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무리 GD 시리즈
닉 페인 지음, 성수정 옮김, 구현성 그래픽 / 알마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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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 페인의 희곡 <별무리>는 재밌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희곡은 커플의 대화를 반복적으로 보여준다. 커플의 대화가 끝나면 같은 대화가 비슷하게 되풀이 된다. 그것이 끝나면 비슷한 대화가 또 되풀이 된다. 커플의 대화 하나로만 보면 대화는 끝난 것이지만, 그 다음에 비슷한 대화가 이어지니 대화는 끝나지 않은 것이 된다. 대화의 끝을 개체의 죽음이라고 해보자. 그러면 대화의 끝(개체의 죽음)은 다른 대화의 시작(개체의 탄생)으로 연결되니, 크게 보면 대화(개체)는 죽지 않은 것이 된다. 희곡 속에서 한 인물의 죽음이 예견되지만 이런 구조를 가지고 있기에 희곡이 정녕 말하는 것은 죽음이 아니라 불멸일 것이다.

 

별의 생애가 그러하다. 죽음과 탄생이 이어지면서 성장한다. 별은 소멸한 뒤 다른 별의 재료가 된다. 별은 죽지만 다른 별은 태어나니 우주 전체로 보면 별은 죽지 않고 영원히 산다. 희곡에는 <별무리>라는 제목이 붙어 있고, 인물의 직업은 천체물리학자이다. 닉 페인은 이런 설정으로 탄생-죽음-탄생-죽음-탄생->불멸이라는 의미를 암시하려고 한 듯하다.

 

보르헤스도 이런 식으로 글을 썼다. 보르헤스의 글쓰기 특징은 다시쓰기인데, 보르헤스는 완결된 과거의 작품을 다시 써서 새롭게 완결시켰다. 다시 쓰고 다시 쓰는 식으로 보르헤스의 문학은 나아갔다. 보르헤스는 죽음을, 하나의 삶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삶으로 이행되는 것으로 봤다. 보르헤스한테 삶은 다른 삶으로 이행되며, 불멸한다.

 

5년 전 닉 페인의 <별무리>가 한국에서 초연되었을 때(5년 전에 공연을 못 봐서 너무 속상하다...) 류주연 연출가는 기자간담회에서 공연을 이렇게 소개했다고 한다. 심장질환을 앓던 아버지가 사망한 뒤 닉 페인은 물리학자의 다큐멘터리 우아한 우주'(Elegant Universe)를 우연히 접했고, 그때 양자 평행우주이론에 심취해서 이 작품을 썼다고. 닉 페인은 아버지를 애도한다. 별이 그러한 것처럼, 보르헤스가 그러한 것처럼. 아니나 다를까 희곡 속지에는, “미나에게, 그리고 이 희곡을 아빠에게 바칩니다.” 라고 쓰여 있다. 굉장히 좋은 작품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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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란한 세상 을유세계문학전집 96
레이날도 아레나스 지음, 변선희 옮김 / 을유문화사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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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날도 아레나스의 <현란한 세상>에 동물이 있다. , 사자, 나귀, 콘도르, 전갈, , 고래... 동물은 말을 하고 수사를 움켜 쥔다. 동물들은 수사를 구속하는 장면에서 나오고, 동물한테서 부각되는 것은 끔찍한 것. 이를테면 흉포함, 위압감, 간교함이다. (그래서 동물이라기 보다는 짐승이라고 부르는 게 나을 것 같다.)

 

이런 상황이 낯설지 않았다. 나는 삶에서 짐승을 보곤 했는데 짐승은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이었다. 뒷통수 치는 직장 동료가 나한테는 뱀이었고, 당신이 했잖아. 떠넘기는 직장 상사가 사나운 침팬지였고, 눈치 없는 직장 후배가 곰이었다. 그때 나는 그들의 눈에 생쥐, 돌맹이, 잡초였을 것이다. 하지만 어쩌면, 어쩌면 나도 누군가에게 뱀, 침팬지, 곰이었는지 모른다. 나는 양이었다고 믿고 싶지만...소설에서 짐승이 말을 하는 대목이 환상적이면서 동시에 현실적이었던 것이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소설의 시점 변화가 매우 흥미로웠다. 1인칭, 2인칭, 3인칭. 다양한 시점이 나오는데, 특히 1인칭 시점으로 사건을 서술하고, 이야기가 끝나자 같은 장면을 3인칭 시점으로 다시 서술하는 대목은 정말 좋았다. 두 가지 시점이 한 이야기를 서술한다. 그러자 소설은 객관적이면서 주관적이 되었고, 일기면서 역사서가 되었다. 들은 이야기면서 말하는 이야기가 되었고, 내 이야기이면서 남의 이야기가 되었고, 환상이면서 실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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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으로 읽는 스페인 근현대사 - 우리에게 낯설지만 결코 낯설지 않은 스페인 이야기
서희석 지음, 이은해 감수 / 을유문화사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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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서를 읽는 재미 중 하나는 현재를 발견하는 것이다. 현재는 과거라는 뿌리를 가지고 있고, 미래 또한 현재라는 뿌리를 가지고 있기에 미래는 과거에서 자란 나무이다. <한 권으로 읽는 스페인 근현대사>를 읽는데 현재의 세계가 보였다.

이를테면 모리스코한테서 지금의 난민, 외국인 노동자가 생각났다. 가톨릭국가인 스페인에서 이슬람 방식으로 살아가며 차별받던 모리스코 집단이 펠리페 3세 시기에 추방되었다. 이들은 주로 농촌에서 힘든 일을 하며 살아가고 있었고, 당시 스페인은 전쟁, 전염병으로 인구가 줄어들던 차여서 스페인 경제가 타격을 입었다. 추방된 모리스코는 해적이 되어 스페인 선박을 공격하거나 스페인 지리를 잘 안다는 이점을 이용하여 스페인 해안가 마을을 약탈했다고 한다. (p65-67)

다문화는 서로 다른 문화를 허용하는 것이지 원주민의 문화를 강요하는 것이 아니다. 한국에 왔으니 한국방식을 따라야만 한다고 하는 것은, 그렇게 주장하는 원주민들은 이주민이 자신들 삶의 양식을 고수해서 원주민 사회에 불안을 일으킨다고 생각하겠지만 사실 불안은 원주민이 이주민한테 원주민의 방식을 강요할 때 생긴다.

모든 역사서는 예언서로 읽힌다. 예언서에서 무엇을 읽느냐는 역사서를 읽는 또 다른 재미인데 <한 권으로 읽는 스페인 근현대사>에서 왕들의 외교, 정치싸움을 보면 정치인들한테는 정치학 교과서로도 읽힐 것 같고, 자유로웠던 네덜란드 상인이야기나 땅투기를 한 레르마 공작 이야기는 돈버는 기술을 알려줄 것 같다. 나는 책에서 서술되지 않은 이야기를 생각하며 읽었다. 추방된 30만명의 모리스코 중에서 원주민 스페인 사람과 사랑에 빠진 커플이 있을텐데 그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궁금하다. 커플의 고백이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가 쓴 <세 강의 발라드> 라는 시와 같지 않겠는가. 

과달키비르강은 흐르네.
오렌지와 올리브 나무 사이로,
그라나다의 두 강은
눈 덮인 산에서 보리밭으로 흘러 내려오네.

아아, 사랑
가서는 돌아오지 않는

과달키비르강은
석류의 수염을 가졌네.

그라나다의 두 강은
하나는 눈물, 하나는 피라네.

아아, 허공으로 사라져버린
사랑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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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여기에 없었다
조너선 에임즈 지음, 고유경 옮김 / 프시케의숲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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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청부업자 조는 망치를 잡는다. 그는 던전으로 들어가고, 복수를 하며, ‘왜’라는 물음에 답을 쫓는다. 그것이 흡사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에 대한 오마주 같았다.

조너선 에임즈의 <나는 여기에 없었다>의 두 축은 살인청부업자 조와 상원의원이다. 폭력적인 아버지가 만든 트라우마와 부패한 아버지가 남긴 거래는 이 둘의 삶을 지배한다. 독백과 망상은 소설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는데 죽은 아버지는 아들의 정신 속에서 살아 있으니 그것이 당연하게 느껴졌다.

소설이 미완성처럼 끝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그 결말 때문에 속편을 기대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속편이 안 나왔으면 좋겠다. 그냥 이대로 끝났으면 좋겠다. 조너선 에임즈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이미 다 설명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 소설은 복수를 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부패를 척결하겠다는 것도 아니다. 아버지의 그늘 아래에 있는 아들. 축축한 땅 같은 아들을 보여주는 것이 작가가 의도한 바일 것이다. 불안, 긴장, 회한, 무자비함으로 뭉쳐져 있는 상처입은 한 인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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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촌 퐁스 을유세계문학전집 93
오노레 드 발자크 지음, 정예영 옮김 / 을유문화사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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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노레 드 발자크의 <인간극>이라는 시리즈는 한 작품에 나온 인물이 다른 작품에도 나온다. 인물들은 서로 얽혀 있어서 사건이 하나 생기면 이야기는 배로 늘어난다. 발자크는 137편으로 이 시리즈를 기획했다지만 완수하지 못하고 죽었는데 발자크가 살아서 시리즈를 완성시켰더라도 137편이 넘었을 것 같다. 각양각색의 인물들이 등장하여 한 세계를 만드는 것이니 어쩌면 365편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랬으면 의미심장했을 것 같다.

 

<사촌 퐁스>에서 등장인물들은 마음이 유약한 사촌 퐁스의 재산에 눈독을 들이는데 그 사회는 돈과 부모의 사회적 지위 때문에 결혼을 하고, 돈이나 명성이 없으면 무시당하는 물질만능주의가 팽배한 곳이었다. <사촌 퐁스>의 속물들이 생각하는 살기 좋은 세상은 공기 좋고 물 좋고, 인심 후한 곳이 아니다. 내가 돈 많이 가지고 있고 다른 이는 돈이 없는 세상이다. 이들은 사막에 있더라도 내가 돈이 많고 다른 이가 돈이 없으면 이곳은 정녕 살기 좋은 곳이라고 고백할 것이다. 내가 돈이 있어야 내 욕망을 끝없이 채울 수 있을테고, 타인이 돈이 없어야 타인과의 비교에서 만족을 느낄테니 말이다.

 

그런데 발자크가 묘사한 19세기 프랑스나 지금 한국이나 별 다른 게 없는 것 같다. 몽골인 친구 A군은 곧 한국여자와 결혼할 예정이라 지금 결혼준비 중인데 나보고 하는 말이,

 

. 한국에서는 결혼식 이렇게 해요? 돈이 너무 많이 들어가요. 왜 이렇게 하는지도 모르겠고.

그럼 여친한테 말해. 불필요한 건 없애자고. 몽골에서는 결혼식 그렇게 안한다고.

아니에요. 장모님하고 여자친구가 하자는 대로 해야죠. 일단 한국식으로 하기로 했거든요.

...한국식...

 

그건 한국식이 아니야. 라고 말하려다가 한국에서 다 이렇게 하면 한국식이 맞지. 한국식이 아니라고 어떻게 말할 수 있나. 싶어서 아무 말 할 수 없었다. “파리에서 사는 것은 욕망 전체에 노출되는 격이다. P 226” 라는 구절에 파리대신에 서울’ , ‘한국을 넣어도 이상할 게 하나도 없다.

 

발자크의 문체는 장황하다. 기자출신 작가들, 이를테면 김훈, 어니스트 헤밍웨이, 세르게이 도블라토프는 문체가 간결한데 발자크는 그렇지 않아서 흥미롭다. 기자출신인 존 스타인벡은 사건과 거리를 두는 문장을 쓰곤 했는데 발자크는 사건에 직접 개입해서 그것도 흥미롭다. 기자였던 조지 오웰과 장강명이 사회비판적인 소설을 쓴 것을 생각하면 발자크의 세태를 비판하는 소설에서, 기자 출신의 특색이 여기에 있다. 감히 성급한 일반화를 시켜보고 싶기도 하여 또 흥미롭고. <인간극>을 많이 읽고 싶다. 오랜만에 <인간극>시리즈가 출간되어 너무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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