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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한 마리가 술집에 들어왔다
다비드 그로스만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4월
평점 :
루스 배러클러프는 <여공문학 - 섹슈얼리티, 폭력 그리고 재현의 문제> 에서 1970~1980년대 한국 공장에서 노동착취당하고 성폭력을 당한 여공들이 일기와 소설을 쓰면서 ‘자기 자신’으로 존재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아폴론이 시의 신이자, 치료의 신이었던 것처럼 시를 쓰는 것 나아가 일기와 소설을 쓰는 것은 나를 치료한다. 자기 목소리를 낼 때 우울, 분노, 불안, 슬픔 같은 감정이 치유될 수 있다.
한국 여공들이 글쓰기로 치유했다면 다비드 그로스만의 <말 한 마리가 술집에 들어왔다> 에서 코미디언은 말하기로 치유한다. 코미디언은 스탠딩 코미디를 하는데 농담 안에는 자신의 이야기가 자신의 목소리로 들어 있다. 농담은 유년시절을 거슬러 가고 관객이 잊고 싶어하는 기억을 들춰낸다. 그가 말하는 이스라엘 역사는 동시대를 산 이스라엘 사람들이 똑같이 경험한 역사이고 그의 가족 이야기는 곧 나의 가족 이야기기도 하다.
코미디언의 농담은 성적이고 폭력적이어서 불편했다. 이야기도 지루했다. 하지만 농담이 불편을 느끼게 하는 것은 코미디언이 가진 상처가 그만큼 깊다는 뜻이고, (아...상처를 가진 사람이 남에게 상처를 쉽게 줄 때 그가 가진 부정의 감정은 얼마나 크기 때문인가.) 장황한 이야기는 내면의 고통을 찾아가는 길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보여 준다.
코미디언이 이야기를 끝내자 페르난도 페소아가 말했다는, “그냥 존재하는 것만으로, 얼마든지 완전해질 수 있다. p316.” 라는 말이 등장한다. 그것은 코미디언이 나의 이야기를 끝냈기 때문에 부정의 감정이 치유될 것이라는 뜻이다. 드디어 ‘자기 자신’으로, 완전하게 존재하게 될 것이라는 뜻이다.
소설은 코미디쇼 하나를 통째로 보여준다. 코미디쇼에 내가 관객으로 참여한 것 같았다. 코미디쇼가 끝나자 소설도 끝났다. 나는 깨끗한 대학노트 한 권을 책장에서 꺼내 날짜를 썼다. 지금부터 매일 일기를 쓸 것이다. 시를 쓸 것이다. 그러면 코미디언이 그러했듯이, 70~80년대 여공이 그러했듯이 내 안의 부정을 이겨내며 ‘내 자신’으로 존재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