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루세 미키오 <방랑기>. 영화는 후미코의 계속되는 고난을 보여주는데, 그 속에서 후미코의 얼굴은 우는 것보다 웃는 게 더 많았다. 괴로운 사람이 웃을 때 슬픔을 숨기려는 목적일 수도 있겠지만 영화에서 후미코는 받아들이고, 극복하려는 즉, 긍정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어서 웃는다. 동료 문인들은 고난을 그대로 보여주는 글을 쓰는 후미코를 쓰레기통의 뚜껑을 연다고 비판하지만, 전 남편도 말했듯이 그것은 진실된 것이다. 후미코는 삶을 진실되게 보기 때문에 울지 않는 것이다.

​후미코 역할을 맡은 타카미네 히데코의, 그늘과 빛이 섞인 얼굴이 인상적이었다. 후미코를 짝사랑하는 사다오카 노부오 역할을 맡은 카토 다이스케의 얼굴도 기억에 남는데, 그는 늘 후미코한테서 한 발짝 뒤로 떨어져 지켜보고 있다. 영화의 마지막. 성공한 후미코가 가꾼 정원을 보러 나가던 사다오카 노부오가 지쳐 엎드린 후미코를 걱정스레 보는 장면은 애틋했다. 사다오카 노부오가 그러는 것도 그가 진실되기 때문이다.

​영화를 보는데 가슴이 먹먹했다. 하지만 나는 이 영화를 인물이 겪은 고통이 아니라 진실된 삶을 연기하는 배우의 얼굴로 기억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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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만치 혼자서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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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태와 고래>. 주인공 이춘개를 포함해서 인물들의 특성을 자주 나타내는 말은 ‘알지 못한다’ 이다. 뱃사람이 고래가 어디로 향하는지 알지 못하고, 내 행동의 이유를 알고 있다며 말하라고 고문하는 사람이 왜 저러는지 알지 못한다. 인간이 자연 앞에서 알지 못한다고 할 때 그 말은 자연은 경이롭다는 의미를 담고 있겠으나 이념 앞에서 알지 못한다고 할 때 그 말은 인간이 슬프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후자에서 알지 못한다는 말은 이념의 폭력과 연결되곤 하기 때문이다. 국가는 내가 알지 못하는 것을 말하라고 하고, 알지 못하는 것을 알고 있었다고 하고, 알지 못하는 것을 했다고 하고, 알지 못하는 것을 알지 못한다고 했는데도 알지 못할리 없다며 때리고, 알지 못하는 것으로 죄를 묻는다. 알지 못하는데도 오랜 세월 갇혀 있다가 풀려난 이는 자신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알지 못하는데, 의문사라고 하는, 알지 못하는 이가 필연적으로 마주하는 죽음의 의미를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 소설을 관통하는 말은 ‘알지 못한다.’ 이고, 그 말은 가장 슬픈 말이다...


<영자>. 학원강사들은 수험생끼리 동거가 웬 말이냐고 정신차리라고 일갈하겠지만, 노량진에 있다는, 동거와 스터디를 합성한 기묘한 생활을 전해 들은지 오래 되었다. 처음 들었을 때 공무원 시험이 없어지지 않는 한 그 단어는 없어지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인간한테는 생존 본능이 있기 때문인데, 사랑을 받고 싶다는 외로움, 이 길 밖에 없다는 절박함, 공무원의 업무 능력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떨어뜨리기 위한 시험에서 합격하려는 막막함, 공부를 하면서 돈을 아껴야 하기에 아르바이트를 해야 하고, 또는 동거도 해야 하는 경제적인 어려움. 등이 그 기묘한 단어에 들어있기 때문이었다.


김훈도 노량진에서 인간의 생존 본능을 본 것 같다. 김훈은 인간의 생존 본능을 수험생의 동거와 공부에서 더 밀고 나가는데, 수험생에게 밥을 파는 불법 노점상과, 불법 노점상이 철거되는 걸 보면서도 태연하게 밥을 먹는 수험생의 숟가락질에까지 확장한다. 김훈은 후기에서 제도가 사랑을 가두고 조롱하는 모습을 봤다고 썼다.


<영자>의 노량진 풍속 묘사, 노량진에서만 들을 수 있는 단어는 김훈이 성실한 관찰자라는 걸 증명한다.


<저만치 혼자서>. 수도원에 모인, 임종이 가까운 수녀들과, 그곳에서 일하는 신부가 주인공이다. 그곳의 주된 일이란 고해성사를 해주고, 임종에 가까워진 수녀들을 위로하고, 임종을 맞은 수녀에게 장례미사를 하는 것이다. 소설의 신부는 젊은 신부, 경험이 많은 나이 든 신부 둘인데, 젊은 신부가 임종이 가까운 수녀 곁에 있고, 경험이 많은 나이 든 신부는 멀찍이서 젊은 신부를 도와주고 있다. 이 배치가 재밌는데, 젊은 신부는 다양한 사람과 부대끼면서 신학적이고 인간적인 물음을 던지고, 나이 든 신부가 답을 해주기 때문이다. 규정과 규율이라는 선이 있다고 하면 젊은 신부의 혈기 있는 신앙심은 그 선에 가까이 있지만 나이 든 신부는 각자의 사정을 더 우선한다. 각자의 사정은 규율과 규정 너머에 있다는 것이다. 원칙을 따르려는 젊은이와 원칙 너머 큰 세상을 보여주려는 숙련자의 구도는 자연스럽다.


소설에서 수녀들과 신부들은 타인의 삶을 동등하게 대하려고 했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동등하게 온다는 점에서 비춰보면 삶과 죽음을 대하는 자세가 같은 것이 의미심장하다. 동등하게 대한다는 것은 동행한다는 것이고, 동행한다는 것은 사랑의 올바른 형태이기 때문이다.


이 단편집에서 <명태와 고래>, <영자>, <저만치 혼자서>가 제일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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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는 경관 마르틴 베크 시리즈 4
마이 셰발.페르 발뢰 지음, 김명남 옮김 / 엘릭시르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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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는 경관>은 문장이 정말 매력적이다. 군더더기 없이 간결한 이 문장은 상황에 대한 설명과 인물의 심리를 품고 있다.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짧은 문장만으로 많은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문장이 간결하기 때문에 책장이 빠르게 넘어갈 수 있는데, 이 문장의 맛을 제대로 느끼려면 소설을 천천히 읽어야 한다. 한 번 씹고 삼키는 것이 아니라 꼭꼭 씹으면서 음미를 하자 짧은 문장이 품고 있는 큰 그림이 눈에 그려졌고, 깊은 맛을 깨닫고선 감탄을 하고야 말았다.


<웃는 경관>에선 ‘웃음’도 흥미롭다. 웃음은 두 가지로 나타난다. 1)등장인물이 웃는 것 2)등장인물이 웃지 않지만 독자가 웃는 것이다.


1)은 <웃는 경관>이라는 제목과도 상관이 있다. 사건 중반. 웃는 경관이라는 노래를 듣고서도 웃을 수 없었던 형사가 마지막에 가서야 진정으로 웃게 된다. 사건이 해결된 뒤의 그 웃음은 뿌듯함, 카타르시스, 생명력, 동료애를 의미하는 것이다. 웃는 경관이라는 노래는 형사의 웃음이자 형사들의 웃음 사건을 의미하는데, 사건이 해결된 뒤에 형사의 진짜 웃음은 형사 한 명의 웃음이면서 사건을 함께 해결한 형사들의 웃음이기도 하다. 노래의 상황과 노래 밖 상황을 연결시키는 게 절묘하다.


2)는 살인사건을 수사하는 심각한 상황에서 웃기는 장면이 꽤 나온다. 형사들이 주고받는 대화나 상황에서 배를 잡았는데, 끔찍하고 긴장되는 상황에서 독자를 웃기는 건 사건에 몰입하던 독자를 사건에서 빠져나오게 한다. 사건을 떨어져서 바라보게 하는 것으로, 브레히트의 소격효과와 비슷한 기능을 한다. 사건의 잔인성, 선정성에만 빠지는 게 아니라 사건이 가지는 함의, 즉 인간 본성과 당대 사회 시스템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것이다.


훌륭한 소설이다. 하지만 범죄 수사 측면에서 보면 이 소설은 말이 안 된다. 형사들이 2인 1조로 다니지 않는 것이 그렇다. 형사 혼자서 수사를 할 때 형사가 위험에 빠질 수 있기 때문에 2인 1조로 다녀야 하는데, 이 소설에선 많은 형사들이 혼자 다니고, 위험에 빠진 게 소설의 큰 줄거리가 된다.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서 형사가 혼자 다닌다는 설정을 넣은 건지 당시는 혼자 다니기도 했는지 모르겠다.


미행을 설명하는 부분도 말이 안되는데, 형사 콜베리는 죽은 형사가 미행을 잘했다면서 이렇게 말한다.


“미행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가급적 눈에 띄지 않게 따라다니면서 대상자가 뭘 하는지 알아보는 것, 혹은, 공공연히 쫓아다녀서 그 인물을 절박한 구석으로 몰아넣음으로써 뭔가 성급한 실수를 저질러 약점이 잡히길 기다리는 것. 오케는 내가 아는 누구보다도 두 가지 방식의 미행 기술에 통달했습니다.” p256


미행은 수사의 한 방식인데 비밀리에 이뤄져야 한다. 상대방이 알지 못해야 하고, 법률에 근거해야 한다. 그런데 상대방이 알도록 하여 절박한 마음에 약점이 잡히게 한다면 그건 한 마디로 범죄를 부추기는 것과 같은 것 아닌가? 인권 침해적이기도 하고. 소설의 배경인 1960년대에 저런 수사가 빈번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후 소설의 전개는 절박한 구석에 사로잡힌 범인이 잔혹한 범죄를 저지르는 것으로 이어진다. 형사의 미행 방법이 결과적으로는 범죄를 초래하는 것이다. 소설은 그 형사가 수사를 잘했다는 뉘앙스를 풍기면서 끝나기에 이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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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가 된다는 것
니콜 크라우스 지음, 민은영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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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콜 크라우스 <남자가 된다는 것>에서 <에르샤디를 보다>가 제일 좋았다. <에르샤디를 보다>의 세 축은 영화, 영화를 본 나, 영화를 본 친구이다. 이들이 본 영화는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체리향기>이다. <체리향기>는 이란 사회를 구성하는 여러 세대에 대한 이야기로도 볼 수 있지만 소설은 <체리향기>의 핵심적인 메세지인, 삶을 소중히 하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삶을 소중히 하는 것 앞에 선행하는 것은 허무와 두려움이다. 허무와 두려움을 극복하고 삶을 소중히 한다는 것인데, 빗소리, 새소리같은 자연의 소리, 루이 암스트롱의 트럼펫 소리-우리는 이곳에 음향을 수집하러 왔다는 키아로스타미의 말은 작지만 삶에서 소중히 해야할 것을 의미한다.


소설의 두 인물은 성취 지향적 삶을 살았거나 아버지의 사랑이 결핍된 삶을 살았다. 두 삶 모두 공허함에 빠진다. 그때 이들은 우연히 <체리향기>를 보고 일어서는 것이다. 영화 주인공에게 자신을 투영시키다 삶이 변화되는 과정이 참 좋았다.


국회방송에 <오유경의 인생 책방>이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국회의원들이 나와서 책을 소개하는데 재미가 없다. 언급하는 책 중에는 중고등학생 필독서로 소개되곤 하는, 누구나 알고 있는 고전이 많은데, 그걸 소개하는 정치인이 하는 소리도 필독서 소개에 나오는 뻔한 소리이다. 정치인의 행위는 모든 게 정치적으로 해석되기 때문에 국회의원들이 책을 소개할 때도 본인의 정치철학을 말하겠다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 그걸 감안해도 정치인이 하는 책소개를 들으면 이 사람은 책을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라 정치를 하려는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정치인이 이 사회를 더 나은 사회로 만들겠다고 꿈을 말하는 게 잘못된 것도 아니고, 고전에 깊이 감명을 받았을 수도 있는데 나는 왜 심드렁한 기분만 느낄 뿐인가.


<에르샤디를 보다>의 두 인물-결핍된 두 영혼이 키아로스타미의 <체리향기>를 대하는 것과 같은 마음을 책 소개하는 정치인한테서 보고 싶은 것이다. 좋은 책을 읽는다고 반드시 좋은 사람인 건 아니다. 히틀러가 읽은 책 목록을 보라. 하지만 책을 읽은 뒤 나의 결핍을 고백하고, 내 눈이 하찮은 것에도 마음을 쓰는 눈으로 바뀌는 건 예술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다. 선물을 발견하는 눈과, 선물을 선물로 여기는 마음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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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얼빈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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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얼빈>이 어떤 소설이냐고 누가 내게 묻는다면 말의 싸움이라고 답할 것이다. 일제와 서구 열강의 침략에 항거하는 안중근의 말, 조선을 강탈하려는 교활한 이토 히로부미의 말, 자신과 황실의 안위만 생각하는 황태자 이은의 말, 선교에 지장을 받을까봐 일제의 눈치를 살피는(또는 자신이 서구 열강 출신이기에 서구 열강 중심적인) 프랑스 신부의 말이 그것이다. 말들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경쟁하고, 나란히 앞으로 나아가고, 맹렬히 싸운다. 민중은 외세에 항거하고, 외세는 교묘한 말로 민중을 설득하려 하고, 지배계층은 가문과 재산에만 관심을 가진다. 한반도 땅을 둘러싸고 다양한 말이 존재하는데 누가 옳다고 하기보다는 김훈은 이들의 사정을 들여다본다. 그러다보면 각자가 이해가 되고 마음이 무거워진다.


여러 말들 중에서 안중근의 말이 기억에 남았다. 안중근은 못 배웠고 가진 것 없는 민중을 대표한다. 들끓는 피 하나 만으로 이 나라와 민족을 위해 싸웠다. 그렇기 때문에 안중근을 의미하는 단어. 포수, 무직, 담배팔이는 의미가 있다. 안중근은 자신을 포수라고 했다가 나중엔 무직이라고 밝혔다. 뼈대 있는 무슨 안씨 몇 대손이라고 밝힌 것도 아니었고, 몇 만평 땅을 가진 집안의 장남도 아니었다. 책을 수 만권 읽은 안중근이라고 내세우지도 않았다. 무식하고 가진 것 없어도 대한민국 만세를 외치고, 세계평화를 당당하게 주장할 수 있는 것은 그 말이 육체에 새겨진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고통을 겪었고, 고통받는 민중과 함께 했고, 고통받는 민중의 목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이 소설의 백미는 안중근이 재판정에서 판사의 질문에 답하는 장면이다. 육체에 새겨진 말은 진실되고 숭고하다. 그것을 그리는 김훈의 문장이 세련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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