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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얼빈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8월
평점 :
<하얼빈>이 어떤 소설이냐고 누가 내게 묻는다면 말의 싸움이라고 답할 것이다. 일제와 서구 열강의 침략에 항거하는 안중근의 말, 조선을 강탈하려는 교활한 이토 히로부미의 말, 자신과 황실의 안위만 생각하는 황태자 이은의 말, 선교에 지장을 받을까봐 일제의 눈치를 살피는(또는 자신이 서구 열강 출신이기에 서구 열강 중심적인) 프랑스 신부의 말이 그것이다. 말들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경쟁하고, 나란히 앞으로 나아가고, 맹렬히 싸운다. 민중은 외세에 항거하고, 외세는 교묘한 말로 민중을 설득하려 하고, 지배계층은 가문과 재산에만 관심을 가진다. 한반도 땅을 둘러싸고 다양한 말이 존재하는데 누가 옳다고 하기보다는 김훈은 이들의 사정을 들여다본다. 그러다보면 각자가 이해가 되고 마음이 무거워진다.
여러 말들 중에서 안중근의 말이 기억에 남았다. 안중근은 못 배웠고 가진 것 없는 민중을 대표한다. 들끓는 피 하나 만으로 이 나라와 민족을 위해 싸웠다. 그렇기 때문에 안중근을 의미하는 단어. 포수, 무직, 담배팔이는 의미가 있다. 안중근은 자신을 포수라고 했다가 나중엔 무직이라고 밝혔다. 뼈대 있는 무슨 안씨 몇 대손이라고 밝힌 것도 아니었고, 몇 만평 땅을 가진 집안의 장남도 아니었다. 책을 수 만권 읽은 안중근이라고 내세우지도 않았다. 무식하고 가진 것 없어도 대한민국 만세를 외치고, 세계평화를 당당하게 주장할 수 있는 것은 그 말이 육체에 새겨진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고통을 겪었고, 고통받는 민중과 함께 했고, 고통받는 민중의 목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이 소설의 백미는 안중근이 재판정에서 판사의 질문에 답하는 장면이다. 육체에 새겨진 말은 진실되고 숭고하다. 그것을 그리는 김훈의 문장이 세련되었다...