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여자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소설선집
세르게이 도블라토프 지음, 서상국 옮김 / 지식을만드는지식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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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 헨리의 <마지막 잎새>에서 폐렴에 걸린 존시는 곧 죽을 것이라는 부정적인 생각에 빠져 있다가 담쟁이 잎이 강한 폭풍우에도 떨어지지 않는 것을 보고 자신이 가졌던 부정을 반성한다. 삶의 의지를 품는다.


세르게이 도브라토프의 <외국 여자>를 읽고 오 헨리의 <마지막 잎새>가 생각났다. <외국 여자>에서 왜 사람들 중에 명랑한 사람들보다는 우울한 사람들이 더 많지요?” 라는 주인공 무샤의 물음에, 대사관 직원 로기노프는 이렇게 대답한다. “우울한 척하기가 더 쉽기 때문이지요.”(p160).


주인공 무샤는 러시아에서 사랑에 실패하고 생활수준이 하락한 뒤 현실에서 탈출하려 미국으로 이민가지만,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미국에서도 사랑에 실패하고 생활고는 더 심해진다. 자신의 바람과 상관없이 인생은 흘러간다. 모든 것이 잘못되어 가는 인생에서 무샤는 명랑한 척 하지 못하는데 그렇다고 우울한 척 하지도 못한다. 될대로 되라 식으로 인생 다 포기한 것처럼, 또는 누가 이기나 한번 해보자. 내 인생에 반항하는 것처럼. 무샤가 살아가는 색깔은 진짜 우울이다.


<외국 여자>에서 일련의 사건들을 읽고 나면 유머 때문에 웃음이 나는데 웃고 나면 쓸쓸함이 느껴진다. 무샤의 우울과 고통은 유머 밑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진짜 코미디는 웃음 속에 고통이 있는, 또는 고통을 웃음으로 이겨내는 페이소스에 있기에 무샤의 인생은 진짜 코미디이다.


존시가 마지막 잎새를 봤던 것처럼 무샤도 무언가를 보며 소설은 끝난다. 이제 삶에 대한 의지를 갖게 되었으니 앞으로 무샤의 삶은 예전과는 다를 것이다. 그것이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거나 갖고 싶은 것을 다 가지는 식이 되지는 않겠지만, 자기부정이 되지 않을 것임은 확실하다. 희망은 마지막 잎새처럼 거창하지 않은 것이고 마음 속에 그것 하나 붙잡고 나아가는 것이니. 나 또한 마지막 잎새같은 것을 마음 속에 가지고 있다. 내 인생은 항상 실패의 연속이었고 내세울 것 하나 없지만 나는 소박한 그것을 꼭 붙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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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한 마리가 술집에 들어왔다
다비드 그로스만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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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스 배러클러프는 <여공문학 - 섹슈얼리티, 폭력 그리고 재현의 문제> 에서 1970~1980년대 한국 공장에서 노동착취당하고 성폭력을 당한 여공들이 일기와 소설을 쓰면서 ‘자기 자신’으로 존재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아폴론이 시의 신이자, 치료의 신이었던 것처럼 시를 쓰는 것 나아가 일기와 소설을 쓰는 것은 나를 치료한다. 자기 목소리를 낼 때 우울, 분노, 불안, 슬픔 같은 감정이 치유될 수 있다.

한국 여공들이 글쓰기로 치유했다면 다비드 그로스만의 <말 한 마리가 술집에 들어왔다> 에서 코미디언은 말하기로 치유한다. 코미디언은 스탠딩 코미디를 하는데 농담 안에는 자신의 이야기가 자신의 목소리로 들어 있다. 농담은 유년시절을 거슬러 가고 관객이 잊고 싶어하는 기억을 들춰낸다. 그가 말하는 이스라엘 역사는 동시대를 산 이스라엘 사람들이 똑같이 경험한 역사이고 그의 가족 이야기는 곧 나의 가족 이야기기도 하다.

코미디언의 농담은 성적이고 폭력적이어서 불편했다. 이야기도 지루했다. 하지만 농담이 불편을 느끼게 하는 것은 코미디언이 가진 상처가 그만큼 깊다는 뜻이고, (아...상처를 가진 사람이 남에게 상처를 쉽게 줄 때 그가 가진 부정의 감정은 얼마나 크기 때문인가.) 장황한 이야기는 내면의 고통을 찾아가는 길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보여 준다.

코미디언이 이야기를 끝내자 페르난도 페소아가 말했다는, “그냥 존재하는 것만으로, 얼마든지 완전해질 수 있다. p316.” 라는 말이 등장한다. 그것은 코미디언이 나의 이야기를 끝냈기 때문에 부정의 감정이 치유될 것이라는 뜻이다. 드디어 ‘자기 자신’으로, 완전하게 존재하게 될 것이라는 뜻이다.

소설은 코미디쇼 하나를 통째로 보여준다. 코미디쇼에 내가 관객으로 참여한 것 같았다. 코미디쇼가 끝나자 소설도 끝났다. 나는 깨끗한 대학노트 한 권을 책장에서 꺼내 날짜를 썼다. 지금부터 매일 일기를 쓸 것이다. 시를 쓸 것이다. 그러면 코미디언이 그러했듯이, 70~80년대 여공이 그러했듯이 내 안의 부정을 이겨내며 ‘내 자신’으로 존재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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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삶의 철학
엠리스 웨스타콧 지음, 노윤기 옮김 / 책세상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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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리스 웨스타콧이 <단순한 삶의 철학>에서 단순하게 사는 것의 철학적 의미를 플라톤부터 아리스토텔레스, 헨리 데이빗 소로, 마르크스, 니체...성찰하는 것을 보고 있으니 단순한 삶은 이기심에 대한 반작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기심은 기술을 발전시키고 일도 하게 만들어 세상을 윤택하게 만들지만 사치와 허영에 빠지게 만들어 공허함을 준다. 반면 단순한 삶은 욕심을 버리게 하고 TV가 주도하는 이미지에서 떠나게 한다.


엠리스 웨스타콧은 이기심이 낫냐 단순한 삶이 낫냐. 두 명제를 철학적, 경제적, 기술적 관점에서 비교할 뿐이지만 나는 이기심이 우선이고 단순한 삶은 이기심에 뒤따를 뿐이라고 주장한다. 내가 생각하기에 인간은 고통을 싫어하고 쾌락을 지향하는 존재인데, 무소유의 기쁨보다는 소유의 기쁨을 더 좋아한다.


예컨대 한국만 하더라도 한국전쟁후 한국이 경제성장을 했을 때 한국인들이 단순한 삶을 동경했다면 경제성장이 되지 않았을 것이고 한국인들은 폐허가 된 채 원시시대로 살았을 것이다. 잘 살아보세 하는 욕구. 그 이기심은 일을 하게 하고 공부를 하게 만들었고 한국이 폐허에서 일어나게 되었다.


지금 한국 사회는 단순한 삶을 말한다. 한병철씨가 <피로사회>에서 말한 것처럼 우울증, 소진증후군 같은 신경증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귀향 움직임’은 신경증에서 스스로 벗어나겠다는 의지이고 ‘노동 인권’에 대한 관심은 정치 행동으로 신경증에서 벗어나겠다는 의지이다. 이기심으로 달려온 한국사회가 단순한 삶을 말하는 것이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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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쟈와 함께 읽는 문학 속의 철학
이현우 지음 / 책세상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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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쟈 이현우 선생이 가지고 있는 독서의 질은 깊고 넓다. <문학 속의 철학>을 읽는데 로쟈 선생이 문학 작품에서 과학, 철학, 성, 종교, 역사를 끄집어내니 세계가 온전히 들어 있는 것 같았다. 

책은 강의형식이라 가독성이 좋다. 로쟈 선생이 은근히 툭 던지는 유머 때문에 낄낄대며 읽었다. 이를테면, ‘도스토옙스키 소설에서는 시간이 다 압축되어 있습니다.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은 분량이 그렇게 방대한 소설인데 작품 속 주요 사건은 사흘 동안 일어납니다. 사흘 동안 다 읽지도 못하겠어요.p150’ 같은 것이다.

이 책은 박이문 선생이 <문학 속의 철학>에서 언급한 문학작품들을 그대로 가져와 로쟈의 식대로 풀이를 한다. 박이문 선생의 <문학 속의 철학>에 대한 오마쥬, 또는 다시 읽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번역이 시대에 따라 달라져야 하듯 다시 읽기도 시대마다 달라져야 한다. 볼테르의 <캉디드 혹은 낙관주의>를 읽으며, 로쟈 선생이 스티븐 제이 굴드와 리처드 도킨스의 학설을 비교하는 것은 박이문 선생은 할 수 없었던 일이고 로쟈 선생은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렇게 보니 로쟈 선생의 <러시아 문학강의>도 나보코프가 쓴 동명의 책에 대한 오마쥬, 또는 다시 읽기가 아닌가 싶은데 그 책도 읽고 싶다.

책의 부제는 ‘로쟈와 함께 읽는’ 이지만 로쟈 선생한테 많이 배웠다. 재밌는 책을 읽어서 기분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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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 철학자의 생각법 - 사유의 풍경으로 걸어 들어가다
로제 폴 드루아 지음, 백선희 옮김 / 책세상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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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다가 가진 사전적인 의미인 어떤 곳을 다리를 번갈아 움직여 위치를 옮기다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가다의 두 가지로 철학사를 정리할 수 있다니 저자의 아이디어가 기발하다. 엠페도클레스부터 비트겐슈타인까지 걸음(산책)’으로 철학사를 아주 쉽게 이야기한다. 예컨대 2장의 제목은 프로타고라스의 왕복운동인데 그것은 소피스트들의 궤변을 의미할 것이다. 소크라테스가 프로타고라스한테 한 판 붙자고 했다고 저자는 썼고 그 또한 플라톤의 <소크라테스의 변론>에서 소크라테스가 소피스트들을 비판한 이야기와 연관이 있다.

 

철학사라고 할 때 흔히 서양의 철학사만 말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 책에서는 붓다, 공자, 샹카라같은 동양 철학자도 말해서 좋았다. 다만 사도 바울, 성 아우구스투스같은 기독교 사상가가 없고 후설이나 하이데거 같은 현대 철학자도 없다. 또한 여성 철학자도 없다. 성녀 힐데가르트, 한나 아렌트, 로자 룩셈부르크 같은 여성 철학자의 걸음(산책)’ 은 어떠했을지 보고 싶었는데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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