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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란한 세상 ㅣ 을유세계문학전집 96
레이날도 아레나스 지음, 변선희 옮김 / 을유문화사 / 2019년 3월
평점 :
레이날도 아레나스의 <현란한 세상>에 동물이 있다. 쥐, 사자, 나귀, 콘도르, 전갈, 뱀, 고래... 동물은 말을 하고 수사를 움켜 쥔다. 동물들은 수사를 구속하는 장면에서 나오고, 동물한테서 부각되는 것은 끔찍한 것. 이를테면 흉포함, 위압감, 간교함이다. (그래서 동물이라기 보다는 짐승이라고 부르는 게 나을 것 같다.)
이런 상황이 낯설지 않았다. 나는 삶에서 짐승을 보곤 했는데 짐승은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이었다. 뒷통수 치는 직장 동료가 나한테는 뱀이었고, 당신이 했잖아. 떠넘기는 직장 상사가 사나운 침팬지였고, 눈치 없는 직장 후배가 곰이었다. 그때 나는 그들의 눈에 생쥐, 돌맹이, 잡초였을 것이다. 하지만 어쩌면, 어쩌면 나도 누군가에게 뱀, 침팬지, 곰이었는지 모른다. 나는 양이었다고 믿고 싶지만...소설에서 짐승이 말을 하는 대목이 환상적이면서 동시에 현실적이었던 것이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소설의 시점 변화가 매우 흥미로웠다. 1인칭, 2인칭, 3인칭. 다양한 시점이 나오는데, 특히 1인칭 시점으로 사건을 서술하고, 이야기가 끝나자 같은 장면을 3인칭 시점으로 다시 서술하는 대목은 정말 좋았다. 두 가지 시점이 한 이야기를 서술한다. 그러자 소설은 객관적이면서 주관적이 되었고, 일기면서 역사서가 되었다. 들은 이야기면서 말하는 이야기가 되었고, 내 이야기이면서 남의 이야기가 되었고, 환상이면서 실재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