밤 경험이 릴라에게 얼마나 큰 상처로 남았는지 알게 되었다. 내면의 욕망과 분노 때문에 또는 음흉한 계획이나 비열함 때문에 남편이 기형적인 모습으로 변할까봐 얼마나 두려워했는지 알게 되었다. 밤에 눈을 뜰 때마다 남편이 변형된 상태로 침대에 누워 있을까봐 두려움에 떨었다. 남편이 물집 같은 것으로 변할까봐 두려워했다. 체액으로 꽉 차서 물집이 터지면 살이 흐물흐물해져 흘러내릴 것을 두려워했다. 가구와 아파트와 스테파노의 아내인 릴라 자신까지도 주변의 모든 것과 함께 부서져서 살아 숨 쉬는 더러운 그 물질에 흡수될까봐 두려워했다. p496-497
* 만약 릴라가 나 대신에 노르말레 대학에 입학했다면 릴라도 나처럼 힘든 상황에서도 언제나 최선을 다했을까. 로마 출신 여학생의 뺨을 때렸을 때, 나는 릴라의 영향을 얼마나 받은 것일까. 멀리 떨어져 있는 릴라가 어떻게 내 가식적인 온화함을 걷어내고 내게 필요한 결단력을 주었으며 욕설까지 퍼붓게 만들었을까. 나는 어디까지 릴라의 영향을 받은 것일까. 망설임과 두려움 속에서도 결국은 프랑코의 방에서 그와 함께 시간을 보내게 된 것도 릴라의 과감함을 배웠기 때문이었다. 프랑코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와 내 말라붙은 감성에 대해 깨달았을 때의 불만도 릴라가 진정한 사랑이란 어떤 것인지 보여주지 않았다면 느낄 수 없었을 것이다....(중략)... 릴라의 삶은 계속해서 내 삶에 투영된다. 내 말에서는 릴라가 한 말의 메아리가 느껴지고 내 결연한 행동은 릴라의 행동을 재각색한 것이다. 내 부족함은 릴라의 과함 때문이었고 내 과함은 릴라의 부족함을 보완하기 위함이었다. p470-471
* 릴라는 불현듯 어린 시절 우리에게 희망이자 위안이었던 부자가 되겠다는 꿈이 머리에서 사라져버린 것을 깨달았다...(중략)... 돈과 소유욕의 관계는 그녀를 실망시켰다. 자신을 위해서도 곧 태어날 아이를 위해서도 바라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릴라에게 부유해지는 것이란 니노를 가지는 것이었다. 니노가 떠나버린 지금 릴라는 가난해졌다. 돈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빈곤함이었다. p513
* 사실 살아가면서 승리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고, 자신의 인생은 나만큼이나 다양하고 무모한 모험으로 가득하며 시간은 그저 별 의미없이 흘러가기 마련이니 가끔 이렇게 만나 한 사람의 머릿속에 떠오른 터무니없는 생각과 다른 사람의 머릿속에 메아리치는 정신 나간 생각을 나누는 것도 좋지 않겠느냐고 말하고 있는 것이었다. p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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