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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는 경관 ㅣ 마르틴 베크 시리즈 4
마이 셰발.페르 발뢰 지음, 김명남 옮김 / 엘릭시르 / 2017년 11월
평점 :
<웃는 경관>은 문장이 정말 매력적이다. 군더더기 없이 간결한 이 문장은 상황에 대한 설명과 인물의 심리를 품고 있다.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짧은 문장만으로 많은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문장이 간결하기 때문에 책장이 빠르게 넘어갈 수 있는데, 이 문장의 맛을 제대로 느끼려면 소설을 천천히 읽어야 한다. 한 번 씹고 삼키는 것이 아니라 꼭꼭 씹으면서 음미를 하자 짧은 문장이 품고 있는 큰 그림이 눈에 그려졌고, 깊은 맛을 깨닫고선 감탄을 하고야 말았다.
<웃는 경관>에선 ‘웃음’도 흥미롭다. 웃음은 두 가지로 나타난다. 1)등장인물이 웃는 것 2)등장인물이 웃지 않지만 독자가 웃는 것이다.
1)은 <웃는 경관>이라는 제목과도 상관이 있다. 사건 중반. 웃는 경관이라는 노래를 듣고서도 웃을 수 없었던 형사가 마지막에 가서야 진정으로 웃게 된다. 사건이 해결된 뒤의 그 웃음은 뿌듯함, 카타르시스, 생명력, 동료애를 의미하는 것이다. 웃는 경관이라는 노래는 형사의 웃음이자 형사들의 웃음 사건을 의미하는데, 사건이 해결된 뒤에 형사의 진짜 웃음은 형사 한 명의 웃음이면서 사건을 함께 해결한 형사들의 웃음이기도 하다. 노래의 상황과 노래 밖 상황을 연결시키는 게 절묘하다.
2)는 살인사건을 수사하는 심각한 상황에서 웃기는 장면이 꽤 나온다. 형사들이 주고받는 대화나 상황에서 배를 잡았는데, 끔찍하고 긴장되는 상황에서 독자를 웃기는 건 사건에 몰입하던 독자를 사건에서 빠져나오게 한다. 사건을 떨어져서 바라보게 하는 것으로, 브레히트의 소격효과와 비슷한 기능을 한다. 사건의 잔인성, 선정성에만 빠지는 게 아니라 사건이 가지는 함의, 즉 인간 본성과 당대 사회 시스템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것이다.
훌륭한 소설이다. 하지만 범죄 수사 측면에서 보면 이 소설은 말이 안 된다. 형사들이 2인 1조로 다니지 않는 것이 그렇다. 형사 혼자서 수사를 할 때 형사가 위험에 빠질 수 있기 때문에 2인 1조로 다녀야 하는데, 이 소설에선 많은 형사들이 혼자 다니고, 위험에 빠진 게 소설의 큰 줄거리가 된다.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서 형사가 혼자 다닌다는 설정을 넣은 건지 당시는 혼자 다니기도 했는지 모르겠다.
미행을 설명하는 부분도 말이 안되는데, 형사 콜베리는 죽은 형사가 미행을 잘했다면서 이렇게 말한다.
“미행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가급적 눈에 띄지 않게 따라다니면서 대상자가 뭘 하는지 알아보는 것, 혹은, 공공연히 쫓아다녀서 그 인물을 절박한 구석으로 몰아넣음으로써 뭔가 성급한 실수를 저질러 약점이 잡히길 기다리는 것. 오케는 내가 아는 누구보다도 두 가지 방식의 미행 기술에 통달했습니다.” p256
미행은 수사의 한 방식인데 비밀리에 이뤄져야 한다. 상대방이 알지 못해야 하고, 법률에 근거해야 한다. 그런데 상대방이 알도록 하여 절박한 마음에 약점이 잡히게 한다면 그건 한 마디로 범죄를 부추기는 것과 같은 것 아닌가? 인권 침해적이기도 하고. 소설의 배경인 1960년대에 저런 수사가 빈번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후 소설의 전개는 절박한 구석에 사로잡힌 범인이 잔혹한 범죄를 저지르는 것으로 이어진다. 형사의 미행 방법이 결과적으로는 범죄를 초래하는 것이다. 소설은 그 형사가 수사를 잘했다는 뉘앙스를 풍기면서 끝나기에 이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